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때때로 우리 생활 속에서 “혼줄 났다.”든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비난을 듣는 사람들을 본다. 이때 혼(魂)은 무엇이며, 정신(精神)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혼(魂)은 넋ㆍ영혼을 말하며, 정신은 ‘마음’ 또는 ‘얼’이라고도 하며 ‘영혼이라고도 하는데, 영혼(靈魂)은 별개로 죽은 사람의 넋이나 유혼(幽魂) 또는 혼령(魂靈)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영혼은 보이지 않는 개체 속에 하나의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 인간의 구조를 크게 둘로 나누면 유교나 무속 신앙에서 혼백(魂魄)이라 하여 혼(魂)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정신적 요소, 백(魄)은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육체적 생명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와 반면 불교 유식학에서는 명색(名色)이라고 정의하는데 명(名, Nāma)은 정신적 요소, 감각ㆍ의식ㆍ지각을 말하고, 색(色, Rūpa)은 물질적 요소, 육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혼백과 명색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명(名)과 혼(魂)은 다음 생의 종자가 된다고 한다면 색(色)과 백(魄)은 지수화풍 사대로 결합 되었다가 다시 자연의 속성(屬性)인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고 하겠다.
이렇게 살펴보았을 때 분명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명(혼)과 색(백) 두 개체가 합하여 하나의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형체를 탄생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혼을 기반으로 부탄의 민족혼을 살펴보자.
부탄에서 ‘민족혼’이라는 말은 단순한 민족적 자부심을 넘어, 국가와 공동체, 종교와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생활적 정신을 뜻한다. 부탄인들에게 민족혼은 눈에 보이는 권력이나 물질적 성취보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정신적 지표이다.
첫째, 종교와 삶의 융합에서 민족혼이 드러난다.
부탄은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보호하고 장려하며, 국민은 일상에서 이를 실천한다. 마을마다 자리 잡은 조그만 사원과 초르텐(불탑)을 정기적으로 돌며 기도하는 ‘코라’ 수행은 단순한 신앙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적 결속을 다지는 행위다. 개인의 안녕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시에, 선대의 공덕과 국가의 안녕을 함께 염원하는 이 과정에서 ‘민족혼’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다.
둘째, 문화와 전통 의식을 통한 실천에 있다.
부탄에서는 결혼, 출산, 농사, 계절 축제 등 모든 삶의 단계에서 전통 의례를 중시한다. 예컨대 ‘트성(Tsechu)’이라는 지역 축제에서는 주민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마스크 춤을 추며 조상과 불보살에게 감사와 축원을 올린다. 이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민족의 혼’을 기반으로 공동체 정신과 국가적 정체성을 체험하고 공유하는 방식이다.
셋째, 자연과 환경에 대한 존중 역시 ‘민족 혼’의 표현이다.
부탄은 ‘국민총행복(GNH)’ 철학을 통해 경제적 이익보다 자연과 문화 보전을 우선한다. 산과 강, 숲과 농토를 신성시하며, 이를 보호하는 삶의 태도는 곧 민족혼의 일상적 실천이다. 마을 단위로 진행되는 하천 정화, 공동 숲 관리, 지속 가능한 농업 활동 등은 생활 속에서 민족의 정기를 이어가는 구체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부탄의 ‘민족혼’은 제도적 장치나 추상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 세대와 자연이 맞닿는 지점에서 실현된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단순한 개별 존재가 아니라, 전통과 역사, 공동체와 자연의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임을 느낀다. 이렇게 부탄에서 민족혼은 삶의 방식이자 정신적 나침반으로, 일상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부탄의 민족혼은 종교와 생활, 공동체와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삶의 방식 속에서 실천되고 있다. 집을 짓거나 길을 낼 때 초르텐(불탑 스투파)과 룽타(깃발)를 세우는 전통은 공덕을 쌓고 공동체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앙적 실천이다. 국가 정책 역시 국민총행복(GNH) 철학을 중심에 두어, 물질적 성장보다 정신적 풍요와 공동체 값어치를 우선으로 한다.
연례 축제와 코라(탑돌이)에서 주민들은 전통춤과 노래, 의례에 참여하며 신앙과 문화를 이어간다. 일상에서는 여성의 ‘키라’와 남성의 ‘고’ 의복을 착용하고, 공용어로 부탄어를 사용해 언어와 정체성을 지킨다. 또한 숲과 산을 신성시하며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현대 건축에도 전통 양식을 반영해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한다. 이처럼 부탄의 민족혼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실천의 정신이다.
이에 반하여 한국에는 한국인의 정신 깊숙이에는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얼’과 ‘혼’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 둘은 단순히 전통 속의 단어가 아니라, 한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지탱해 온 정신적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조상의 ‘얼’은 우리 민족의 정신, 기개, 그리고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얼은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꿰뚫는 존엄한 정신성이다. 조상의 얼 속에는 충절과 도덕성, 희생정신, 공동체 의식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독립운동가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선비가 올곧은 절개를 지켜낸 것도 모두 이 얼의 발현이다. 후손들이 조상의 얼을 기린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도덕적 기준과 기상을 삶 속에서 되새기고 실천한다는 의미다. 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조용한 가르침이다.
반면, 조상의 ‘혼’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적인 존재로서의 조상을 뜻한다. 혼은 제사와 사당, 위패와 같은 의례 문화 속에 살아 있으며, 후손과 끊어지지 않는 유대의 고리로 여겨진다. 조상의 혼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곁에 머물며 지켜보고, 보호하고, 때로는 길을 밝혀주는 존재로 이해된다. “조상의 혼이 우리를 지켜준다”라는 말에는 조상에 대한 공경과 신앙적 믿음이 담겨 있다. 혼을 모시는 제례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후손이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약속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렇듯 ‘얼’이 조상의 삶과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혼’은 사후에도 이어지는 영적 연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얼은 교육과 기념,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되고, 혼은 제사와 의례, 신앙적 행위와 깊이 맞닿아 있다. 얼이 도덕성과 정의의 상징이라면, 혼은 조상신으로서 보호와 위령의 상징이다.
앞서 서술한, 한국 전통사상인 혼(魂)과 백(魄)을 다시 논한다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고, 제사에서는 혼백을 함께 모시며 조상과 후손의 연결을 이어왔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얼’은 더욱더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개념으로 발전해, 민족정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조상의 얼과 혼은 여전히 우리 마음 한켠에서 묵직한 뿌리로 남아 있다. 얼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고, 혼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게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공동체, 그리고 조상과 후손을 잇는 ‘하나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