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의 ‘여울목’

  • 등록 2016.07.24 11: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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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88]
독특한 목소리・무대매너…개성파 가수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싯누렇던 강물 빛이 이제 조금씩 묽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큰 물기둥은 처음이었다. 물이 서서 달린다더니 정말 그랬다. 당목이 떠내려가고 서낭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의 놀이터인 잔디밭도 바위가 허옇게 드러나 폐허처럼 변했다.

 

마을사람들은 물이 빠지기 시작한 강가에 모여들어 한숨만 쉬고 있었다.

 

, 저 떼 봐라!”

 

벌거숭이 꼬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기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잇댄 떼가 여울목의 거친 물살을 헤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에 광목수건을 두르고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은 떼꾼들이 부지런히 노를 젓고 있었다. 떼 한척이 흘러가고 잠시 후 또 한척이 내려가고 세 번째 떼가 여울목을 들어섰을 때였다. 방향을 잘못 잡은 떼 머리가 건너편 바위에 얹히더니 컴퍼스로 그리듯 꼬리가 반원을 그리며 좌초되고 말았다.

 

떼를 다시 띄우려 한참을 발버둥 쳐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떼꾼들은 우리 마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네 어른들 예닐곱이 합세하여도 꿈쩍 않던 떼가 해 꼬리가 서산마루에 걸쳐질 즈음에서야 여울목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50여리나 떨어진 도담 나루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들은 신세도 갚을 겸 우리 마을에서 하룻밤 정박하기로 하였다. 떼꾼들은 돈이 많아 밥값을 후하게 쳐 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 할머니는 재빨리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고 우리 마당은 때 아닌 잔칫집마당이 되었다. 떼꾼들은 재 너머 주막에다 막걸리도 몇 말 시키고 씨암탉도 몇 마리 잡아서 동네 아저씨들 노고에 걸쭉하게 보답하였다.

 

입심 좋은 그들은 서울얘기로 사람들 귀를 홀망하게 하더니 술자리가 거나해지자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깃불 소리를 장단삼아 아라리를 뽑기 시작하였다. 정선아라리에서 시작하여 이 고을 저 고을 온갖 아라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 동네 카수용봉이 아저씨도 이에 뒤질세라 강원도아라리로 받아치며 밤이 깊어갈수록 그렇게 모두들 한 넝쿨이 되어갔다.

 

오늘은 강가 마을 사람들과 수많은 얘기를 나누며 흘러온 여울목을 추억하며 한영애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간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를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가수를 꼽을라치면 주저 없이 한영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목소리와 무대매너. 혹자는 외국가수 멜라니 사프카나 제니스 조플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녀들의 국제적 명성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오래 동안 연극으로 내공을 다져온 한영애는 몸짓으로 노랫말을 전하는 신비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밤무대 가수로 가요계에 입문한 그녀는 1976년에 이정선, 이주호, 김영미와 함께 해바라기 사중창단을 결성하며 공식 데뷔하였다.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는 30대 초반의 친구로 각인되어 있는 한영애! 그녀의 음악인생도 어언 40년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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