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산록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영원한 스무 살 청년이 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표현이다.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은 수필 「오월」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고 선언한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피천득 「오월」
올해도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 우리 사회를 흔드는 태풍급 정치 때문에 봄을 거의 잃어버릴 뻔했는데 그래도 봄은 돌아왔다. 우리가 계절의 여왕인 5월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시간만은 나이가 드는 것을 잊어 버려도 좋다.
거문고 켜는 아이인 금아 피천득은 5월의 시인이며 수필가이다. 피천득은 1910년 5월 29일에 태어나서 2007년 5월 25일에 세상을 떠 29일에 장례를 치렀으니, 5월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5월은 어린이 달, 가정의 달이지만, 5월이 되면 사람들은 피천득의 이 오월에 대한 표현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며, 다시 스무 살 청년이 되어 봄을 만끽한다.

피천득 선생이 세상을 뜬 지도 벌써 18년이다. 지난 20012년 서거 5주기를 맞아 열린 “한국문학과 피천득”이란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제자인 중앙대 정정호 교수는 피천득의 첫 작품은 수필이 아니라 시였음을 찾아내었다. 피천득은 1947년 첫 시집인 《서정시집》을 펴낸 이래 많은 시를 발표하고 고치곤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역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수필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절친한 친구였던 피천득과 운오영을 견주면서 운오영은 동양문학에서 출발했고 피천득은 서양문학의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나라 현대 수필문학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기축(機軸,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또 피천득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덜 알려졌고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번역가로서의 금아의 업적, 특히 영미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13세기 무렵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10음절 14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 번역에서 남긴 소중한 족적이 재조명된 바 있다.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피천득의 번역으로 공부했다. 그 번역으로 우리들은 자주 우리들의 인생에서 우리들의 선택으로 걸어온 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번역
워낙 피천득이 유명한 수필가이자 영문학 교수였으니 이 시를 번역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피천득이 로버트 프로스트와 생전에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는 것도 재미있는 뒷이야기이다. 그러기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재직하면서 한 영미시 강독 시간에 프로스트의 작품을 늘 선정해 같이 감상하곤 했다.
올해 오월 피천득 선생이 다시 살아난다. 피천득 선생의 제자들 모임인 서울사대 영어과 동창회에서는 오는 10일 토요일에 선생님이 재직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피천득 선생을 동판으로 새겨 영원히 곁에 있도록 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동판에는 그의 대표시 「오월」이 함께 새겨진다. 원래 강의는 용두동에 있는 교정에서 했지만 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사 왔기에 관악산 교정에서 제막행사가 치러진다.

또 돌아가신 5월 25일의 하루 전날인 24일 토요일 낮 11시 종로구 청진공원 내 피천득 선생의 생가터(종로구 청진동 청진공원 146-3)에서 문학비 제막식을 연다. 또한 이날 낮 1시 30부터 5시까지 제2회 전국 중고교와 대학, 일반부를 대상으로 피천득 백일장을 연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전국 중고등학교 재학 중이거나 또래 청소년 누구나 참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피천득 선생님이 우리를 떠난 지도 벌써 18년이 된다. 필자가 갑자기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는 것은 필자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1972년 봄 대학 신입생 때에 영수필 강의로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었고 그다음 해엔 영시 강의를 들었는데 그 겨울 이후에 따님을 본다고 미국에 가신 뒤로 다시 뵙지를 못했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쓸데없이 잘난 체하고 살던 2007년 5월 25일 밤늦게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새벽까지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썼었다. 그러기에 오월이 되면 선생님 생각이 자꾸 난다.
올해 오월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분위기로 조용할 틈이 없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은 이 소중한 오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자연을 보고 느끼며 그 속에서 우리들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값어치를 되새기고 살리는 때로 흠뻑 빠져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이 피천득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