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고향 역’

  • 등록 2015.09.26 09: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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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56] 모두가 고향역을 그리워한다

[한국문화신문=김상아 기자]

   
▲ 나훈아의 "고향 " 음반 표지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 역
이뿐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 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 역
다정히 손잡고 고갯마루 넘어서 갈 때
흰 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 역

                                    ‘고향 역가운데 

코스모스는 그리움이다. 아득한 그리움이다. 

그날,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에 나부끼던 영월역의 코스모스는 역사 처마의 단청처럼 고왔다. 삭도에서 날리는 석탄가루에 새까매진 플랫 홈이 배색이 되어 더욱 그랬다. 서울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명절이나 쇠고 가라며 붙잡던 이웃들. 타관살이가 정 힘들면 다시 돌아오라며 눈물로 배웅하던 반장 댁. 그들을 뒤로한 채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서울로 우리 모자가 떠나던 날, 그때는 몰랐다. 코스모스 씨방 속에 그리움의 가시가 여물고 있다는 것을. 

제천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탔을 때부터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지는 새 세상에 정신이 팔렸다. 영월선의 딱딱한 의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푹신한 중앙선 의자는 신천지로 향하는 철부지 소년의 포근한 꿈을 부추겼고, 서울거리를 가득 매운 자동차와 넘쳐나는 사람들, 거대한 빌딩 숲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말로만 듣던 전차도 타보고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도 타 보았다. 짜장면과 호떡, 아이스크림도 난생처음으로 맛보면서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서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선 더 큰 걸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자는 낙오되지 않으려 발버둥 쳐야 했고 그러는 사이 모운동 탄광촌의 기억들은 까마득히 잊혀갔다. 

말씨도 겉모양도 서울을 닮아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한강 산책길에서 둔치가득 넘실대는 코스모스 물결과 맞닥뜨린다. 빨강, 분홍, 하양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 장관에 넋을 빼앗긴 나는, 꽃을 꺾으려다 그만 씨방 속에 숨어 있던 그리움의 가시에 손을 찔리고 만다. 나는 그리움이 온 몸에 퍼져 향수병을 앓게 된다. 향수병 치유를 위해 다시 찾은 영월역은 옛 모습 그대로 단아한 한옥의 자태를 잃지 않고 나를 품어주었다

가수들 가운데 가장 토속적인 목소리를 지닌 나훈아는 1951년 항도 부산에서 최홍기를 본명으로 태어났다. 학교 공부보다는 운동과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교생 때 무작정 상경하였다. 

작곡 사무실을 찾아가 사환을 자청하여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꿈을 키우던 그에게 예상보다 빨리 행운이 찾아온다. 취입을 하기로 예정된 가수가 나타나질 않자 누군가 장난으로 사환인 그를 대신 마이크 앞에 세웠고, 당연히 웃음거리로 끝날 줄 알았던 그 일은 대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의 노래를 들은 주변 관계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즉석에서 가수로 발탁하였다. 그의 나이 18세이던 1968년의 일이다. 

그렇게 가수가 된 그에게 곧이어 두 번째 행운이 찾아온다. 당시 가요계의 기린아였던 남진이 입대를 한 것이다. 나훈아는 남진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웠고, 남진이 제대한 후에는 서로 정상의 자리를 주고받으며 우리 가요사에서 최고의 맞수 관계를 구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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