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철보신(明哲保身)이 이렇게 되어서야...

2021.10.20 11:03:08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박물관에 기증한 2만1600여 점의 귀중한 문화재 가운데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이 지난 7월21일부터 9월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자 관람객들의 인기를 가장 끈 작품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였다고 한다. 비가 개인 뒤 인왕산의 풍경이다. 당시 인왕산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나라 역대 군주 중에 최고는 역시 세종대왕일 것이다. 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치를 잘 한 것은 그만큼 여러 면에서 능력이 출중해서였을 것인데, 그런 대왕의 아들들도 다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맏이인 문종과 동생인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했지만 나라를 이끌 군주로서 가장 중요한 건강이 좋지 않아 결국엔 그 아들이 삼촌에게 화를 입는 역사로 이어졌지만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과 그 동생 안평대군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예도 익히고 사람들을 잘 사귀고 해서 당대에 두 대군의 평판이 높았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안평대군의 호는 비해당(匪懈堂)이다. 비해(匪懈)라는 당호(堂號: 집 이름)는 세종대왕이 지어주셨다. 왕자가 혼인을 하면 살림을 나간다. 안평대군도 혼인하면서 경복궁에서 살림을 내어 나간 뒤에, 인왕산에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34살 때인 1442년 6월 어느 날 세종이 안평대군을 궁에 불러 물었다.

“네 집의 당호(堂號)가 있느냐? 당호가 무엇이냐?”

​안평대군이 대답을 못하자, 세종이 《시경(詩經)》에서 〈증민(蒸民)〉편 중간의 16자 시를 외워 주었다.

旣明且哲(기명차철) 以保其身(이보기신),

夙夜匪懈(숙야비해) 以事一人(이사일인)

밝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여, 자기 몸을 보전하며,

이른 아침 늦은 밤까지 게을리하지 않고, 임금 한 분만을 섬긴다.

세종이 여기서 두 글자 ‘비해(匪懈)를 따서 안평에게 주었다. 해(懈)는 게으르다는 뜻이고 비(匪)는 흔히 도적이라는 뜻이지만 아닐 불(不)의 뜻도 있으니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 된다. 안평대군은 재주가 뛰어났지만 장자가 아닌 만큼 세종 자신이 왕위에 있는 동안은 물론, 안평의 형인 문종이 건강이 안 좋아 그 다음에 조카가 즉위하더라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임금 한 분만을 섬기라”는 당부를 ‘비해(匪懈)’ 두 글자에 담아 집 이름으로 내려준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 지은 집의 이름이 비해당이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는 호가 되었다.

그런데 시경 <증민>편의 이 글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하라는 뜻이지만 그 전에 “명철(明哲)로 보신(保身)하고” 라는 전제가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행동거지를 현명하게 해서 몸을 잘 보전하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그냥 ‘비해’라는 두 글자만 보면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이지만 그 앞의 구절을 감안하면 “현명하게 처신해서 몸을 잘 지키고”라는 구절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세종이 셋째 아들에게 이 호를 내릴 때에 사실은 셋째가 재주가 뛰어나고 능력도 많지만 그 형인 수양대군도 있으니 잘못하면 보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시에서 ‘비해’라는 말만 추출해서 내린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본다. 왜냐하면 그 뒤에 벌어진 일을 보면 결국 안평대군은 형님 문종이 죽고 조카 단종이 즉위한 이후 김종서, 황보인 등 원로 대신들과 한 편이 되어 단종을 보위하다가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기에, 아버지 세종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 되지 않던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마음으로 왕을 섬겼지만 결과는 명철보신이 되지 못한 셈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양반들, 곧 사회를 이끈 사람들에게서 ‘명철 보신’이란 말만큼 중요한 목표는 없었다고 보여진다. 가정을 이끌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면 어려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거에 들어 관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숱한 정변과 환란, 사화로 어느 때고 편안한 날이 별로 없었고 자고 나면 무수한 인재들이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고 편이 다르다는 이유로 귀양을 가고 사약을 받은 역사가 반복되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원래 명철이란 말은 멀리 중국의 은(殷)나라 무정(武丁)임금 때의 열(說)이란 현인기 왕에게 발탁되어 엄정하고도 현명한 처신으로 정치를 잘 이끌자, 그에게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누구보다도 앞서 깨닫는 사람’이란 칭찬을 해주면서 나온 말이고, 보신이란 말은 이로써 나오고 물러남에 있어 이치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어서, 정치를 아주 잘한 사람에 대한 칭찬인데, 정치한다고 나온 사람들 중에 하도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어 자기 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까 오늘날은 명철이란 말의 원 뜻은 사라지고 오로지 처세를 잘하는 보신만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유교의 경전인 《중용》 27장에서는 명철보신을 이렇게 설명해준다.

“그러므로 군자는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그의 말이 세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그가 침묵해도 그것이 충분히 용납이 된다. 시경에서 말하는 명철보신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

1659년 기해년에 조선에서는 왕인 효종이 승하하자 그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놓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윤선도가 서인들에 의해 몰려 80의 나이에도 함경도 삼수로 유배를 떠나게 되는데 그 즈음 제자인 안서익(安瑞翼)이 스승의 행동이 명철이라는 개념과 어긋난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답장을 쓰면서,

 

“내가 말한 것이 옳으면 깨닫고 앞의 말을 고치면 될 것이요, 만약 내 말이 옳지 않으면 내가 어리석어서 의리를 모른다고 하며 일소(一笑)에 붙이면 그만일 것이네. 그런데 이와 같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기필코 나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군자의 마음이겠으며, 내가 일찍이 예측이나 했던 일이겠는가. 그리고 그대가 명철(明哲)을 가지고 나를 책하였는데, 이 의리를 나는 알지 못하겠네. 아, 말세(末世)에 이욕(利慾)이 기승을 부려서, 의리를 물고기로 여기고 이욕을 곰 발바닥으로 여기는 자들이 온통 세상에 횡행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렇게도 명철이 많단 말인가.“

....안생 서익에게 답하는 별폭. 고산유고 제4권 / 서ㆍ단(書ㆍ單)

라며 명철이라는 개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도를 버리는 것으로 바뀐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뜻있는 선비는 자기의 시신(屍身)이 도랑에 버려지는 한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하며, 죽음으로 도를 지키면서 이를 행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성인의 가르침인데 언제부터인가 세속이 이렇게 변했는가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 쪽을 보면 진정한 명철보신이 어디 가고 잘못된 명철보신만 남았는가 하는 비감한 생각이 든다. 1659년 기해년의 예송 논쟁이 조선시대 정치계, 관료계의 정권쟁탈 전쟁이었다고 한다면, 요즈음에는 마치 그 당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허구한 날 여당이건 야당이건 서로 잘났다고 외치고,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잡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서로 집안의 사소한 허물이라도 들추어 이를 공개적으로 망신의 수단으로 삼으려 조야가 모두 동원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혐의로 망신을 당하고 신세를 망치고 있으며 가만히 있던 가족들이 모두 악의 근원인 것처럼 소환되고 있다. 정계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고발하고 헐뜯고 무고하고 돈을 뜯어내려 온갖 고소와 소송이 끊이질 않는다. 바야흐르 만인의 만인에 의한 권력 싸움이요, 모든 사람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서로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천하대란의 시대인것 같다. 이처럼 아귀다툼으로 한 줌의 명예와 부를 차지하려는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 천하의 사리를 통하고 앞서서 깨달아 우리 사회를 밝고 아름다운 사회로 이끌 위인들은 모두 들어가고 소인들만 나와서 설치는 세상이 되었는가? 아! 명철보신이란 말을 우리가 배우면서 명철은 어디가고 모두 보신만 열심히 챙기는가? 목숨을 걸고 옳은 일, 의리를 구하려는 자세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이 시대 우리 사회를 이같은 병통에서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명철보신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우리 사회를 구할 사람은 없는 것인가?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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