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H- 그녀는 80노파다.
초근목피를 해야 할 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자식 없는 집에 양녀로 들어갔다. 성품이 표독스런 양어머니는 굶기기와 매질, 혹사로 어린 딸을 학대했다. 그래도 잡초처럼 강인한 근성을 물려받은 그녀는 용케도 살아남아 스무 살 되던 해에 시집을 갔다. 가세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고 신랑도 인물이 훤칠하여 복이 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과부 시어머니의 지독한 술주정과 아편쟁이 남편의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주색과 아편에 빠져 살던 남편은 돈 떨어지면 내려와 돈 내놓으라며 몽둥이질을 해댔다.
어느 해, 해가 바뀌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나서며 그녀는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조교육이라곤 받아 본적이 없기에 남자들의 유혹을 죄다 받아들였다. 그러다보면 팔자가 고쳐질 줄 알았다. 열 번도 넘게 시집을 갔다. 그 가운데는 정말 팔자를 고칠 뻔한 남자도 몇은 있었다. 그러나 잡초처럼 강인한 그녀의 생명력만큼 고집도 억셌다. 결국 남아있는 남자는 한 명도 없다.
S-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다.
돌팔이 약장수 아버지를 둔 덕택에 돈 걱정은 안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나왔다고는 하나 일자무식이다. 성질이 포악하여 조금이라도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다 휘저어버린다. 수틀리면 제 부모에게도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고, 제 흉은 열 개면서 남의 흉 하나를 꼴을 못 본다. 백 번 잘해주다 한 번만 삐끗해도 한을 품는다. 허영과 낭비벽까지 뒤지지 않는다. 그 업보가 되돌아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풍찬노숙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고 자식들은 제 어미의 행동을 빼다 박았다. 그러한 그녀에게도 팔자를 고칠 단 한 번의 기회는 있었다.
M- 그는 생모인 H의 삶을 가련히 여겨 늘 그녀의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집을 갔다가 돌아오기를 밥 먹듯 하여도 원망하지 않았다. 대형 금전사고를 쳐도 묵묵히 수습해 줬다. 그러나 H로부터는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볼멘소리만 들려왔다. 그가 S를 만난 것은 그의 측은지심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하는 그녀의 처지를 동정하다가 인연이 되어 거기서 딸을 하나 낳는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의 허영의 제물이 되더니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S는 뒤늦게 그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를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H와 S 둘 다 팔자가 고쳐지기만 바랐을 뿐 노력을 하지 않아 못 고치고 말았다. 결국 팔자란 것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이 우는 걸 못 봤겠지요
만약 첫 인사가 없었다면
작별도 없었겠지요
만약 내가 당신을
붙잡지 않았다면
나의 감정을 보여주지
못 했겠지요
이제 내가 떠날 시간이지만
당신에겐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요
당신은 팔자가 센 여자
이제 당신은
불행해질 거예요
당신의 남자를 찾을 때까지
오늘은 미국밴드 <키스(Kiss)>의 ‘팔자 센 여자(Hard luck woman)’를 감상한다.
음악실력보다는 기괴한 분장과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더 유명했으며 70년대 중반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