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농경사회, 방 안에서 개를 키우지 않았다

  • 등록 2025.02.01 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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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온 편지 (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전원주택에 사는 장점 가운데 하나가 애완동물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40대 후반이었던 1997년에 수원대 후문 근처,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 전원주택에서 4년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개를 키우자고 졸라서 중간 크기의 개 두 마리를 키웠다. 개집을 두 개나 사서 대문 옆에 두었다. 개는 쇠줄로 목줄을 차서, 반경 2m 이상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목줄이 없으면 대문을 나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 했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개도 하나의 생명체인지라, 먹고 싸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개밥은 잔반을 주지만 충분한 식사가 되지 못하므로 사료를 사다가 보충해 주어야 한다. 배설물은 미관상 보기가 좋지 않고 냄새도 나므로 수시로 치워주어야 한다. 개를 키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대문 밖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두 마리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이웃들도 모두 개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개로 인한 소음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개를 귀여워하고 개를 데리고 동네 길을 산책도 하고 하더니 차차 게을러지기 시작하였다. 날마다 한 번씩 개밥을 챙겨주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매일 개밥을 챙겨주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개가 줄이 풀려,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한 마리가 갑자기 죽고 말았다. 아마도 쥐약 먹은 쥐를 먹었나 보다. 그 뒤 다른 한 마리도 집을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아이들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더 이상 개를 키우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2015년에 봉평면 면온리 전원주택에 이사와 보니 우리 마을 17 가구 가운데서 한 가구 만 개를 키웠다. 왜 개를 키우지 않느냐고 이웃에게 물어보니 “개를 키워보니 귀찮더라”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마을에서 몇 년 전에 개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물어 상처를 입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치료비는 물어주었지만, 아이는 충격이 컸고 두 집은 그 뒤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 개에 종아리를 물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개 옆을 지나려면 언제나 두렵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항상 무섭다. 개 주인은 “우리 집 개는 안 물어요”라고 안심시키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2023년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2,200건 이상의 개 물림 사고가 일어났다. 일일 평균 약 6건의 크고 작은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세계 통계를 보면 해마다 25,000명이 개에게 물려 죽는다고 한다. 상어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10명도 안 된다고 하니 개가 얼마나 위험한 맹수인지 알 수가 있다.

 

요즘 도시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지난여름에 친구를 만나러 서울 강남구 역삼역 근처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선정릉에 걸어서 가 본 적이 있다. 가는 도중 길거리에 작은 개를 안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놀라웠다. 심지어는 유모차에 아이 대신 개를 태우고 가는 사람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개에 대한 호칭도 격상되었다. 예전에는 개를 애완동물이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반려동물, 또는 반려견이라고 부른다. 개와 사람이 거의 동격이 되었다. 어느 작가가 개의 처지에서 글을 썼는데, 사람을 ‘개의 반려인’이라고 표현해서 탄식한 적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를 반려견이라고 부르지 않고 ‘개새끼’라고 부르면 불경죄로 고발당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한집에 사는 부부가 개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문제가 일어난다. 아내는 개를 키우자고 주장하는데 남편은 개를 싫어하면 복잡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집은 다행스럽게도 나는 물론 각시도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위가 개를 좋아하고, 두 손녀도 개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 집안에서는 문제다. 딸네 부부는 인천 송도에 사는데,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다 보니 개가 방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산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 딸네 부부가 개를 데리고 전원주택에 오던 날 문제가 일어났다. 나는 개를 잔디가 있는 마당에 묶어두라고 말했더니 대답이 없다. 주인과 떨어지면 개가 무서워하며 짖는다고 한다. 내가 양보하여 개를 거실 앞 데크에 묶어두라고 말했다. 데크에 있는 개가 거실에 있는 사람을 커다란 통유리를 통하여 볼 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개는 계속 짖었다. “왜 나를 떼어놓고 너희들끼리만 노느냐?”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개가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 번 더 양보하였다. 개를 건넌방 안에만 있게 하고 한 사람이 함께 있어라. 문밖으로 개가 나오지 않게 하라. 내가 개를 격리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따르기는 해도 분위기가 약간은 썰렁해졌다. 나는 이층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잠을 잤다.

 

새벽 3시쯤 잠이 깨어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개가 거실에서 뛰어나오면서 짖어댄다. 나는 깜짝 놀라 계단 중간에서 멈추었다. 건넌방에서 자던 딸이 놀라 뛰쳐나오고, 거실에서 사위가 뛰쳐나왔다. 각시는 안방에서 뛰쳐나왔다. 사위가 밤늦게까지 거실에서 개를 껴안고 소파에 앉아 TV로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약속 위반이다. 개는 건넌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에 내가 각시에게 말했다. 애들이 우리 집으로 놀러 올 때는 개를 개모텔에 맡겨 놓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각시 대답은 딸네 부부가 그런 방법도 연구해 보았는데, 개 맡기는 값이 아이 맡기는 값만큼이나 비싸다고 한다. 사람이나 개나 숙박료는 비슷한가 보다.

 

 

그 후 딸네 부부는 주말에 봉평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 자주 오지만 우리 집에서 자지 않는다. 캠핑을 오면 두 손녀를 우리 집에 맡겨 놓고 곧바로 개와 함께 캠핑장으로 간다. 캠핑을 끝내고 우리 집에 들러 두 손녀를 데리고 간다. 나는 사위와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한다. 나는 개와 함께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데, 개는 사위와 함께 음식을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를 사위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나는 개 때문에 딸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개 때문에 나는 사위와 멀어졌다. 개가 사람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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