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碧波)에 의해 전승되어 온 신명의 소리

2020.09.28 22:17:20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제까지 일제 침략기, 한국 전통가곡의 맥을 잇기 위해 아악부와 권번에서 제자들을 지도해 온 하규일 명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규일의 가곡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들은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홍원기 등인데, 이들은 체계적으로 악보집을 제작, 후진과 애호가들을 지도해 오는 한편, 발표회를 통해 가곡의 맥을 이어왔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하규일의 가르침을 받은 권번의 기녀들 가운데 김진향(金珍香)은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는 점, 특히 젊어 한때, 진향은 시인 백석(白石)과 인연을 맺었고, 홀로 되어서는 그녀가 평생 모은 1,000억이 넘는 재산을 불교에 헌납하였다는 점, 그 많은 재산 아깝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백석의 시(詩) 한 줄값도 안 된다고 했다는 대답이 인상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벽파(碧波) 이창배의 제자들이 해마다 정례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경기지방의 산타령과 서도지방의 산타령 공연 이야기가 되겠다.

 

 

원래 이 공연은 지난 6월에 소월아트홀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었고, 그럼에도 관객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조건, 곧 무관중 공연으로 막을 열게 된 것이다. 무대 공연이 관객과 소통 없이 가능할 것인가? 다행히 유튜브 방송을 위해 녹화를 했다니 공연 현장이나 기록은 남긴 셈이다.

 

가객, 하규일이 여러 제자에게 전수하여 전통 가곡이 오늘날, 크게 확산한 것처럼, 선소리 산타령도 벽파 이창배에 의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합창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것이다. 동, 종목은 1969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의 상황으로도 이 종목이 얼마나 취약했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문화재 단체종목이 지정되면 한 종목에 1인 또는 2인 정도가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산타령이 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면서 예능보유자를 인정할 당시에는 뚝섬패의 김태봉과 유개동, 과천패의 정득만, 왕십리패의 이창배, 동막(공덕)패의 김순태 등 5명이었다. 아마도 이 종목의 취약성을 고려한 당국의 배려가 깔려있어 타 종목에 견주어 파격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활발한 전승활동’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예능보유자들은 이미 연로했기 때문에 그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또한 이 종목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다만, 가장 젊었던 벽파 이창배에 의해 공연이나 방송, 음반, 교육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경서도 소리의 명맥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벽파 이창배는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전문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산타령, 경서도 민요, 좌창 등을 지도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국악교수, 실기인과 이론 전문가들이 경ㆍ서도지방의 입창이나 좌창 등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글쓴이도 고등학교 시절, 벽파 선생에게 경서도의 입창과 좌창을 배웠다. 당시에는 민요 수업을 위한 교재가 없었기에 선생은 늘상 칠판에 노래가사를 깨알같이 써 놓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은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인기가 높았다.

 

경서도 민요를 배우는 그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벽파 선생의 해박한 지식이 묻어 나오는 노래 사설에 관한 설명 때문이었다. 마치 당시의 시대상황, 사건의 배경,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 역사 수업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날까지 벽파 선생은 소리만을 전승시킨 사범이 아니라, 이론적 지식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바르게 가르쳐 준, 국악계의 큰 사범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선생은 판서가 일품이었다. 특히 한문 글씨는 너무나 예쁘고 멋이 있어서 수업이 끝난 다음에도 우리들은 그 판서 내용을 지우지 못했을 정도였다. 사진 자료로 남겨 두지 못했던 그 시절이 너무도 아련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날, <선소리산타령 보존회> 이름으로 발표회가 해마다 열릴 수 있는 바탕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에게 경ㆍ서도 소리를 배운 큰 제자들이 또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산타령을 이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벽파 선생의 제자, 황용주ㆍ최창남 명인은 이미 80을 넘긴 원로 명창들이고, 그 뒤를 잇고 있는 방영기ㆍ염창순ㆍ이건자ㆍ최숙희ㆍ조효녀 등의 큰 제자들과 보존회 회원 40여 명이 경기지방의 산타령과 서도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산타령을 지켜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앉아서 부르는 좌창의 형태는 기쁨이나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곧 단정하게 앉아 시선을 바로 하고 불러야 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산타령은 장단에 맞추어 대형과 율동을 함께 하며 씩씩하고 활달하게 부르는 노래이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감하고 신명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노래다.

 

우리가 처한 최근의 현실처럼 경제가 어렵고, 또한 원인도 모를 괴질(怪疾)로 인해 민심이 흉흉한 우리의 상황에서 그나마 산타령을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타령> 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이 비인기 종목을 붙들고,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진정어린 격려의 큰 손뼊을 쳐주어야 할 것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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