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초인 5일 저녁 5시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관 풍류극장에서는 판소리 노은주 명창 제자들의 제1회 발표회 <소리의 맥>이 있었다.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 이방장과 삼영주 이아니냐
죽장짚고 풍월실어 봉래산을 구경갈제 경포 동령의 명월을 구경하고
청간정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하고 단발령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가니
천봉만학 부용들은 하늘닿게 솟아있고 백절폭포 급한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무대에서는 박효순ㆍ서은선ㆍ박경희ㆍ백지수ㆍ김성애ㆍ임윤정 등 6명이 부르는 단가 ‘만고강산’이 울려 퍼진다. 이들은 전문 소리꾼들이 아니다. 그저 가정주부인데 취미로 판소리를 배운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긴 사설을 전혀 틀지지 않고 외워 북장단을 쳐가며, 병창을 해낸 것이다. 청중들은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무대에는 자막에 사설을 구구절절이 내보내 준다. 전문소리꾼의 발표회장이 아니고 판소리를 취미로 배운 소리꾼 발표회장에는 판소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이 올 것으로 생각한 노은주 명창의 뜻이라는 후문이다.
아마추어 발표회에 품격을 높여준 것은 무대 열리기 전 축사 순서였다. 무대에 오른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조동준 상임이사와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인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한결같이 노은주 명창이 제자들을 정성스레 가르치며, 판소리의 저변을 넓혀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한다.
무대에는 먼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아이 황다솜 양이 흥보가 중 ‘대장군방’을 부른다, 앙증맞게, 깜찍하게, 아이답게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르는 황다솜 양에 청중들은 본격적으로 발표회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기가 막힌다며 추임새를 연발한다. 사회를 본 이오규 씨는 노은주 명창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판소리를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대성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날 사회자도 역시 전문 사회자가 아니라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오규 씨로 한 것은 서한범 교수의 귀띔으로 한 결정이라는데 자연스러우면서도 출연자들이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청중들은 평가했다.
황다솜 양의 발표 이후 박경희 씨의 흥보가 중 ‘저아전’, 김성애ㆍ임윤정ㆍ박경희 씨의 흥보가 중 ‘흥보마누래 나온다’, 임우혁 씨의 흥보가 중 ’얼씨구나 절시구야‘, 박효순ㆍ백지수ㆍ서은선 씨의 흥보가 중 ’화초장‘, 이은주 씨의 흥보가 중 ’이때춘절‘이 이어진다.
뒷이야기로 이 가운데 임우혁 씨는 흥보가 중 ’얼씨구나 절시구야‘를 배우면서 장단은 알겠는데 소리의 맥이 잘 안 잡혀서 고심했고, 새벽 4시에 눈을 떠 침대에서 연습 해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흥보가 중 ’이때춘절‘을 부른 이은주 씨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고, 지난해 허리 수술을 해 몸이 안 좋은데도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열성을 보인 끝에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후 김영범 씨는 단가 ’사철가‘, 김영범ㆍ이오규ㆍ정덕균ㆍ임우혁 씨는 춘향가 중 ’갈까부다‘, 이오규 씨는 춘향가 중 ’사랑가1‘, 정덕균 씨는 ’사랑가2‘, 이효행 씨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 서은선 씨는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데‘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모든 출연자가 함께 남도민요 흥타령, 남원산성, 진도아리랑’을 열창했다. 판소리로 목을 다듬은 출연자들이 부르는 남도민요는 훨씬 맛깔스럽게 들려 청중의 큰 손뼉을 받았다.
그리고 노은주 명창은 공연이 끝나갈 무렵 특별출연하여 심청전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불렀고,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한 대목 더 불렀는데 바로 흥부가 중 ‘첫째 박 타는 대목’으로 연말을 맞아 청중들에게 돈 100억 원씩 나눠주는 덕담 소리를 해 청중들이 큰 환호를 받았다. 흔히 명창들이라면 본인의 공연에 선심 쓰듯 제자들을 출연시키는데 이날 공연은 노은주 명창이 자기는 그저 들러리로 족하다며, 끝날 무렵에 겨우 무대에 등장한 모습에도 청중들은 감동했다.
이날 공연을 본 서한범 교수는 “전문가들이 아닌데 나이 들어서 어려운 판소리에 도전하고 스스로 즐거워한다고 하는 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악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목은 아마추어들의 활동이 활발해져야 프로들이 살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층이 두터워야 한다. 이렇게 도전하는 동호회원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전문 소리꾼들의 공연에 와서 추임새도 쏟아내고 음반을 사주기도 하기에 판소리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발표회는 이런 제자들을 키워낸 노은주 명창의 지도를 칭찬하고, 잘 따라와 발표회까지 해낸 제자들에게도 크게 손뼉을 쳐준다.”라고 말했다.
또 강동구 둔촌동에서 온 황성혜(56) 씨는 “나는 판소리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나이 든 사람들이 취미로 판소리를 배워 이렇게 무대에 오를 수 있음에 감탄했다. 나도 취미로 판소리를 배워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