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복식(服飾)에서 금(金)과 옥(玉)을 없앤 것은 바로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아름다운 일이다. (가운데 줄임) 훌륭하신 검소한 덕(德)은 따라서 본받을 만하다. 연여(輦輿)에 금으로 그리는 것은 삽시간에 지워져 버리니, 다만 겉치레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비용이 또한 심하다. 태복시(太僕寺, 궁중의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아)에 분부하여 이 뒤로부터는 금으로 그리지 말도록 하라."
위는 《영조실록》 73권, 영조 27년(1751년) 2월 3일 기록으로 영조 임금이 연여에 금으로 그리는 것을 못 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원래 연여는 연과 여(輿)로 나뉘는데 연(輦)은 임금이 거동할 때 타는 것으로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끌게 되어 있고, 여(輿)는 지붕이 없는 것으로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는데 소여(小輿) 또는 평교자(平轎子)라고도 부릅니다.
조선시대의 연은 옥개(屋蓋, 위에 씌우는 덮개)에 붉은 칠을 하고 주홍과 황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또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위에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아 겉에는 운룡(雲龍, 구름과 용 무늬)을 그렸고, 안에는 운봉(雲鳳, 구름과 봉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영조 임금은 자기가 타는 연이지만, 낭비되는 부분을 없애라 한 것입니다. 영조 임금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일 곧 “감선(減膳)”을 89차례나 했을뿐더러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즐겨 먹었던 검소한 임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