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에로틱의 발현- 조선시대 패션족의 멋

2023.06.07 11:37:47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 펴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회적 통제에 대한 반항 문화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조선 멋쟁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를 펴냈다. 패션에는 사회의 취향과 정체성이 반영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의관 정제로 품격을 완성했고, 일종의 문화로서 조선 사회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복식과 이와 관련된 패션 소품을 통해 그 의미와 문화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두통 유발 망건과 묵직한 패영이 있어야 패션족

 

<조선의 멋쟁이>에서 이민주 박사는 멋에 담긴 아픈 속내를 보여주었다. 관례를 올린 남성에게서 가장 큰 변화는 상투이다. 상투를 트는 머리 모양과 망건, 갓 등에 들이는 남성들의 노력과 그 결과인 멋에는 상당한 통증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상투를 튼 후에 두르는 망건은 본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동여매는 용도였으나 멋쟁이들은 망건을 어찌나 단단히 맸는지 망건을 풀고 나면 이마의 위아래가 0.3cm 정도 파여 자국이 남을 뿐 아니라 상처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가 흥건할 정도였다. 이 탓으로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관자놀이 주변의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망건 속으로 밀어 넣기 위한 용도인 살쩍밀이로 망건 속에 밀어 넣어 망건을 슬쩍 들어 올리면 잠시 편두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들이 때 반드시 쓰는 갓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총모자가 위로 좁아졌으며, 양태는 어깨를 넘을 정도로 커졌다. 머리가 총모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모정이 좁아져 갓은 머리에 쓰기보다는 얹어 놓는 수준이어야 멋쟁이였다. 얹어 놓는 수준의 갓은 가벼워서 끈이 없으면 날아가거나 넘어가기 쉬웠기에 끈은 필수였고, 가슴 밑까지 갓끈(패영)을 늘어뜨려 멋을 냈다. 갓끈은 주로 수정, 마노, 유리, 상아, 대모, 대갓 등으로 꾸미기에 그 값이 꽤 나가 사치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성적 욕망의 발현과 남성 권위에 대한 도전

 

<조선 후기 여성 복식에 표현된 욕망의 의미>에서는 김소희 교수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욕망과 값어치 실현을 복식 표현을 통해 살펴본다.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성이 입은 저고리 소매는 밀착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치마는 부풀릴 대로 부풀려진 ‘상박하후(上薄下厚)’ 윤곽이다. 기생(妓生)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둔부(臀部)를 강조한 이러한 스타일은 남성들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한편 양반가 여성들은 기생의 이러한 패션을 모방했다. 부부 사이면서도 주종관계로 군림하는 남편들을 다른 여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사대부 여인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으로 신분적 지위, 자존감을 스스로 해체한 것이다.

 

조선 후기 새로운 유행을 주도한 기생들의 복식은 양반집 규수들과 서민 부녀자들에게까지 동시대 여성들의 성적경향(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며, 신분을 초월하여 여성 복식 전반과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후기 들어 남성 장옷이 양반 부녀자는 물론 서민 부녀자들에게까지 나들이 때 내외용 쓰개로 쓰였다. 이는 당시 유교 이념을 거스르는 일종의 사회 반란으로 남성 권위에 대한 도전이면서 성차별적 신분을 해체하고 남성과 동등해지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적 규범 경계의 멋과 진심의 표출

 

이 밖에도 웹진 담(談)에서는 ‘조선 멋쟁이’에 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다룬다.

 

<성인의 탄생>에서는 최흥원(崔興遠)의 《역중일기(曆中日記)》에서 발췌하여 최용채의 관례를 웹툰으로 묘사했다. 조선의 성인식인 관례 뒤 ‘자신만의 멋’을 시도하느라 소동을 벌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조선 힙스터 허초희의 짧고 혹독했던 이승 체험>에서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삶에서 창작동기를 딴 뮤지컬 〈난설〉의 주인공 허초희(許楚姬)를 통해 남장한 채 세상 구경을 해야만 했던 그녀의 애환을 담았다.

 

<낙화생이 사람 잡네>에서는 산비가 남장(男裝)을 하고 참석한 이웃 소년의 관례에서 살해당할 뻔한 소년을 구하는 한편, 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의 묵은 원한을 풀어준다.

 

<도끼와 흰 도포 자락에 담긴 신하의 마음, 직방재(直方齋)>는 고려 후기 유학자 우탁(禹倬, 1263~1342) 선생의 학문과 절의를 보여주는 직방재(直方齋) 편액을 다룬다. 우탁 선생은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흰옷을 입고 도끼를 든,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 첫 인물이었다.

 

웹진 담(談 6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누리집(http://story.ugyo.net/front/webzine/index.do)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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