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 짙어오것다’
이수복 시인은 왜 풀빛이 서럽다고 읊었는지 모르겠으나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서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착 가라앉고 우울해 지는 건 사실 인 것 같다. 착잡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창밖 화초에 맺힌 빗방울이 바람에 흩어졌다 다시 맺히는 그 순간에도 기억의 편린들로 제작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지금이야 흔한 게 우산이지만 1960년대와 70년대엔 비닐우산도 귀했다. 그 시절엔 보슬비 정도는 맞으며 걸어가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우산을 든 사람은 비를 맞고 가는 사람에게 우산 씌워주는걸 당연하게 생각 했었다.
그때 나는 귀밑솜털이 채 벗겨지지 않은 중학생이었다. 벚꽃낙화가 거리를 하얗게 색칠하던 봄비 내리는 날, 난생처음 사랑의 열병이란 걸 경험하게 된다.
하교 길에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우산이 없어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돌아보니 내가 가끔 들르던 문방구집 딸이었고 그녀는 이미 여고생이었다. 심장은 마구 뛰었고 머릿속은 텅 빈 듯하였다. 한 가지 분명한건 그녀는 자기 집을 훨씬 지나쳐 우리 집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그녀는 저녁때 교회 뒤뜰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건네 왔다. 나는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찌감치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자정이 다 되도록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오지 않는 그녀를 마냥 기다렸다. 며칠 뒤 어느 껄렁패가 갈색 눈동자의 문방구집 딸을 꿰차고 어디론가 도망갔다는 해괴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날부터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리고 강산이 바뀔 만큼 세월이 흐른 뒤 나는 DJ가 되어 있었다. 어느 음악 감상실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디서 본 듯한 여자가 보였다. 내 눈과 마주친 그녀가 몹시 당황했지만 나는 오디션의 긴장감 때문에 그 여자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날 오디션에 합격을 했고 다음날 출근하여 어제 그 갈색눈동자의 여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거기서 일하던 직원인데 어제 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만 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련해오는 마음을 달래며 박인수의 ‘봄비’를 첫 곡으로 턴테이블 위에 얹었다.
▲ 박인수 ‘뭐라고 한마디 해야할텐데’ 음반 표지 |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이 노래는 이정화가 69년에 발표하였으나 별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70년에 박인수가 다시 불러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박인수의 삶은 늘 부평초 같은 삶이었다. 평안도에서 태어나 6·25때 월남하여 이리저리 떠돌다 강원도와도 인연을 맺어 춘천초교를 2년간 다녔다. 한국최고의 소울 가수 박인수!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봄비를 열창할 날을 기다려본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