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달'이 오는구나

2022.03.30 11:47:55

4월, 가슴 가득 연둣빛 세상 품어 안게 하는 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문자를 배워도 제대로 못 배우면 유식한 척 한마디 하다가 창피를 당하기 일쑤인데 해마다 4월엔 늘 그랬다.

 

4월이 되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라는 말을 흉내를 내 은연중에 나도 그런 표현을 쓰곤 했는데, 막상 누군가가 "아 그러세요? 뭐가 잔인하다는 거지요?"라고 묻는 바람에 대답이 궁해 혼이 난 적이 있다.

 

이 표현이 영국의 시인 T.S.Eliot 란 사람이 쓴 <황무지>라나 뭐라나 하는 시 첫머리에 나온다는 것쯤은 나도 들은 바 있지만 사실 이 시는 번역된 것도, 원시도 전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왜 이 시인이 잔인하다는 표현을 썼는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짬을 내어 먼저 번역된 시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소설가 황순원 씨의 아들로 영문학자이신 황동규 님의 번역이 먼저 들어온다.​

 

            황 무 지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이 시가 엄청나게 길어서 다 보기는 그렇고 첫머리만을 보니 7줄 안에 겨우내 죽은 듯 땅속에 갇혀있던 라일락, 또는 둥근 뿌리(球根) 식물이 움터서 올라오는데 그게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나오는 게 힘이 들고 또 거기에 추억과 욕정이 뒤섞이고 있어 봄이 되어 다시 깨어나고 나오고 하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진다는 뜻인 것 같다.

 

 

여기까지를 보면 역시 4월은 땅속에 뿌리 형태로 묻혀 있는 식물들이 다시 일어나오는 시절이라는 것을 깔고 있고 겨우내 땅속에 갇혀있다가 다시 탄생하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쓰라리다는 뜻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학창시절에 영어문학쪽을 기웃거린 경력(?)이 있어서 원문을 보고 싶어졌다. 원문은 이랬다;​

 

I.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이 시를 보니 우리나라 번역과 분위기가 다른 것이, 두 문장의 끝을 동사의 진행형인 '~ing'로 끝내고 있다. 말하자면 운(韻)을 맞춘 것인데 이게 읽어보면 소리의 리듬이 되어 시의 분위기를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황동규 님의 번역이 엄정하고 명쾌하지만, 조금 원래 시의 분위기보다는 더 엄격한 느낌이 들고 있어서, 어찌 보면 4월에 대한 원 시인의 표현은 우리 말 번역과는 감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곧 자세히 보면 매 문장에 진행형의 어미가 나오니 시에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영시는 산문이 아니라서 읽을 때의 느낌을 중시하고 그러기에 문장마다 라임이라고 하는 운(韻)이 거의 들어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시의 특성을 살린 번역은 어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말로도 뭔가 운을 맞춰 보는 번역이다. 그런 생각에 다른 번역을 찾아보니 이런 게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나른한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네,

잊게 하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가냘픈 생명을 살리면서.​

 

'차일피일'이란 닉네임을 가진 이 사이트의 번역은 원문의 ‘desire’를 욕정이 아니라 욕망으로 푼 차이가 있고, 또 '...네'라는 어미를 살려 조금은 운을 살리려 한 노력을 볼 수 있겠다. 그게 조금 더 시(詩)스럽다고나 할까...​

 

그래도 혹시 위 번역시의 운을 활용해서 내가 이 부분만을 고쳐보면 어떨까 해서 무식을 떨쳐보니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네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요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놓고요

나른한 뿌리들을 봄비로 휘저어놓지요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었어요

흰 눈이 대지를 잊어버리게도 했고요

마른 뿌리들에게 작은 생명을 다시 주었고요​

 

이런 식으로 하면 조금 더 운율이 느껴져 시적인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그런데 다만 이 황무지라는 전체의 시는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이 신앙을 잃고 정신적으로 황폐한 상태에 빠진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를테면 불모(不毛)의 상황을 암시하면서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종교적인 구원을 제시하는 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이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니 다른 달도 잔인한 달이 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본다면 첫 도입 부분을 너무 낭만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조금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더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첫 문장의 번역은 역시 치기 어린 것으로 평가받고 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4월만 되면 너무 뜻도 없이 절망이라는 개념을 깔고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 같아서 이 아름다운 계절을 스산하게 맞지 말고 더 따뜻하게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조금 낭만적인 표현으로 바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가 전체적으로 무척 복잡하고 어렵고 각종 외국어가 다 등장한다고 하니 그걸 적어도 우리말 번역만으로는 다 알고 이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리가 시를 쓰면서 한자말도 하고 한자 문장도 쓰고 때로는 일본어 중국의 발음 그대로를 쓰기도 할 것인데 그걸 외국인들이 다 그 나라 번역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런저런 문제를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있는가? 4월로 대표되는 새봄은 '봄날'이란 아래 시에서 보듯 아름답고 좋은 계절이 아닌가?​

 

 

 

                         봄 날

  

                                                    ... 김용호​

 

와서 좋고 머물러주어서 더 좋고

따뜻한 품 안에 안길 수 있어 좋은 봄날​

 

돌담 옆에 기억해도 좋을 문장보다 아름다운

산수유꽃이 쓸모 있게 피어있어 아름답습니다.​

 

돌담에 산수유꽃 그림자가 비스듬히 기대고 있어

그 간격 사이 나도 꽃나무가 되어

기대어 서 보고 싶은 봄날입니다.​

 

예전에 4월 봄날의 분위기를 아주 잘 묘사한 시가 있었단다. 청록파 시인으로 알려진 ​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박목월 '4월의 노래’​

 

이 시는 사실 노랫말이었단다. ‘4월의 노래’는 6·25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53년 봄 《학생계》(당시 잡지 주간은 박두진)가 창간 4월호를 낼 때 학생들을 위한 새 노래를 싣자는 동기에서 박목월에게 작시를, 김순애에게 작곡을 위촉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필자가 태어나던 해이고 나보다 반년이나 더 나이가 들었다. 아름다운 가곡이라며 우리가 많이도 듣고 부른 이 노래가 그리 오래된 사연을 갖고 있음을 모르고 이 노래를 듣고 불렀구나! 이 노래에 당시 6·25의 비극이 끝나지 않았지만 어린 소년ㆍ소녀를 통해 절망을 딛고 평화(봄)를 노래하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구나. 마치 '황무지'라는 시처럼.

 

 

언젠가 목월은 " ‘4월의 노래’에서 ‘돌아온 4월은 /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고 표현했다"라고 한다. 4월은 생명의 불을 밝히는 소생과 재탄생이다. 결코 절망과 낙담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4월을 암울하게 맞이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서슬 퍼렇던 삭풍도 마지막 저항을 끝내고 물러가고 세상은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난다. 그러니 가슴속에 남아있던 우울과 비관, 낙담을 떨쳐버릴 때다. 4월은 어떤 뜻으로건 잔인한 달이 아니다. 가장 희망을 담은 포근한 달이다. 그래서 이달에는 우리 모두 가슴을 열고 세상을 희망으로 세상을 맞이할 일이다. 아래 시인의 기도처럼...

 

 

                  사월의 기도

 

                                     .... 배 귀 선​

 

사월에는

초록 숲 그대와 함께 거닐게 하소서

긴 기다림 끝 마주한 눈빛

놓치지 않고 숨 쉬게 하소서

​........​

 

돋아나는 새순의 기운처럼

힘찬 박동으로 잿빛 우울 걷어내고

비우지 못한 낡은 감정

스스로의 참회로 녹여내어

가슴 가득 연둣빛 세상 품어 안게 하소서​

 

눈부시게 빛나는 단 하루의 햇살에도

감사의 기도 끊이지 않게 하시고

누구라도 행복을 꿈꾸도록

희망만 노래하게 하소서​

 

아 드디어 4월이구나!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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