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약용, 편지로 보여준 자식 사랑

  • 등록 2025.11.17 12: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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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정약용 글, 한문희 엮음, 함께읽는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학연과 학유.

정약용이 끔찍이 아꼈던 두 아들의 이름이다. 수많은 책을 쓴 저자이자 사상가, 교육자로 잘 알려진 정약용은 실은 유명한 ‘사랑꾼’이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깊었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더욱 각별했다. 유배지에 가서도 혹시나 아이들이 엇나갈까 늘 노심초사하며 편지를 보냈다.

 

한문희가 엮은 이 책, 《아버지의 편지》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오늘날에도 보기 쉬운 입말로 풀어쓴 책이다. 편지 원문 뒤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설과 간단한 생각할 거리도 곁들여 깊이를 더했다.

 

 

그는 부인 홍씨 사이에 6남 3녀를 두었지만 대부분 일찍 죽고 2남 1녀만이 남았다. 유배 전까지만 해도 아들들이 자신의 대를 이어 과거급제하고 입신양명하길 바라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를 당하면서 자식교육은 가시밭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은 글을 수시로 보내고, 책 읽기를 독려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며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편지로 상세히 일러주었다. 때로는 왜 아버지가 보낸 글을 읽지 않느냐고 살짝 질책하기도 했다.

 

(p.20)연아, 유아야.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내가 이 쓸쓸한 유배지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마음을 붙여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글을 짓는 일 뿐이로구나. 그래서 어쩌다가 마음에 드는 글이라도 짓게 되면, 스스로 읊조리고 감상하다가 이윽고 ‘이 세상에서 오직 너희들에게만 보여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이 아버지의 말을 아득히 먼 중국 변방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내가 지은 글 읽기를 쓸모없는 일처럼 여기고 있지 않느냐? 한번 생각해 보거라.

 

자식들에게는 이런 ‘원격 편지교육’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마음만큼 잘 따라주지 않는 자식에게 실망하는 모습도 많이 나온다. 자식 문제는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부모들의 한탄처럼, 정약용도 자식 교육으로 근심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어차피 벼슬길이 막혔는데, 공부는 해서 무엇하냐고 생각할까, 걱정되어 자식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벼슬 경험이 없거나, 권세가 흘러넘치는 집안의 자제보다 벼슬하는 집안에서 자랐으되 뜻밖의 어려움을 만난 이들이 알게 되는 독서의 참맛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독서란 호사스럽고 권세 있는 집안의 자제는 그 참맛을 알 수 없고, 지방의 가난한 천재들도 그 오묘한 이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라,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고, 자라서는 뜻밖의 어려움을 당한, 바로 너희들과 같은 자라야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타일렀다.

 

그가 강조했던 글 읽기의 올바른 방법은 먼저 옛 성현이 지은 경서로 근본을 확고히 하고, 이전 시대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아 여러 가지 사례를 익히며,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데 관한 글을 즐겨 읽어 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p.32)

글이란 반드시 먼저 옛 성현이 지은 경서를 공부하여 그 근본을 확고히 세워야 한단다. 그런 뒤에 이전 시대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아서 그 잘한 점과 잘못한 점, 정치가 잘 되고 어지러운 근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 실용의 학문에 마음을 두어 옛 사람이 지은 글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데 관한 글을 즐겨볼 것이요, 이러한 마음으로 항상 백성들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간직하여 그 뜻을 관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약용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이 되면 반드시 일 년 동안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글을 뽑아서 정리할 것인지 미리 정해두고 실천했다. 몇 달이 지나 실천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었지만, ‘선한 것을 즐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뜻’은 지켜나갔다.

 

이렇게 공부에 진심인 아버지였으니, 자식들은 아버지를 만족시키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 같다. 자식들에게 정약용은 너무 뛰어나서 조금 부담스러운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귀양을 가서 폐족이 된 것도 억울한데, 벼슬길이 막힌 상황에서 계속 공부하라는 편지가 오니 상당히 스트레스도 받았을 듯싶다.

 

그러나 정약용에게 공부는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으면서도 ‘집안에 독서하는 이가 끊이지 않게 할 것’을 당부하는 선비들이 많았다. ‘독서’로 대변되는 자식 교육은 기울어가는 가문을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었다.

 

(p.44)

내가 전부터 너희들에게 편지를 보내 학문에 힘쓰라고 말한 것이 이미 여러 차례였을 테지. 그런데 너희들은 옛 성현의 글 가운데 의심스러운 곳이나, 예절과 음악의 의문스러운 점, 역사책에 대한 논의를 한 조목도 묻는 적이 없더구나. 어찌 너희들은 이다지도 내 말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느냐?

부디 학문에 힘쓰거라.

 

이렇듯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한 덕분에 자식들은 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무사히 성장했고, 집안은 재기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유배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심초사했던 그의 편지교육이 아니었다면, 18년 동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학연과 학유의 처지가 된 자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아버지 정약용’이 보낸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편지는 오늘날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유배지에서 미래세대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책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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