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인문학이 절실하다

2014.11.16 17:23:49

훈민정음학은 인문학의 결정체이며 융합인문학의 꽃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요즘 인문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도 정작 대학가의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강의와 이벤트 중심으로 이뤄지는 인문학 열풍은 인문학 위기의 또 다른 반증일지 모른다. 취업과 한줄 세우기식 대학 평가에 매몰되어, 대학의 본분을 읽어버린 대학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세종대학교는 철학과가 없고 역사학과도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밖에 많은 대학들은 문예창작학과를 없앤 지 오래고 주시경을 낳은 배재대학교도 국어국문학과를 없앴다 

인문학 분야는 취업이 안 된다고 경쟁률이 줄어들고 있고,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영어 파시즘이 강의와 논문을 지배하다 보니 한글과 한국어 관련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 더불어 배려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위기를 뜻한다. 인문학은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는 학문으로 인문 정신 곧 사람다움의 뜻을 담은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뼈대는 사람답기 위해 주고받는 배려와 소통의 언어학, 상상의 나래를 통해 서로 다른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총체성으로서의 더불어 문학, 왜 그래야 하는지를 따져 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근본을 따지는 상생 철학,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지는 성찰의 역사학이 인문학의 주요 뼈대가 된다. 또한 인문학은 다양함을 담는 넉넉함이 살아 있다

 

   
▲ 인문학 구성도 1

과학과 예술도 사람다운 삶을 위한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인문학의 품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러한 융합적 인문학은 사람다움을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다루는 교육학과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심리학, 사회적 실천과 응용문제를 다루는 사회학으로 아우르거나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다운 삶을 다루는 인문학은 언어학, 문학, 역사학, 철학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등이 함께 녹아드는 학문이기도 하다. 

   
▲ 인문학 구성도 2

이러한 융합 인문학의 이상을 보여준 이가 세종이었다. 세종은 다양한 개별학문에 몰입하고 발전시키되 철저하게 사람다운 가치와 실용으로 집약하고 융합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세종 시대는 15세기였으므로 지금처럼 학문의 분화가 이뤄진 시기는 아니었다. “인문학, 철학, 과학, 사회학등등은 근대 이후에 학문의 분화로 기존의 학문이 재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 학문의 분화는 학문을 더욱 세밀하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학문과 삶의 괴리라든가 학문의 파편화라는 비판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학문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학제적 연구로 이뤄지게 되었고, ’통합, 통섭, 융합등의 핵심어가 더욱 부각되었다. 따라서 15세기의 학문을 근대 학문 시각으로든 융합이라는 시각으로든 지금의 잣대로 이러쿵저러쿵 비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인문학융합이라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세종이 이룩한 학문 세계는 그런 점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까지 일러준다는 것이다.  

세종은 다양한 인재 양성을 통해 언어학, 역사학, 과학, 음악학, 문학 등을 꽃피우게 했다. 언어학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훈민정음>(1446) 해례본은 하층민의 소통을 배려한 문자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치통감> 같은 중국의 역사책을 연구하며 성찰의 역사에 충실했다. <자치통감>은 중국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 1019~1086)1065~1084년에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인데 세종은 1434716일에 직접 갑인자로 간행하고 143644(세종 1840)에는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를 편찬 배포하여 역사서의 가치를 나누었다.  

우리다운 악기 제작과 표준음을 제정하고 정인지가 대표 저술한 <아악보>(1430)를 통해 그 성과를 정리했다. 이 책 서문에서 정인지는 세종 관련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음악은 성인(聖人)이 성정(性情)을 기르며, 신과 사람을 화()하게 하며, 하늘과 땅을 자연스럽게 하며, 음양(陰陽)을 조화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태평한 지 40년을 내려왔는데도 아직까지 아악(雅樂)이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옵서 특별히 생각을 기울이시와 선덕(宣德) 경술년 가을에 경연에서 채씨(채원정)율려신서(律呂新書)를 공부하시면서, 그 법도가 매우 정밀하며 높고 낮은 것이 질서가 있음에 감탄하시와 음률을 제정하실 생각을 가지셨으나, 다만 황종(黃鍾)을 급작히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그 문제를 중대하게 여기고 있었다. _<아악보>(1430) 서문의 번역(세종실록 수록 번역본) 

이순지가 대표 저술한 <제가역상집>(1445) 같은 책을 통해 동양의 과학을 집대성하고 실제 <자격루><앙부일구>, <측우기> 같은 사람을 존중하고 높이고 과학 기기로 과학의 업적이 드러나게 했다. 특히 앙부일구는 1434년 훈민정음 창제 9년 전에 제작된 것인데 문자 모르는 백성을 위해 시각 표시를 동물로 표시해 시각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을 뿐 아니라 소통을 철저히 배려했다. 

<용비어천가>(1447)와 같은 서사시 문학을 통해서 후대 왕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부지런할 것을 명문화하여 후대 왕들을 경계했다. 왕조의 정당성은 제대로 된 정치를 통해 입증되어야 함을 정치와 정치학의 본령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 융합인문학으로서의 훈민정음학을 최초로 기술한 글쓴이의 책

이렇게 세종은 근대 학문처럼 철저히 과정과 방법을 엄격히 하되 사람 중심의 세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신분제의 엄격함이 살아 있는 한 사람다운 세상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그러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사람다움을 배려한 학문과 정치로 그 길을 연 것은 기적이었다. 세종실록은 세종의 이러한 학문 태도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왕은 매일 4(四鼓)에 일어나서, 환하게 밝으면 군신의 조참을 받은 연후에 정사를 보며, 모든 정사를 처결한 연후에 윤대(輪對)를 행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고, 수령의 하직을 고하는 자를 불러 보고 면담하여, 형벌 받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을 타일렀습니다.  

그 연후에, 경연에 나아가 성학(聖學)에 잠심하여 고금을 강론한 연후에 내전으로 들어가서 편안히 앉아 글을 읽으시되, 손에서 책을 떼지 않다가, 밤중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드시니, 글은 읽지 않은 것이 없으며, 무릇 한번이라도 귀나 눈에 거친 것이면 종신토록 잊지 않았는데, 경서를 읽는 데는 반드시 백 번을 넘게 읽고, 자사(子史)는 반드시 30번을 넘게 읽고, 성리(性理)의 학문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고금에 모든 일을 널리 통달하셨습니다 

집현전을 설치하여 선비들을 모아 고문(顧問)을 갖추었으며, , 널리 고금의 충신과 효자·열녀의 사적과 도형 기전(圖形紀傳)을 모아 시()와 찬()을 써서 이름하기를, ‘<삼강행실>’이라 하여 안팎에 반포하니, 궁벽한 촌 동리의 아동 부녀에 이르기까지 보고 살피지 않는 이가 없게 하였습니다.  

, 주나라 처음부터 이제까지와 우리나라의 모든 치란흥망(治亂興亡)으로서 본받을 만한 것과 경계하여야 할 일을 널리 찾아 기록한 것이 모두 150권인데, 이름하기를 ‘<치평요람>’ 이라 하였습니다. 음률이나 천문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밝게 통달하며, 신하를 예도로서 대우하여 왕의 세상이 끝나도록 사대부로서 형벌에 죽은 자 없었습니다._세종실록, 1450222 

이러한 세종의 성실한 학문과 정치 노력 덕에 인문학도 과학도 골고루 발전하고 꽃을 피운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정판은 역시 훈민정음(1446, 해례본)이다. 새 문자의 이론적 근거와 가치를 기술한 이 책에서 세종은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고 근대 언어학과 탈근대 언어학을 접속하였으며 음악과 사회학 등의 가치를 집약했기 때문이다. 모든 학문 내용을 손쉽게 담아내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 창제와 그 배경 설명만큼 뛰어난 학문 업적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훈민정음학은 인문학의 결정체이며 융합인문학의 꽃이다.

 

김슬옹 교수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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