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나, 그러나 시에 감동하는 이 있어

2021.04.03 11:52:53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액 면 가

 

                                                     - 윤 준 경

 

       나는 나를 늘 싸게 팔았다

       아예 마이너스로 치부해 버렸다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에 육십 년이나 절었다

       그래서 나의 액면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때로 누가 나에게 제값을 쳐주면

       정색하며 다시 깎아내리곤 했다

       자신의 액면가를 곧잘 높여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겉으로는 끄덕끄덕하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하다

       그들의 액면가는

       부르는 만큼 상종가를 치기도 하는데

       나는 늘 나의 값을 바닥에서 치르며

       흘끔흘끔 앞뒤를 곁눈질 한다

       깎이고 깎인 액면가가 내가 되었다

       이제라도 제값을 받아보자고

       큰소리 한번 치고 싶은데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무릎이 저리다

 

 

 

 

조선시대만 해도 장수하는 사람이 드물어 임금이 직접 예순 살이 넘은 문신들에겐 양로연을 , 일흔 살이 넘은 사람에겐 기로연을 베풀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문인이며 화가였던 강세황은 양로연에 참여할 나이인 예순 살이 되도록 벼슬을 하지 못한 포의한사(布衣寒士)였다. 하지만,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능참봉(왕릉을 지키는 벼슬)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현재 서울시장 격)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누가 뒤를 봐준 것이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60년을 벼슬 한자리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대단한 학식과 포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던 강세황. 그는 “올해는 봄추위 심하여 / 복사꽃 늦도록 피지 않았네 / 정원의 나무들 적막하지만 / 꽃이야 붓으로 그려 피우리라”라는 시를 지어 꽃이 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붓으로 꽃을 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꿋꿋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은 60이 되도록 저평가되었다. 여기 윤준경 시인의 시처럼 “큰소리 한번 치고 싶은데 / 유통기한이 끝나간다.”라고 생각할만했지만, 그는 스스로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누구는 상종가를 쳤다가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에 사약까지 받고 멸문지화를 당한 사람들도 많다. 액면가가 낮게 쳐졌어도 그런 사람에 견주면 크게 서러워할 일은 아닐 테다. 이렇게 시를 쓰고 이 시를 감탄하며 읽어주는 이가 있는 이상 윤준경 시인의 액면가는 이미 오르고 있음이다. 무릎이 저려도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는 이보다 낫지 않으랴.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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