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문자, 인왕을 깨우다

  • 등록 2013.07.31 13: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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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사진전_인왕산 설왕설래(雪王雪來)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6 26일에 받아본 휴대폰 문자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해본다.

 '주세페 김구미 선생님~ 오늘 모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한 두분 뵈서 반가왔습니다. 75일 금요일 저녁 임작가 사진전 오프닝에 오실 수 있으면 함께하시지요. 인왕산! 높지 않아도 장엄하지요? 역시 조선의 궁궐을 호위할 만 하구요. 임작가 사진이 겨울 눈 내린 인왕산 풍광이라 해서 한번 써본 시 입니다. 두분 나날이 기쁨이시길~'
 

<인왕을 깨우다>

잠든 인왕을 깨운 것은 바람이었다

오백 년 왕조의 위엄
제국의 탐욕에 스러질 때

펄펄 내리던 눈

호랑이의 포효도 묻혔다

사람들 기억 속

다만 아련한 설화로 남아 있던 산

백두를 넘어 온 겨울바람

녹슨 눈을 쓸어내자

끊어진 금강의 뼈대 다시 이어지고

호랑이 울음소리 들렸다

하얀 힘줄로 인왕을 부둥켜 안았던 소나무

푸른 잎 토해내고

바위에 아로새겨진

종묘사직의 지문 뚜렷하다

겸재의 수묵에서 흐르던 물소리

가슴으로 들려오는 곳

잠 깨어 가부좌 튼 인왕을 만나러

바람 부는 날에는

인왕엘 가자@@@

 

   
    ▲ 사진작가 임채욱

이 문자메세지를 받았던 날 점심, 나는 아내와 함께 인왕산 아랫동네인 서촌에 지인을 만나러 갔었다. 동네에 들어서자 기대하지 않았던 아담하고 정겹게 조성된 골목이 나와서 우리 부부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점심식사를 하며 지인은 인왕산이 좋아 서촌으로 작업실을 옮겼고 곧 인왕산 설왕설래(雪王雪來)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임채욱 작가를 소개받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사진작가라 했다. 그런데 이때에 이미 알고 지내는 임병걸 시인이 그 자리에 도착하여 즐거움이 더하였다. 

 
식사 후 우리는 차를 마시며 문화예술에 대한 작은 토론도 하였다. 헤어지기 전에 잠시 자리를 옮겨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75세에 그렸다는 인왕제색도 중에 한 배경이 되었다는 수성동 계곡 앞에 서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우리는 각자 헤어졌다.
 

   
▲ 아주 작은 한옥갤러리 서촌재

물소리가 좋았다는 수성동 계곡은 한양의 5대 명승지로 꼽혔었다고 하며 서촌 지역은 아직도 안평대군, 겸재 정선, 윤동주와 이상 시인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종로의 상징적인 곳이라 한다. 2010년 옥인동 아파트를 철거하고 생태역사문화공간으로 복원되어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다
.

임병걸 시인이 이 문자메세지를 보내 온 것은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약 2시간 후였다. 우리 부부가 푸근한 마음으로 서촌을 다녀온 기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시내에서 다른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벌써 멋진 시 한 수가 탄생한 것이다. 집으로 향하면서 문자시를 읽는 우리 부부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절로 피고 강변에서 바라본 저멀리 서촌 우뚝 선 인왕산의 풍광이 다시금 느껴졌다. 
 

옛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그랬으리라.

   
    ▲ 사진작가 임채욱
마주친 일상의 사건들을 이렇게 바로 즉흥의 멋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삶 속에서 시
를 풍류로 즐기는 것이 바로 예술의 출발이며 이런 것을 소위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더 나아가면 흥이 절로 나고 이는 악...로 승화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또한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요소 즉 문...이 없는 시... ...는 어쩌면 경계해야 할 공허한 풍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임병걸 시인의 문자를 받고 다시 읽어보며 예술은 이렇게 조건 없는 일상의 순수한 발로에서 그 세계가 무한히 넓어지고 깊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이 예술적인 문자메세지에 어떻게 답장을 할 것인가? 예술은 이렇게 즉흥적이고 그 행함도 거침없이 자유로우면 더 멋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면 나도 음악으로 답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밤에 임채욱 작가의 사진과 강병인 서예가의 캘리그라피 헌정으로 디자인되었다는 포스터를 다시 보면서 나도 컴퓨터 악보에 겨울의 인왕산을 음표로 그리며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을 가야금으로 하려다 내가 오르는 것이니 나의 기타 아르페지오를 그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인왕에 오르기 시작한다. 자욱한 운무를 이불 삼아 잠자는 인왕산의 신비롭고 웅장함을 튜바Tuba의 무겁고 아득한 소리로 정하여 음표를 그려 넣자 수 백 년 서울을 지켜 온 인왕이 잠에서 깨어나 허옇게 모습을 드러낸다.

 

높은 겨울 하늘에 치솟은 인왕의 기개는 오백 년 왕조를 호위하는 우백호.

임작가의 사진들은 하나 하나가 저마다 한 점의 수묵화다.

   
   ▲ 사진작가 임채욱


흰호랑이의 등줄기와 줄무늬가 눈 덥힌 인왕산의 바위와 소나무의 어우러짐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사진을 여러 번 보니 알겠다. 임채욱 작가는 눈 내린 겨울의 인왕산에서 숨어 잠자던 백호의 수묵화를 발견한 것이다.


카리스마의 악기 잉글리쉬혼의 명료한 선율 속에서 백호도 그 거친 발톱으로 연실 거문고 긴 세월의 줄을 깊고 강하게 뜯으며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실랑이 한다. 그러다 바순과 피리가 입모아 애틋한 소리를 내자 인왕도 함께 울다 사라지면서 드디어 웅장한 서울 지금의 모습이 보인다. 서양악기와 우리 국악기의 합주 속에는 모진 세월의 한이 춤추고 백호의 기운이 용솟음친다. 전통과 현대가 갈등하면서 눈 덥힌 인왕산은 커다란 백호가 되고 그 아래 산자락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의 터전에는 검뿌연 빌딩숲이 장엄하다.

음악은 수성동 계곡 앞에서 겸재의 그림을 연상하며 조용하게 끝난다. 우리가 이번 사진전을 앞두고 잠시 나누었던 인왕담소가 물소리처럼 돌돌 흐르며 잔잔하게 멀어져 간다.

가상악기로만 곡을 만들어 아쉬움이 있지만 언젠가 제대로 구성된 악단으로 큰 영상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공연을 한다면 멋질 것 같다.

 

 
<듀오아임 동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qeaMZCePV4E&feature=c4-overview&list=UUIPGxi6PaF7O57A-6c99yAg

 

곡을 만들어 임채욱 작가에게 들려주던 날 전시를 보러 온 한 여자 손님은 내가 만들어간 사진과 음악 동영상을 보고 들으며 연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어 우리는 잠시 당황했었다.
평소에 좋아했었던 인왕산에 암투병을 마치고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아 온 것이라 했다. 아마도 예전에는 그저 도시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인왕산의 존재를 이제야 제대로 만나는 순간인 듯 했다. 죽음으로의 강을 무사히 건너와 다시 못 볼번했던 인왕산은 다시 보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하고 감동적인 것일까... 하며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본다.

임채욱 작가는 이번 사진전 장소를 거창한 전시공간이 아닌 서촌재라는 아주 작은 한옥에서 소박하게 하기로 고집하는 데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서 보시면 알 것이다 

 
   
▲ 주세페 김동규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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