정동길에 날리는 눈꽃 같은 옛사랑의 멜로디

  • 등록 2025.01.14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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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혁의 K-POP 서곡 10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차트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임세혁의 K-POP 서곡’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십 년이 좀 넘은 일인데 아끼던 후배 하나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슬펐는데 사람이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그렇게 지나 보내니 급작스러운 상실에 대한 아픔도 빛바랜 사진 같은 그리움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씩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지라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녀석을 보러 분당에 있는 추모공원으로 가보고는 한다.

 

아무래도 서울과 가까운 추모공원이라 그런지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기도 하는데 후배의 납골당으로 가는 길에 이영훈 작곡가의 묘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후배를 보러 갈 때마다 잠시 이영훈 작곡가의 묘소 앞에서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리고 오고는 한다. 일면식도 없는 그의 묘소에 매번 잠시 들르는 까닭은 어린 시절 나의 기억에 그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발라드를 좋아한다. 댄스음악도 좋아하고 트로트도 좋아하지만, 음반 순위표를 연도별로 늘어놓고 보면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순위권에 놓여있는 음악은 발라드다.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회고에 따르면 부활 3집에 수록된 <사랑할수록>을 발매할 당시에 여름이라서 계절에 맞지 않다며 음반사에서는 발매를 꺼렸다고 하는데 막상 발매 뒤에 <사랑할수록>의 인기로 인해 당시 최고급 국산 자동차인 그랜저를 현금으로 구매했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하니 좋은 발라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얻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발라드가 주류를 차지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전에는 단연코 트로트가 대세였었고 포크 음악이나 록 음악이 주류를 이루면서 발라드도 우리가 오늘날 듣고 즐기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현재 한국인의 취향에 맞게 설정된 정석적인 발라드의 형태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여러 논문과 전문가 대담을 통하여 나온 정설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에서 발라드의 상업적 성공을 처음으로 증명해 낸 음반은 <사랑하기 때문에>와 같은 해 발매된 이문세 4집이라고 본다. <사랑이 지나가면>으로 시작되는 그 음반에는 작사 작곡가에 단 한 명의 이름만이 적혀있다. 이영훈이다.

 

 

일반적으로 저작권의 측면에서 보면 대중음악가들은 작가와 실연자로 나뉜다. 작가는 말 그대로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와 가사를 쓰는 작사가로 나뉘며 실연자는 가수, 연주자로 나뉜다. 유명한 대중음악가들 가운데서도 작사만 전문으로 하는 작사가들이 있으며 작곡만 전문으로 하는 음악가들이 있지만, 간혹 그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영훈이 그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영훈의 곡들은 작사와 작곡 그 두 분야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나는 이영훈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그의 가사도 좋아한다. 예전에 대학 시절 은사님께 명곡의 조건을 여쭌 적이 있었는데 은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음악만 들어도 가사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고 가사만 보아도 음악을 대략 느낄 수 있는 곡이 명곡일지도 모른다.”라고 답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물론 명곡의 조건이라는 것은 틀에 박힌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뭐라 딱 잘라서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단서를 달아두신 것 같지만 은사님의 의견에 나 역시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특히 가사의 중요성은 노래를 만드는 음악가의 관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이영훈의 가사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아름답다. 그가 만든 노래를 들으면서 어느새 예전의 기억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그의 가사에는 있다. 그가 만든 노래에는 거창하거나 구구절절한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법한 감정들을 그는 노래에 담았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사랑이 지나가면>, <소녀> 등의 가사에서 그는 광화문과 정동길을 지나며 버스 창가에 기대어 슬픔을 흘려보내던 시간들을 노래로 만들었다. 특히나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로 시작하는 <옛사랑>은 이영훈이 만든 보석 같은 가사들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빛나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옛사랑>이라는 곡을 정말 좋아한다. 학교에서 작사에 관해 수업할 때 이 노래의 가사만 가지고 두어 시간은 기본으로 떠들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곡을 좋아한다. 어느 한 부분에서도 넘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상당히 보기 힘든 경지의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의 완성도도 그렇지만 특히 가사의 아름다움이 이영훈의 가사들 가운데 으뜸 걸작이라고 본다. 실제로 이영훈 본인도 생전에 “<옛사랑>의 가사를 써낸 뒤 더 할 말이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만족했다.”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자신의 가사 가운데 가장 만족을 표한 곡이기도 하다.

 

이영훈은 하루에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 네 갑을 태우며 노래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렇듯이 지인들의 과장이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실제보다 많이 줄여서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아들인 이정환씨의 회고에 따르면 담배 연기와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 그리고 많이 마시던 커피가 기억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창작의 고통을 느끼면서 수정을 거듭하여 완성하는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특히 작곡보다는 작사할 때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만약에 이영훈이 예를 들어 엘튼 존에게 버니 토핀이 있고 김희갑에게 양인자가 있는 것처럼 자기 영혼의 반쪽이라고 칭할만한 작사가를 만났더라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혹사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그렇게 자신을 깎아가면서 곡을 만든 대가였을까, 그는 향년 47살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음악이 남았다. 이영훈의 노래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목소리로 부른 가수 이문세는 공연과 음반 활동으로 아직도 활동 중이며 <응답하라 1988>을 비롯한 드라마에도 이영훈의 곡들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그의 음악으로 엮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어느새 초연, 재연을 넘어서 사연을 기록하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2008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햇수로 17년이 되었지만, 그의 음악은 조금도 색이 바라지 않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우리의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치 떠나간 그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와 남겨진 음악의 생명력이 비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가요를 유행가라고도 부르며 유행가라는 말은 그 당시에 유행하는 노래를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영훈이 만들었던 음악은 유행가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값어치가 떨어지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명작이라고 본다. 나라 밖의 팝 음악에서 벗어나 우리 대중음악으로 청자들을 인도했었던 그의 아름다운 음악에서 한국 대중가요의 성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이영훈은 K-POP 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현재의 대중음악을 만든 위대한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임세혁 교수 sehyukl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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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혁

- 예술학 박사 / 송곡대학교 K-POP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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