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님을 보내는 마음

2023.03.08 11:39:47

그분 덕에 우리 음악은 열린 음악으로 더 커졌을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8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

A shelter from the storm

It exists to give you comfort

It is there to keep you warm~

"아마도 사랑은 휴식하는 곳 .

폭풍우로부터의 피난처.

당신에게 위로를 주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거기 있지요 ~"​

 

이런 내용을 영어로 깊고 묵직한 목소리가 부르면 다음 소절에서는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사랑의 다른 측면을 일깨워준다.

 

♪♪Perhaps love is like a window

Perhaps an open door

It invites you to come closer

It wants to show you more~

"아마도 사랑은 창문이고 열려있는 문이지요

가끼이 오라고 초대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요~"​

 

 

앞의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세계 최정상이었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1941~)였고 뒤의 맑고 낭랑한 목소리는 역시 당시 세계 정상에서 활약하던 미국 대중가수 존 덴버(1943~997)였다. 1982년 이 노래가 발표될 즈음 두 사람은 40대에 들어서는 비슷한 나이여서 곧 의기가 투합했을 것이고, 노래는 발매 이후 히트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도밍고는 성악가이고 덴버는 대중음악가수이니 이들의 활동영역도 방향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노래로 우리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해주는 데는 차이가 있을 수 없는데, 8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이른바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에 대한 시각이 달랐던 만큼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팝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대중들은 열광했고, 클래식을 선호하는 음악청중들은 조금 떨떠름했었던 것 같은데 그 뒤에는 이런 두 영역 음악가들의 만남이 자주 시도되었고 지금은 그것이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달 초 돌아가신 박인수 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함이다.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가 대중음악 가수 이동원과 ‘향수’라는 노래를 불러 1989년에 이동원의 음반에 발표하자 대중가요 팬들은 멋지다고 환호했지만, 성악을 대중가요와 동격으로 내려 앉혔다고 비난받으며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노래는, 그때까지의 정형적인 가요 스타일이 아니라 정지용의 시어를 노래로 만든 것으로서 일반 대중가요로서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노래를 처음 발굴한 이동원 씨나 박인수 교수가 다들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성악가들 의견은 잘 모르겠지만, 일반 음악팬들에게는, 이를테면, 지금도 술 한잔하신 중년 남자 등이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떠돌이 사람들에게는 아래 이런 소절 등을 통해 무척 사랑받는 곡으로 등극해 있다.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성악이라는 것이 공부하기가 어렵고 그 속에 담긴 뜻이나 예술성이 높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음악이라는 것을 대중이나 청중의 사랑받음을 기준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감히 박인수ㆍ이동원이 부른 향수를, 적어도 성악이나 가곡의 측면에서 보면, 가장 친근하고 멋진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 박인수 교수에게 쏟아진 성악계의 비난은 작지는 않았지만, 박인수 교수는 묵묵히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을 기억한다. ​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노래는 그 뒤에 안드레 보첼리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함께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등으로 이어지며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경계를 넘은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성악가들의 대중가요 부르기 등으로 이어지며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순수음악을 지향하시는 분들의 생각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대중들은 가끔 혹은 자주 순수음악이 대중으로 내려오기를 갈망한다. 대금 산조가 좋은 줄 알지만 쉽게 듣기가 어렵기에 김수철이 작곡해 원장현이 연주한 '천년학' 같은 곡을 대중들이 더 듣기 좋아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순수와 실용의 접합 내지는 융합을 기대하고 있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국민 테너’로 오래 사랑받았던 박인수 교수가 1일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노래 발표 이후 박 교수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문득 떠오른다. 겉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야 이런저런 비판이나 비난에 불편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도 그분이 생전에 뿌린 대중가수와의 협연이 성악 대중화라는 새 길의 씨앗이 되고 싹이 터서 우리 음악은 열린 음악으로 더 커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에는 없었던 "열린 음악회"라는 형식으로 동양과 서양, 고상함과 친근함, 성악들이 대중들에게 자주 들려지고 대중음악들이 편곡 등 새로운 단장으로 멋지게 재탄생하고 있고 최근 트로트 붐 속에 트로트와 성악이 협업하고 하는 것도 다 박인수 교수가 발을 한걸음 내려놓음으로써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참으로 첫걸음이라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는 마지막 소절을 이렇게 같이 부른다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Full of conflict, full of pain

Like a fire when it's cold outside

Thunder when it rains

If I should live forever

And all my dreams come true

My memories of love will be of you​

 

♬ 아마도 사랑은

갈등과 고통으로 가득 찬 바다일 수 있지만

바깥이 추울 때의 난로의 불길처럼

비가 올 때의 천둥소리 같은 것

내가 영원히 살아 내 꿈이 다 이뤄진다면

나의 사랑의 기억은 온통 당신뿐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도밍고와 노래를 같이한 존 덴버는 1997년에 비행기 사고로 이미 저세상으로 갔고 우리나라의 이동원도 2021년에 저세상으로 갔다. 이제 박인수 교수도 가시니 새삼 선구적으로 음악을 열어간 사람들의 면면이 그리워진다. 그분들이 전해 준 사랑의 마음을 추상하면서 뒤늦게라도 박인수 교수님 명복을 빌어본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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