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에 두견 울고, 반월성에 달 돋는다”

2021.08.16 22:09:07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3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내포제시조 보존회> 회원들의 정례발표회에서는 김윤희의 창이 돋보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 병창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동규의 시조창도 접할 수 있었고, <국악중고교>와 <한양대 국악과>에서 전문가 수업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현재는 고향(부여)에 살면서 <충남국악단> 단원으로 재직하며 내포제시조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고, 원효대사가 백성들을 위해 노래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하듯, 시조를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 들려주고, 알려주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특히 보존회의 발표 중, 부여지방과 관련이 깊은 시조창을 듣고 있으면 마치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 앉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 대표적인 시조창이 평시조로 부르는 <사자강>과 사설시조로 부르는 <부소산 저문비>다. 이들 시조는 백제시대를 회고하는 내용이어서 더욱 이 지역의 시조인들에게 정겨운 대상이 되고 있다.

 

먼저 평시조로 부르는 <사자강>의 노랫말을 감상해 보도록 한다.

 

   (초장) 사자강 배를 타고, 고란사로 돌아드니

   (중장) 낙화암에 두견 울고 반월성에 달 돋는다.

   (종장) 아마도 백제 고도(古都)가 완연하다.

 

 

위 시조에 나오는 사자강, 고란사, 낙화암, 반월성, 백제, 고도 등이 풍기는 시어(詩語)들의 의미는 백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강이나 절, 유서 깊은 바위, 사비성 등을 통해 백제의 옛 고도인 부여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의미를 이해한 뒤, 노랫말과 함께 창을 감상해 보면 그 느낌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초장 처음에는 사자강이 나오고 있다. 사자강은 부여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크게 휘돌아 흐르며 읍내를 감싸고 있는 강의 이름이다. 현재는 백마강으로 부르고 있으나 예전에는 백강, 사비강, 또는 사자강으로도 불렀으며 오늘의 금강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고란사(皐蘭寺)는 부소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의 이름으로 언제 지어진 절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백제시대 창건되었다는 설보다는 고려 개국 초, 백제의 후예들이 낙화암에서 빠져 죽은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 주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고란사>라고 하는 절의 이름은 뒤쪽의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귀한 약초인 고란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장에 나오는 낙화암(落花岩)은 바위 이름이다. 그런데 보통의 바위가 아니라, 너무도 슬픈 역사를 지닌 바위의 이름이다.

 

서기 660년 나당(羅唐)연합군의 침략을 받고 백제가 끝내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은 적군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바위 위에서 투신하는 길을 택했다. 그 바위 이름이 바로 낙화암이기에 그렇다.

 

1929년 지역의 군수는 이 바위 위에 백화정이란 정자를 지었는데,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전해오고 있다.

 

반월성(半月城)은 한자 그대로 뜻을 풀이하면 반달 모양의 성이라는 뜻으로 사비성의 또 다른 이름이며 부여 지역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성(城) 이름이다. 간단하게 시조에 나오는 용어들을 풀어 소개해 보았다. 이제 다시 시조를 읊어 보거나 감상해 본다면 그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한편, 사설시조의 노랫말은 부여의 8경을 소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초장, 부소산 저문비에 황성(荒城)이 적막하고,

           낙화암에 잠든 두견궁아원혼(杜鵑宮娥冤魂) 짝을 지어

           전조사(前朝事)를 꿈꾸느냐.

   중장, 백마강에 잠긴 달은 몇 번이나 영휴(盈虧)하며,

           고란사 효종소리 불계가 완연하다.

           수북정(水北亭)남하에 돛대 치는 저 어부야,

           규암진 귀범이 예 아니냐.

   종장, 운소(雲宵)에 나는 기러기는 구룡포로 떨어지고,

           석조(夕照)에 비친 탑은 반공중 솟았으니,

           부여팔경 완연하다.

 

위의 시조는 부풍팔경, 곧 부여의 자랑스러운 8경을 하나씩 시조창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부소산의 모우(暮雨), 곧 쓸쓸히 내리는 부소산의 저녁비 내리는 모습이다. 둘째는 낙화암에 잠들어 있는 분하고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영혼, 곧 3천 궁녀들이 짝을 지어 전시대의 화려했던 과거사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셋째는 중장에 나오는 달의 모습이다. 곧 백마강에 잠긴 달의 모습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차고 이지러졌는가 하는 생각에 젖어 감상하는 것이다. 넷째는 고란사의 새벽 종소리, 다섯째는 수북정의 푸른 아지랑이, 여섯째는 규암진으로 돌아가는 돛단배의 모습이다.

 

일곱째는 종장에 보이는 구룡포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모습이고, 마지막 여덟째는 백제탑에 비추는 저녁 햇빛의 모습이다.

 

이상의 8경은 하나같이 백제의 고도, 부여의 특징적인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시조시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대나무 소리의 대금이나 피리와 함께 음율이 이어지면 그 소리는 이미 현세를 떠나 천상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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