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 둑
- 택당(澤堂) 이식(李植)
姦宄無常産(간귀무상산) 간사한 도적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가
飢荒又一時(기황우일시) 굶주림과 가뭄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어서
近村聞警急(근촌문경급) 이웃 마을의 위급한 소식 들어보니
相識有創夷(상식유창이)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당했다네
自幸囊中淨(자행낭중정) 다행이구나!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應無棟上窺(응무동상규) 당연히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사람 없으리라
穿墉何足磔(천용하족책) 좀도둑들이야 어찌 나를 죽이리
城社有狐狸(성사유호리) 도성과 종묘에 여우와 살쾡이 있으니
이 시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으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 노래한 한시다. 이식(李植)은 이정구ㆍ신흠ㆍ장유와 더불어 한문4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히는 뛰어난 학자며, 문장가로 문풍을 주도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식은 1623년 인조반정 뒤 이조좌랑이 되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지냈다. 특히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며, 이후 대사간으로 있을 때 뚝심으로 실정(失政)을 논박하다가 여러 번 좌천된 인물이다.
이식은 위 한시 <도둑>에서 간사한 도적들에게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당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자기 집 대들보에 엿보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단다. 더구나 좀도둑들이야 자기를 죽일 리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도성과 종묘에 좀도둑이 아닌 여우와 살쾡이들이 있다고 한탄한다. 그때 누구의 재물 정도를 탐하는 도둑이 아니라 다른 이의 목숨을 해치는 살쾡이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 상황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