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배달부에 불과하다 한다. 학문 여러 분야를 깊이 연구한 그가 생명의 기원을 “우주 도래설”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라는 평을 듣는 그는 생명체의 탄생이 지구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졌거나 창조에 의한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견해와 신념은 찰스 다윈이 《종(種)의 기원》을 펴냈을 때보다 격렬한 비난과 저항을 견뎌야 했다.
창조론적 신앙의 시작은 인류에게 자의식이 생길 때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몇 만 년 동안 그렇게 믿어 온 그 신념은 굳을 대로 굳어 그 어떤 모순도 덮어버릴 만큼 공고(鞏固)해졌고 또한 세상 사람들 절대다수가 그렇게 믿고 산다. 아직은 세상의 흐름이 이러할 진데 그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도 모자라 무신론의 확산까지 외치고 나섰다. 사실 무신론이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조목조목 창조론에 맞설 수 있게 된 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라는 구도자를 내세워 기존의 창조주와 유일 신앙, 권력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데 이 저술이 촉매제가 되어 반(反) 창조론적 논의가 활기를 띠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무신론은 그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린 적이 없었고, 기껏해야 범신론(汎神論)*정도가 가끔 대두될 뿐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으킨 기술혁명은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인류를 하늘로 띄워 올렸고, 급기야 20세기 중반에는 달나라에 발자국을 찍게 했다. 그 결과 하늘에는 천국이 없고 인간이 죽어서 간다는 그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호기심 많은 이들의 눈과 귀는 자연히 과학자들의 입에 쏠리게 된다. 특히 아인슈타인 같은 대석학의 한마디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녀서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 때문에 차라리 입을 다물게 하고 말았다. 그렇긴 해도 워낙 언변이 좋은 아인슈타인인지라 입이 근지러워 가끔 자기 생각을 에둘러 나타내긴 했다.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든가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종교적이다.”
과연 천재다운 언변이다. 얼핏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렵고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창조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그 중간 어디쯤엔가에 있는 범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로 비치게끔 한 말이다. 그랬지만 그는 창조론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표현하여 더욱 화제를 모은 칼 세이건 역시 후폭풍을 염려하여 불가지론적 견해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사 가운데 무신론을 자신 있게 드러낸 이는 빅뱅이론과 우주팽창론의 스티븐 호킹을 효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주 어디에도 신이 개입한 흔적은 없다.”라고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그런 과학적 성과가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등장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듯 천체물리학과 진화생물학 대가들의 주장을 취합해 보면 생명체 단서의 우주도래설이나 유전자배달부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와 속이 후련해진다. 그동안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명제를 안고 얼마나 헤매었던가? 이젠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알 것 같다. 그래, 배달부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진리란 언제나 간결하고 명쾌한 것. 그리 복잡하지도 그리 단순하지도 않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감춰진 섭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 드러나지도 않는 것이기에 제 갈 길만 뚜벅뚜벅 가면 되는 것이다. 본분과 직분을 지키며 살다가 때 되면 마음에 드는 짝 만나 혼인하고, 아이들 낳고, 잘 키우고, 화목하게 살다 가면 그게 가장 성공한 삶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유형이든 무형이든 후대를 위한 자산을 남긴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리움이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행상 나간 엄마를 밤늦도록 기다리다 잠들 곤 했다. 아편에 미쳐 종적 없이 떠도는 그 미운 아버지도 그리웠다. 엄마마저 떠나버린 강가 잔디밭에서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짓곤 했다. 신작로를 달려오는 빨간 자전거에 엄마 아버지 소식이 실려 있나 해서였다. 그때부터 그리움을 싣고 오는 우체부 아저씨가 멋져 보였다. 내가 그렇게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알지 못하는 한 소녀도 내가 전해주는 유전자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잠깐만요, 우체부 아저씨!
(Please Mr. post man)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우체부 아저씨
저 좀 봐주세요.
혹시 그 가방 속에 제게 온 편지가 있지 않나요?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제 남자 친구에게서 온 편지 말이에요
틀림없이 오늘은 그 편지가 들었을 거예요
멀리 있는 제 남자친구에게서 온 거 말이에요
제발, 우체부 아저씨, 저 좀 봐주세요
저에게로 온 편지가 있는지요
여기서 쭉 기다렸어요,
참고 참으며 카드나 편지를요
그가 저에게로 돌아온다고 쓴 편지를요
우체부 아저씨, 저 좀 봐주세요
혹시 그 가방 속에 제게 온 편지가 있나요?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제 남자친구에게서 온 편지 말이에요
아저씨는 그동안 절 지나쳤지요
제 눈에 고인 눈물을 보세요
아저씨는 한 번도 저를 달래주질 않았죠
카드나 편지를 주어서요
1970년대 ‘미국의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남매 듀엣 카펜터스(Carpenters)가 불러 우리 귀에도 익숙한 ‘잠깐만요, 우체부 아저씨!(Please Mr. post man)’는 그보다 훨씬 전인 1961년에 아프리카계 여성 사중창단 마블리츠(The Marvelettes)가 불러 히트한 노래로, ‘58년에 디트로이트에서 출범한 모타운 레코드의 첫 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이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의 빅3라 불리던 포드, 제네럴 모터스, 크라이슬러가 몰려있는 미국 최대의 공업도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터(Moter)와 타운(Town)의 두 단어를 조합해서 “모타운”이라 불렀고 그 명사를 레코드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마블리츠의 구성원인 네 명의 아가씨는 모두 디트로이트 교외에 있는 고등학교의 동창생들이다. 고교 재학시절 지역 노래자랑에 나가 준우승을 하였는데 부상이 모타운 레코드의 오디션 응시자격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작곡인 ’Please Mr. post man‘으로 오디션에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했고, 데뷔곡부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회사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이 노래는 나온 지 이태 뒤인 1963년에 비틀스가 재해석 해냈고, 1968년에 7인조 가족밴드 카우실즈(Cowsills)에 의해 다시 한번 조명됐다. 우리가 잘 아는 카펜터즈가 부른 건 1974년에 나왔다.
* 범신론(汎神論) :자연과 신이 동일하여 모두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종교관
*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 경험현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의 존재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