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역사상 으뜸 명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 등록 2020.04.09 1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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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과 가펑클’의 메마른 세상을 적셔주는 단비 같은 시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0]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방효유(方孝孺)는 명(明) 초기의 학자로 건문제의 스승이다. 주체(朱棣)가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인 2대 황제 건문제(建文帝)를 죽이고 황제에 오르자, 그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역사상 최악의 필화사건의 장본인이 된다.

 

영락제(永樂帝)가 있었다. 그는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체(棣), 열한 살에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태조가 죽자 장남 표(標)의 아들인 윤문(允炆)이 2대 황제에 오르게 된다. 야욕가인 그는 비밀리에 군사력을 키워 “황제 주변의 간신들을 토벌 한다.”라는 구실을 달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 자리를 빼앗는다.

 

조카 건문제 주위의 신하들을 모두 살해했으나 방효유만은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즉위조서를 써 달라며 구슬렸다. 완강히 버티던 방효유는 영락제의 거듭된 종용에 마침내 붓을 든다. 잔뜩 기대하며 지켜보던 영락제에게 전해진 종이에는 단 네 글자 연적찬위(燕賊簒位, 연나라 도둑이 황제 자리를 빼앗다)였다.

 

“네 이놈! 구족을 멸하리라.”

“구족이 아니라 10족을 멸해 보거라. 내가 눈 하나 깜빡 하나!”

 

방효유의 입은 그 자리에서 찢기고 10족 색출의 회오리가 분다. 당대를 중심으로 위로 4대 아래로 4대, 9족은 찾아냈으나 10족은 찾아낼 도리가 없었다. 궁리 끝에 나온 계책이 방효유의 제자와 친구들을 10족으로 간주하는 것. 873명을 죽이고 수백 명을 감옥으로 보낸 뒤 방효유를 능지처참했다.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있었다. 제정 러시아 말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과학의 순교자”가 된 식물 육종학자이다. 러시아 농무성의 <신작물 연구소> 소장으로 있을 때 전 세계를 누비며 식물 씨앗을 거두어들였다. 오로지 식량 연구에만 깊이 빠져있던 그는, 그의 명성을 시기한 어느 어용 식물학자의 모함을 받아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총살형을 선고받은 뒤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그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동료들은 히틀러의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 저장고에 식량 씨앗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한 톨도 건드리지 않은 채 모두 굶어 죽었다. 러시아 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리센코가 있었다. 스탈린 시대에 “과학계의 독재자”로 이름을 떨친 식물학자이다. 그는 “초원의 체계”라는 허황된 사탕발림으로 스탈린을 꼬드겨 권력을 틀어쥔다.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존의 식물학자들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거봉 바빌로프마저 무너뜨렸다. 수많은 과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사였다.

 

역사는 강물이고 인생은 길이다. 흐르는 강물 따라 우리는 자신의 길이 옳다 믿으며 걸어간다. 세상에는 땅 위의 길보다 많은 길이 있다. 방효유는 선제(先帝)에 대한 충절의 길을 걸었고 영락제는 권력을 위해, 바빌로프는 기아해방을 위해, 리센코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재물을 얻으려, 어떤 이는 명예를 얻으려 걷는다. 출발할 때의 길은 저마다 달라도 끝은 모두 죽음에 맞닿아있다.

 

죽음 앞에는 남는 게 없다. 권력도 명예도 미모도 재물도 다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게 하나 있다. 남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꽃을 피우는 게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사랑해야 한다. 세상의 근본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미움이 없다. 다툼이 없다. 세상을 맑게 한다. 미래가 거기 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그대 지치고 의기소침해질 때

그대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나 그 눈물 닦아 드리리

그대의 동반자이기에

​사는 게 힘들어질 때

기댈 친구들을 찾을 수 없다면

저 거친 물결 위의 내 몸을 뉘어

다리가 되리

 

그대 가진 것 없이

거리를 헤맬 때

해 저문 저녁이 힘들 때

나 그대의 쉼터가 되리

​그대의 짐을 덜어드리리

 

어둠이 내려앉고

고통이 주위를 감싸면

저 거친 물결 위에 내 몸을 뉘어

다리가 되리

그대를 평안케 하리

(뒤 줄임)

 

필자를 비롯한 이른바 “베이비부머”들 에게 1970년대는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다니고 군 생활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들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리라. 돌이켜 보면 우리 세대보다 행복한 이들도 없는 것 같다. 구한말의 극심한 가난도 겪지 않았고 일제의 압제(壓制)도 받지 않았고 전쟁의 참혹함도 피해 태어났다.

 

무엇보다도 낭만과 정이 남아있었기에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었다. 덤으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같은 아름다운 노래들이 있어 고운 심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행운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에는 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라는 수식이 따라 다닌다. 미국에서의 60년대는 강력한 구심점의 시대였다. 반전운동, 무정부주의, 흑인인권운동, 공동체주의 등 세계평화라는 틀 속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날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시기였다. 그 거대담론이 사회에 심어지지 못하고 붕괴하자 사람들은 개인주의에 빠져들고 소시민으로 변해갔다. 이때 그 시류에 제동을 걸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다.

 

폴 싸이먼이 69년에 만들어 이듬해 초에 발매한 <Bridge over...>는 나오자마자 전 세계 음반시장을 휩쓸었고 큼직큼직한 상은 몽땅 독차지하였다. 하지만 음악적 견해에 따른 갈등으로 “20세기 최고의 황금 듀엣”이라 불리던 <싸이먼과 가펑클>은 이 노래를 끝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 뒤 이따금 만나 음반을 내긴 했으나 완전한 재결합은 아니었다.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험한 세상의...>는 편곡이 으뜸인 작품이다. 각 소절의 노랫말이 지니는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노래는 아트 가펑클이 폴 싸이먼과의 이중창을 원했으나 싸이먼의 완강한 고집에 의해 가펑클의 독창으로 완성되었다. 싸이먼의 통찰력이 번득인 것이다.

 

명검은 세월 앞에 녹슬지 않는다. 올해로 <험한 세상에...>가 발매 쉰 돌을 맞았건만 여전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의 지위를 잃지 않는 건 큰 사랑을 담고 있음이리라.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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