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겨울

  • 등록 2025.12.03 13: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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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아기들 방이 춥지 않을까 걱정하며 돌아다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3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가을 기온이 계속 포근해 가을이 길 줄 알았는데 11월 들어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면서 철모르고 달려있던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다 떨어졌다. 그러고는 그새 12월이다. 앙상한 가지에는 나뭇잎 몇 개만 달랑거리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은 벌써 길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바람이 불자 어딘가로 휩쓸려 날아간다. 새벽 산책길을 나서면 하늘에는 추운 공기 속에 파랗게 보이는 달이 외롭게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이럴 때마다 나에게는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동요의 노랫말이 있다.​

 

   산머리 걸린 달도 추워서 파란 밤

   나뭇잎 오들오들 떨면서 어디 가나

   아기가 자는 방이 차지나 않느냐고

   밤중에 돌아다니며 창문을 두드리네

 

 

60여 년 전 초등학교 학생 때에 배운 동요다. 동요 제목은 '나뭇잎'이었다. 가사도 좋고 가락도 쉽고 따라 부르기도 좋아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되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다. 이렇게 초겨울 새벽과 아침 상황을 잘 묘사한 노랫말이 있단 말인가? 당시 음악 교과서에는 외국곡이라고만 나와 있어서 그저 그런 줄 알면서 이 노래 좋다고 감탄한 적이 제법 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클래식 기타를 배운다고 설치며 놀다가 일본에서 나온 악보집에 실린 한 연습곡을 보니 이 노래 멜로디가 나오는데, 거기에 제목은 '5월이여'다. 아니 늦가을 초겨울 정경을 묘사한 노랫말이 있는 이 노래의 원제목이 ‘5월이여’라고? 그러면 가을 노래가 아니네? 그런 의문을 품고 수십 년을 살았고, 그 사이 이 노래 멜로디는 KBS1FM의 오전 가장 인기가 많은 '가정음악실' 프로그램의 타이틀곡이나 간주곡이 되어 자주 들리고 있었다.

 

 

궁금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 모든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되어 검색하다 보니 이 노래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고 그것도 모차르트가 35살에 죽던 마지막 해에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노래의 원곡(元曲)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Sehnsucht nach dem Früling'이라고 한다. 흔히 '봄을 기다리며'라고 번역을 하는데 원 독일어 제목의 ‘Sehnsucht’는 예전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에 배울 때는 '그리움', '갈망'이라는 뜻으로 배웠다. 그러기에 본래 제목은 '봄을 그리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모차르트가 죽기 10달 전인 1791년 1월에 크리스티안 아돌프 오베르베크(Christian Adolf Overbeck 1755-1821)라는 독일 시인이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란다.

 

이 노래를 작곡하던 당시에 모차르트의 생활은 비참할 정도로 매우 어려웠고,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어야 할 정도로 다급했던 그가 잡지사의 청탁으로 어린이를 위한 것으로 작곡한 것이 바로 이 곡이란다. 그것도 새 멜로디를 구상하기 어려웠던지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협주곡(27번)의 3악장의 주제를 가져다 썼다고 한다.(전에 언뜻 음악을 듣다가 같은 멜로디가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쓴 곡이지만, 멜로디만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내친김에 원곡의 노랫말을 찾아보니 어느 분이 원 노랫말을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과 함께 올려놓으셨다.

 

 

봄을 그리며(SEHNSUCHT NACH DEM FRÜHLING)

                        ... 크리스티안 아돌프 오베르베크(Christian Adolf Overbeck)

 

아름다운 오월아, 어서 와서

나무들을 다시 푸르게 해주렴

그리고 시냇가에

귀여운 제비꽃을 피워 주렴

내가 얼마나

제비꽃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아름다운 오월아, 나는

다시 산보를 나가고 싶어

 

Komm, lieber Mai, und mache

Die Bäume wieder grün,

Und laß mir an dem Bache

Die kleinen Veilchen blüh'n!

Wie möcht' ich doch so gerne

Ein Veilchen wieder seh'n!

Ach, lieber Mai, wie gerne

Einmal spazieren geh'n! ​

 

2절도 노랫말이 아름답다.​

 

겨울날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기는 하지,

눈 속을 달리기도 하고

저녁 놀이들도 많아.

트럼프로 집을 짓기도 하고

술래잡기나 벌금놀이도 하고

또 아름다운 들판에서

썰매도 실컷 탈 수 있지만​

 

Zwar Wintertage haben

Wohl auch der Freuden viel

Man kann im Schnee eins traben

Und treibt manch' Abendspiel

Baut Häuserchen von Karten,

Spielt Blinde Kuh und Pfand;

Auch gibt's wohl Schlittenfahrten

Aufs liebe freie Land.

 

 

그러나 겨울보다는 역시 봄 5월의 싱그러움과 흥겨움이 더 기다려지는 모양이다.

 

새들이 노래할 계절이 와서

푸른 잔디 위를

즐겁고 신나게 달리는 것

그것도 얼마나 즐거운데!

지금 내 작은 목마(木馬)는

저기 구석에 서 있어야 해

바깥 정원에는

진흙탕 때문에 나갈 수가 없으니까

아, 바깥이 조금 더

따뜻하고 푸르렀으면!​

 

Doch wenn die Vöglein singen,

Und wir dann froh und flink

Auf grünen Rasen springen,

Das ist ein ander Ding!

Jetzt muß mein Steckenpferdchen

Dort in dem Winkel steh'n,

Denn draußen in dem Gärtchen

Kann man vor Kot nicht geh'n.

Ach, wenn's doch erst gelinder

Und grüner draußen wär'! ​

 

이윽고 봄이여 5월이여 어서 어린이들에게 오라고 소리 높여 소망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시(詩)임을 알 수 있다. ​

 

아름다운 오월아, 우리 어린이에게

어서 오라고 우리는 빌고 있어!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먼저 와서

제비꽃을 많이 피게 해주고

나이팅게일도 많이 데리고 오렴

그리고 아름다운 뻐꾸기도...

 

Wir bitten dich gar sehr!

O komm und bring vor allen

Uns viele Veilchen mit!

Bring auch viel Nachtigallen

Und schöne Kuckucks mit

Komm, lieber Mai, Wir Kinder.

...블로그 '저녁놀이 있는 풍경'에서 전재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고 이것을 모차르트가 노랫말로 쓴 것이다. 그 당시 한겨울에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 봄을 기다리던 모차르트의 궁핍한 상황과 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만큼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갈구하는 아름다운 노랫말이기에 그렇게 가락도 간단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시는 잡지사에서 의뢰한 것이겠지만 어린이들에게 봄이 어서 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제목을 일본 사람들은 왜 '5월이여'라고 했을까? 아마도 노랫말 첫 구절과 이 노랫말의 전체 뜻을 살펴 그것으로 특징을 잡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가 이 곡에 가사를 붙였을까? 우리말 노랫말도 아주 멋지지 않은가? 어쩌면 원곡의 시에 담긴 정서를 살펴서 노랫말을 1절만 만들어 붙인 것 같다. 2절을 배운 기억이 없으니까….

 

 

블로그에 위 번역된 시를 올리신 분은 이 노래를 회상하면서 "수십 년 전 내 누나들이 부르던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본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소박한 노래 한 곡에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아이들에게 동요(童謠)나 동시(童詩)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누가 작사한 것인지 알기가 어렵지만 이 노랫말도 차가운 밤 창문에 부딪히는 낙엽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아기들 방이 춥지 않을까 걱정하며 돌아다니는 존재로 묘사하였다. 곧 들창에 달그락 부딪히는 나뭇잎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시간은 추운 밤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따뜻하게 등불 하나 밝혀준다.

 

우리가 흔히 부르고 듣는 노래 하나도 이처럼 뒷면의 이야기를 알면 감동이 될 수가 있다. 모차르트 작곡이라고만 알려진 이 노래에 모차르트의 말년, 죽음을 앞둔 힘든 겨울이라는 시간이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사실상 모차르트의 마지막 노래라면 우리는 모든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이 그렇듯이 작곡가들이 이 세상에 보내는 하직인사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모차르트의 뒤를 이은 슈베르트가 지은 《겨울나그네》라는 연가곡집과 비슷한 사연이 있음을 알겠고, 또 슈베르트가 마지막 작품으로 《피아노협주곡 21번》을 작곡하면서 표현했던 인생의 즐거움과 고통과 절망, 희망 등을 느낄 수 있듯이 모차르트의 이 작은 노래를 통해 모차르트가 다시 봄을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우리 노랫말로 멋지게 바꾸어주신 분을 통해 늦가을, 초겨울의 이 스산한 날씨 속에서도 어린이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말로 가사를 바꾸신 분도 바로 이런 원시의 어린이에 대한 마음을 낙엽에 대신 부여해서 그들이 어린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전하도록 한 것이리라.

 

 

 

이제 앞으로의 늦가을이나 초겨울, 그리고 그다음 해 제비꽃이 피는 봄이 올 때까지, 이 노래는 우리 노랫말을 통해서라도 우리 어른이나 젊은이들이나 어린이 모두에게 아름다운 마음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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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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