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68] 둘 다섯 ‘긴 머리 소녀’

  • 등록 2016.02.07 1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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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마음 홀린 아름다운 화음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도회지의 거리를 걷다보면 행인들의 매무새가 참으로 다양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옷의 모양이나 빛깔도 그러하거니와 머리모양이나 색깔도 옷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각양각색이다. 다양, 다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은 어떤 형의 여성을 선망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소위 70, 80세대들은 갸름한 얼굴에 긴 머리가 찰랑대는 여성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남성들은 관능미보다 청순미를 선호했다. 일단 머리카락이 길면 겉보기에는 청순해 보인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특히 우리 민족에 있어서 단발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고종 32년인 1895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한 단발령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에게는 강제성이 없었기에 1922년에 가서야 모발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한남권번 기생이었던 강향란이 그 효시이다. 하지만 강향란의 단발은 굳은 의지의 표현일 뿐 미용 목적은 아니었다. 강향란의 단발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져 온다.

그녀는 1900년 대구에서 강석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열네 살에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수업을 하였는데 예술적 재능이 탁월하여 뭇 한량들이 군침깨나 흘렸던 모양이다. 스무 살 되던 해에 사랑에 빠졌는데 상대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의 후원으로 배화학교 보통과에 입학한 그녀는 성적이 우수하여 곧 고등과로 진학하게 된다.

그러한 그녀에게 생애 최대의 시련이자 기회가 찾아온다. 애인이 변심한 것이다. 크게 상심한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한강철교 위에서의 자살 시도는 행인에게 발견되어 수포로 돌아갔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나도 남자와 똑같은 사람이다. 당당하게 살아가자.”
그녀는 삭발을 감행했다. 새로운 한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기엔 아직 덜 여물었다. 배화학교에서는 퇴학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 술 더 떠 아예 남장을 하고 정측강습소에서 남성들과 동석하여 미술수업을 하였고, 동경유학과 상해유학까지 다녀오며 단연 신여성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 뒤 그녀는 영화배우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거센 폭풍으로 발달하듯이 그렇게 시작된 단발이 이제는 우리 여성 전체의 헤어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옛 골목길을 걸으며 가끔 긴 머리 여성을 아쉬워하는 것은 나의 고루함 탓 일까?

   
▲ 둘다섯 음반 표지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 머리 소녀야
눈먼 아이처럼 귀먼 아이처럼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던
개울 건너 작은 집에 긴 머리 소녀야
눈 감고 두 손 모아
널 위해 기도하리라

 

둘 다섯의 대표곡 <긴 머리 소녀>는 1975년에 발표되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두진과 오영진의 성을 따서 ‘둘 다섯’이라 이름 짓고 1974년에 첫 선을 보였다. 얼마 뒤 오영진이 떠난 자리를 오세복이 메우고 최전성기를 맞는다. 화음이 아름다워 특히 소녀 팬들이 많았으며 일기, 밤배, 먼 훗날, 얼룩고무신 같은 히트 곡을 남겼다. 1976년에는 영 사운드가 동명이곡의 <긴 머리 소녀>를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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