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사진 에세이집 《올리브 나무 아래》가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박 시인은 그동안 분쟁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아프카니스탄, 라틴아메리카 등 지구촌 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와 사진 에세이집을 냈고, 또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이번 올리브 나무 아래》는 6번째 사진 에세이집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이번 사진 에세이집은 올리브 나무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올리브 나무일까요? 서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쟁 현장을 다니다, 나도 많이 다쳤다. 전쟁의 세상에서 내 안에 전쟁이 들어서려 할 때, 나는 절룩이며 천 년의 올리브나무 숲으로 간다.
푸른 올리브나무에 기대앉아 막막한 광야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시를 쓰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아이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짓다가, 올리브나무 사이를 걸으며 다윗처럼 돌팔매를 던지기도 하고, 저 아래 올리브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거들다가 돌샘에서 목을 축이고, 양떼를 몰던 소녀가 따다 주는 한 움큼의 무화과를 먹고, 온 광야와 하늘을 붉게 적시는 석양에 나도 물들어 가다가, 또 밤이 걸어오고 별이 돋아나면 올리브나무 아래서 기도를 드리고, 그렇게 심히 상한 몸과 마음을 소생시켜 다시 일어서곤 했다.
(중간 줄임)
나에게 올리브나무는 오래고도 한결같은 사랑 그 자체다. 척박한 땅에서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짜 올려, 고귀한 열매와 황금빛 기름과 사랑으로 맺어 올린 좋은 것들을 남김없이 내어주는 나무, 올리브나무가 ‘천 년의 사랑’으로 살아온 것은 한순간도 쉬임 없이 견뎌냈고, 강해졌고,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나무 둥치, 찢기고 꺾여진 가지, 깊이 구멍 뚫린 심장, 올리브나무의 신성한 기운은 바로 그 사랑의 성흔(聖痕)에 있다. 천 년의 올리브나무를 보며 나는 다시 사랑을 배우곤 한다.
그렇군요. 박 시인은 분쟁지역을 다니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올리브나무에게 갔군요. 그리고 올리브나무 아래서 기도를 드리며 심히 상한 몸과 마음을 소생시켰구요. 저는 중동여행을 할 때 울퉁불퉁한 나무 둥치와 찢기고 꺾여진 가지의 올리브나무를 보며 애틋한 느낌을 가졌는데, 박시인은 거기서 사랑의 성흔(聖痕)을 보고 사랑을 배웠군요. 그럼, 박 시인의 사진에세이 몇 편을 볼까요?
지상의 가장 거대한 감옥, 분리장벽.
미국이 돈을 대고 이스라엘이 건축했다.
그러나 이 장벽은 자신들의 죄업의 높이만큼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감옥이니.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 홀로 우뚝 서서
온몸으로 시위하는 것만 같은 올리브나무
“이 벽은 끝내 무너지고 말리라”-
‘광야의 목소리’로 외치는 예언의 올리브나무.
사진을 보니 정말 올리브나무가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서 홀로 온몸으로 시위하는 것만 같습니다. 사진에서 ‘이 벽은 끝내 무너지고 말리라!’고 외치는 올리브나무의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 거대한 분리장벽 안에 가둬놓고 죄수처럼 통제하다가, 요즘은 학살하고 있습니다. 설사 하마스가 기습공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죽였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여인네들, 아이들까지 학살한다는 것은, 그것도 당한 것의 열 배, 백 배로 보복한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2차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600만의 자기 동족들이 학살당하는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왜 이스라엘 정부는 지금은 자신이 히틀러와 똑같은 가해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은 원수까지도 끌어안았던 자기들의 선조 예수님을 여전히 모른 체 할 건가요? 답답하여 탄식 소리가 절로 납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저도 예전에 팔레스타인 장벽 앞에 서본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대한 장벽 앞에서 팔레스타인의 슬픔과 분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편의 사진에세이를 볼까요?
정성껏 올리브나무 가지를 손질하던 여인이
고원의 바람결에 잠시 숨을 고른다.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요.
땅을 빼앗기고 길을 빼앗기고 앞을 빼앗기고,
아이들이 자라나 청년이 되면 하나둘 죽어가고...
그런 날이면 올리브나무가 말해주곤 하지요.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도 살아왔다고, 푸른빛을 잃지 않았다고.
고난 속에서도 최선의 열매를 맺어 주었다고.
그렇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팔레스타인의 어머니는 먼 곳을 바라본다.
희망을 잃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어머니의 모습에서 오히려 눈물이 납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 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런 날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폭격 속에 지금 이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부디 죽지 말고, 절망과 분노에 좌절하지 말고 여전히 그렇게 그래도 살아가시길...
아! 참! 이렇게 계속 사진 에세이 소개하다 보면 이것도 일종의 스포일러(재미를 반감시키는 것)라고 뭐라 그러겠지요? 한 편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낙오된 어린 양을 찾아 안고 오던 소년은
막막한 지평과 가이없는 하늘 사이,
올리브나무 아래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영원에서 비춰오는 듯한 검푸른 빛에 감싸여
작은 내 안에 깃든 신성을 느끼며 침잠하는 시간.
저 올리브나무는 하늘과 땅을, 한 생과 영원을
이어주는 비밀스런 빛의 통로인 것만 같다.
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불현듯 그 ‘빛의 통로’가 열린다.
그 빛을 따라 걸을 때 진정한 나에게 이르는 길이 밝아온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정말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은
다른 무엇도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며
더 사랑하고 내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올리브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소년이
다시 양을 안고 천천히 별이 뜨는 길을 걸어간다.
박 시인은 디지털이 대세인 요즘도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합니다. 그것도 주로 흑백 필름으로요. 박 시인의 사진을 볼 때마다 흑백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영성(靈性)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이번 사진은 박 시인이 모처럼 칼라로 찍었군요. 올리브나무 뒤로 올라오는 반원의 하얀 빛에서 신성한 기운을 느끼겠습니다. 거기에 한 소년이 양을 안고 있으니, 저 소년은 양을 안고 지금 막 빛의 통로 바깥으로 걸어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사진에서 희망의 빛을 봅니다. 부디 분노와 좌절의 땅 팔레스타인에서 이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저 희망과 영성의 반원으로 걸어 나오는 그날이 끝내는 오고야 말기를 기원합니다.
이번에도 사진에세이집 펴냄은 물론 나눔문화의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는 내년 8월 25일까지 <올리브 나무 아래> 사진전을 엽니다. 그것도 무료 전시입니다! 어떻습니까?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찰지게 빚은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를 더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가까이에 경복궁과 청와대도 있으니, 한 번 발길을 돌려 라 카페에서 <올리브 나무 아래>도 보고, 낙엽을 밟으며 경복궁과 청와대도 돌아본다면,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길이 기억에 남을 나들이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올리브 나무 아래> 사진전 초대의 글을 인용하면서 제 글을 마칩니다.
서촌 ‘라 카페 갤러리’의 22번째 전시, 〈올리브나무 아래〉전(展)에서는 붉은 광야에 푸르게 펼쳐진 천 년의 올리브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실수이자 가장 오래 살아남는 나무로 “신이 내린 선물”, “나무 중의 으뜸”이라 불리며 수많은 신화와 경전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올리브나무.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의 정취가 어린 올리브나무 숲에서부터, 대대로 그 땅의 사람들을 묵연히 지켜주는 나무,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 최후의 전사처럼 홀로 선 나무, 사막과 광야에서도 푸른 열매와 기름을 내어주는 나무, 천 년의 기억을 품고도 아이 같은 새잎을 틔우는 올리브나무까지. 박노해 작가가 눈물과 기도로 담아온 37점의 사진을 통해, 올리브나무가 지닌 ‘신성한 빛’과 ‘강인한 힘’을 전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짜 올려, 고귀한 열매와 기름과 사랑으로 피고 맺은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 나에게 올리브나무는 오래고도 한결같은 사랑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나는 천 년의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고 다시 나의 길을 간다.” (박노해)
이 검푸른 지구 위 한 점 빛의 장소가 되어줄 천 년의 ‘올리브나무 아래’ 기대어 푸르른 힘을 채워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