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川直轄市長

  • 등록 2010.10.23 13: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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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하는 우리말 생각
仁川直轄市長




  

1982년에는 이렇게 쓰는 게 유행이었나보다.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속종 왕비는 '한글'을 사랑했건만 아직도
 한반도의 관리와 학자들은
'명나라' 눈치보느라 '한글' 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때 명나라 시절엔 문서하나 작성하는데도 눈치코치를 봐야 했다지만
지금은 <한글>쓰기가 수월해졌다. 일제 순사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과감히 문자혁명을 "우리말 우리글'로 해보자.

저렇게 써두면 누가 과연 이 비문을 읽을 것인가!
돌값과 이름값이 같지 않다면 후세에 이름 남기는 방법도
연구 할 일이다.


----------참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1827회:www.solsol21.org>에 보면 다음의 글이 나옵니다.

한국 문학사 속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한문으로 되어있어 한글로 된 작품을 보기가  매우 드뭅니다. 이런 가운데 몇 년 전 발견된 숙종 계비 인원왕후가 쓴 ≪션군유사≫, ≪션비유사≫와 제목이 없는 “뉵아육장” 등 세 작품은 그래서 더욱 귀중합니다.

먼저 ≪션군유사≫는 인원왕후가 돌아가신 아버지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일화를 적은 것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김주신은 딸이 왕비임에도 겸손하기가 그지없어 궁중을 드나들 때 궁인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임금의 장인으로 특별한 대우를 뽐낼 수  있으련만 몸가짐을 늘 조심히 하고 법도를 지켰으며 딸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지만 왕후가 된 뒤에는 스스로 신하의 예를 지키며 딸을 깍듯이 모셨다고 아버지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션비유사≫는 인원왕후의 어머니 곧 김주신의 아내인 가림부부인 조씨의 일화를 쓴 작품입니다. 가림부부인 조씨 역시 딸이 왕후가 된 뒤 근신하고 궁중 드나듦을 삼갔습니다. 또 집안사람들에게 궁중으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단속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왕후인 딸에게도 법도를 지키고 선물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밖에 한 자료는 제목이 없는데 ‘시경’에 나오는 “부모가 키워준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의 <뉵아육장>, 중국 고대 모범적인 여성의 이야기인 <노 모 사>,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는 <노용자탄직금도>가 들어 있습니다. 인원왕후는 숙종 사후 33년을 더 살면서 자식을 낳지 못하고 80살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장희빈의 아들 경종 즉위, 영조 즉위를 보고 왕대비, 대왕대비가 되도록 구중궁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친정부모의 사무친 마음을 한글로 써내려간 맘씨 고운 조선의 왕비였습니다.
이윤옥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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