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언덕에서 희망을 빌다

2022.04.06 11:34:20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무덤 앞에 서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4월이고 봄이 왔습니다. 올해는 봄이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늦어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망우리 공원 언덕을 오르는 길옆에는 노란 개나리꽃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길옆은 배수로 공사 때문인 듯 파헤쳐놓아, 차량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마치 한ㆍ일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험한 것에 비유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러나 봄이 온 듯 두 나라 관계에도 봄은 오겠지요. 곧 말끔히 포장된 길이 우리를 맞겠지요.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활짝 피어난 개나리꽃에서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한 한 일본인의 마음을 봅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한국)에 살다가 죽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 묻힘으로써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소반(小盤), 곧 작은 밥상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인정스럽고 사랑스럽고 깔끔한지, 그 매력에 빠져 그것을 모으고 사진과 그림으로 담아 이를 널리 알리는 책을 펴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소반이 아름답다는 것이 알려지는 첫 계기입니다​

 

그는 우리가 일본이라는 이웃의 통치 아래 힘이 들었을 때 친구가 되어주고 우리들의 얼굴을 비춰주고 닦아주었습니다. 그가 30대에 우리나라에 와서 나무를 심어주고 우리들의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주고 이를 자랑해주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일하다가 건강을 잃고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를 배웅한다고 구름처럼 모여 그의 상여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가신 지 91년인 4월 2일 토요일에 우리는 다시 이 망우리 언덕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다들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모인 것이지요.

 

 

 

이곳에 누워있던 아사카와 다쿠미의 무덤을 말끔하게 단장하는데 애를 써주셨던 조만제 전 회장님은 지난해 다쿠미 옆으로 가셨고, 늘 함께 오시던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님은 원로서예가이신 김양동 교수님과 같이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님, 신봉길 전 인도주재 대사님, 황현탁 전 주일대사관 공보공사님이 새로이 올라와 주셨습니다. 현직 문화재청장님, 중랑구청장님의 조화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망우리 묘역의 인문정신을 일깨워주시는 김영식 작가님. 학문적으로 정리해주신 민덕기 청주대 교수님, 조만제 회장님의 따님이신 조열래 씨 등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묘소의 묵은 먼지를 쓸고 작은 제물을 놓으며 하늘에 계신 다쿠미 씨가 와서 흠향하기를 기원했습니다. 대금을 연주하시는 이상현 님의 청아한 대금 소리가 이 망우리 언덕 골짜기를 휘감으며 다쿠미의 혼백을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다쿠미 씨에게 그가 좋아하던 막걸리 한 잔을 올렸습니다. 이 모임을 헌신적으로 준비해오신 노치환 사무국장이 올해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신 양산 통도사의 성파 큰스님이 만드신 큰 바루(鉢)를 갖고 와서 거기에 막걸리를 담아 올리면서 어려울 때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마침 바람이 불어 화환들을 흔들리는 것이 마치 다쿠미의 혼백이 이곳에 와서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것 같다고 김종규 이사장님이 말씀하십니다. 다들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아사카와 다쿠미 외에도 그의 친형인 ‘노리다카’도 친구였고 ‘야나기 무네요시’도 친구였고 또 많은 일본인이 우리의 친구가 되었음을 알고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 마음과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국민도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일본인을 위해 도쿄에서 11년 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이수현 씨를 기억합니다. 이수현 씨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이수현 씨처럼 일본인들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을 일본인들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몇 년째 해마다 묘소를 찾는 일본인 이마무라 게이코(今村圭子) 씨는 자신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를 전혀 배우지 않아, 당연히 아사카와 다쿠미가 한국인의 친구였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이러한 사실이 일본인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이러한 친구 사이가 더 확대되고, 깊어지면 우리는 멋진 이웃으로 더 좋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과거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뻤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과 일본 두 국민 사이를 덮었던 원망의 검은 먹구름이 걷힐 수 있다는 전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맑은 봄날에 망우리 언덕에 모인 우리는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과 한국이 서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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