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패랭이 눌러쓰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자줏빛 흔데자국*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날라리 장고는 울고
춤사위 시작된다
노방초
모진 목숨
고향이라 찾아드니,
돌팔매에 몽둥이찜질, 나물 삶은 물 퍼붓는 인심도 서러워라. 조석지변(朝夕之變)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한 인간사야 매양 그렇지만, 옥수골 내천이며 무량산 구름은 어이 외면하고 떠나는가. 내 일찍이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 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
* 흔데자국: 검은색의 문둥병 흔적

<해설>
“날라리 장고는 울고 / 춤사위 시작된다.”
자줏빛 흔데자국(문둥병 흔적)만 봐도 고통은 알만하다.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이지러진 탈바가지 덮어쓰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노방초처럼 살아온 떠꺼머리총각은 고향에 와서도 찬밥 신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라는 농사는 안 하고 고작 배웠다는 것이, 문둥이 흉내나 내는 춤꾼이 되어 귀향했으니.
문둥이란 자고로 문전 박대, 삽짝 밖으로 나물 삶은 물 퍼부어 출입 금지, 인간사야 다 그런 게 아닌가 하고 흐르는 눈물 닦아본다. 이러다 보니 옥수골 내천에 발 담그는 일도 흡사 죄짓는 것 같고, 무량산 흰구름도 날 피해 달아나는 듯하니, 이 설움 어디 가서 씻어나 보나.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세상은 저들끼리 희희낙락인데 나는 왜 천형을 얻어 이 봄날도 서리 내린 겨울일까. 손가락 몽그라져 코 풀기도 쉽지 않다. 내 상처 자국 위로 자꾸만 똥파리만 몰리는데, 우짜노? 우얄끼고? 찔레야 네 가시덤불로 이놈의 똥파리 좀 쫓아다오.
문둥춤은 이런 사연 간직한 춤이 아니더냐. 그런 아픔, 그런 눈물 몸짓으로 표현해야 진정 문둥춤인 걸 누가 모르랴만, 그 또한 그리 쉬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