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세계 처음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30년이 지난 요즘에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잘 정착되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의 98%를 재활용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2024.8.9)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가축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하는 우리나라의 정책을 극찬했다. 국민은 불편을 감수하고서 분리수거에 협조한다. 돈이 들더라도 종량제 봉투를 사서 사용한다. 귀찮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여 배출한다.
이처럼 환경 보호에 적극 협조하는 착한 국민이 있음에도 국제 환경단체는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른다. 국민 대부분은 한국이 기후 악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왜 한국은 기후 악당이 되었을까?
지난 2016년 영국 기후 변화 전문 미디어 ‘Climate Home News’는 국제 환경단체인 ‘기후행동추적(CAT)’의 분석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 4개 국가를 ‘기후 악당’이라고 평가했다.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이 기후 위기에 무책임하다는 이런 평가는 해를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지수는 국가별로 온실가스 배출량, 총에너지 사용량, 재생에너지 사용량, 기후정책 등 4개 분야의 성과를 계량화한 지수다. 이 지수는 어느 국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국제 기후 환경단체는 2005년부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64개 나라의 기후 변화 대응 지수를 산정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23년 12월 국제 기후 변화 전문기관에서 발표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지수(CCPI) 평가에서 창피하게도 한국은 EU를 포함한 64개국 가운데 61위를 기록했다. 2022년의 57위에서 4계단 더 떨어진 순위다. 한국보다 나쁜 순위를 받은 국가는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이들 세 나라가 모두 산유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국이 꼴찌를 한 셈이다.
제29차 유엔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9)는 올해 11월 11일~22일 사이에 중동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열렸다. 회의 중간인 11월 18일에 한국은 기후위기 해결을 방해하는 나라에 수여하는 ‘오늘의 화석상(化石賞)’ 1위를 수상하였다. 국제적으로 기후악당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화석상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에너지가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제일 원인임을 상기시키는 이름이다.
오늘의 화석상은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에 한국은 ‘오늘의 화석상’ 3위를 차지하였는데, 올해에는 1위로 등극하였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러한 국제적 불명예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오늘의 화석상 수상 소식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에서만 보도하고 경제 신문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류 언론에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서 후진국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1년에 UN이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왜 기후 악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는가? 그것은 국민이 잘못해서가 아니고 국가 정책이 잘못된 결과이다. 어떠한 정책이 잘못되었는가?
첫째, 우리나라는 외국의 석유와 가스 개발 사업에 막대한 금융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공적 금융의 화석 연료 사업 투자를 중단하자는 2021년 제26차 기후변화협약 총회의 글래스고 선언에 동참하지 않았다. 국내 에너지 기업 SK E&S는 호주 북부 해상에서 추진 중인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하여 14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최근에도 70억 달러 규모의 모잠비크 액화천연가스 생산 설비 건설 사업에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나라 밖 화석연료 개발사업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을 금지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신용협약을 개정하는 데 반대하는 두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한 나라는 튀르키예인데, 금융 지원 규모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 나라 밖에서 화석 연료 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서 국제 사회의 미움을 받는 셈이다.
둘째,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늘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21년 8%에 불과한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2030년에 30.2%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2022년에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10차 전기수급기본계획을 수정하여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30.2%에서 21.5%로 낮추었다. 낮춘 부분의 전기는 원전을 확대하여 공급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계획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화력발전소를 계속해서 건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승인하여 완공된 민간 화력발전소인 포스코 계열의 삼척블루파워는 2024년 5월에 상업운전을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 설비가 완성되지 않아 전기를 공급하지는 않고 있다.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 1, 2호기는 설계수명인 30년 동안 가동되면 3억 9,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회사 명칭에 블루(blue)라는 단어를 넣어서 친환경적인 이름을 붙였다. 작명 의도가 얄밉다.
삼척 시민들의 60%는 삼척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삼척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는 삼척블루파워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2020년 7월 14일 시위를 시작하였다. 투쟁위원회 회원들과 지지자들은 주말과 공휴일을 빼고 날마다 저녁 4시 삼척우체국에서 삼척시청을 거쳐 우체국으로 돌아오는 ‘탈탈탈’(탈핵ㆍ탈석탄ㆍ탈송전탑) 순례한다. 저녁 5~6시 사이에는 우체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제22대 국회가 탈석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 교계에서 삼척 화력 반대 시위를 응원하고 있다.
2024년 12월 2일에는 제1,117차 화력 발전 반대 시위가 있었다. 4년이 넘는 기간에 KBS와 MBC에서는 반대 시위를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경제 신문과 보수 신문에서는 삼척에서 화력발전소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은 한국이 기후 악당이라는 사실, 그리고 삼척에서 화력 발전 반대 시위가 4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