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하던 일들

  • 등록 2025.05.02 07: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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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8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임금이 명하여 단오의 영상시(迎祥詩, 나라에 기쁜 일이 있을 때 짓는 시)를 그치도록 하였다. 그때 단오가 가까워졌으므로 승정원에서 세규(歲規)에 의하여 제술관(製述官)을 뽑아서 아뢰고 대제학 주문신(主文臣)을 불러 운자(韻字)을 내어 과거에 문제 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가뭄 피해가 이러하니, 이번에는 시문을 지어 올리지 말게 하라." 하였다.

 

위는 《숙종실록》 61권, 숙종 44년(1718년) 5월 1일 기록으로 숙종은 가뭄이 심하므로 과거를 열어 시문을 지어 올리지 않도록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조선시대 임금은 이렇게 가뭄뿐만이 아니라 물난리가 나고 벼락이 치고, 돌림병이 도는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임금이 부덕하여 이런 재난이 생긴다고 하여 과거에서 시문을 짓는 것도 못 하게 하는 것은 물론 감선(임금이 근신하는 뜻에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일) 하거나 초가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벼락”으로 검색하면 무려 1,239건이 나오는데 거의가 “아무 데서 아무개가 벼락을 맞았다.”입니다.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년) 3월 13일에 보면 “삼각산의 소나무와 산기슭에 벼락이 치니, 해괴제(解怪祭)를 행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로는 벼락도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어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고, 나라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지내던 곧 해괴제를 지낸 것입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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