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들어가는 말> 필자는 25년 동안 근무했던 수원대를 2015년 8월에 정년퇴직하였다. 퇴직한 그달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작은 집을 짓고 이사하여 내외가 잘살고 있다. 어느 날, 월간 《환경기술》 편집자로부터 “평창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볍게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은퇴자답게 조용히 티를 내지 않고서 살려고 했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편집자의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2022년 3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8회에 걸쳐 원고를 발표했다. 이 글을 지금에 맞게 고쳐 다시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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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설 연휴는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추가로 지정하는 바람에 6일로 늘어났다. 우리문화신문의 편집자인 김영조 소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긴 연휴 동안 게재할 글이 부족한데, 소개할 만한 이야기가 없겠느냐고. 그래서 이미 썼던 글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읽고서 약간 수정하고 그림을 추가하여 독자들에게 심심풀이 땅콩 삼아 소개하려고 한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평창군은 강원도의 한가운데서 조금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평창군 지명지》를 읽어보면 평창(平昌) 땅은 태기산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부족국가 예맥국에 속했다. 원래 우오현(于烏縣)이라고 불렀는데 장수왕 때에 고구려에 흡수되어 욱오현(郁烏縣)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 때에 신라 영토에 속하게 된 뒤 백오현(白烏縣)이라고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고려가 시작되면서 평창현(平昌縣)으로 바뀌었고 조선이 등장하면서 평창군(平昌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평창군은 산이 많고 고도가 높은 땅이다. 조선 왕조의 개국 공신 정도전은 일찍이 평창을 "문 앞의 땅이 좁아 수레 두 대를 겨우 세울만하고 하늘이 낮아 고개(嶺) 위가 겨우 석 자 높이"라고 표현하였다. 정도전이 죽은 뒤 세월이 600년 이상 흘렀다. 세상이 크게 변하였다. 평창에 산이 많고 고도가 높다는 것은 이제는 약점이 아니고 장점이 되었다. 평창군은 1998년에 ‘Happy 700’이라는 로고를 개발하였는데, 해발 700m 높이가 사람의 몸에 가장 적합하고 따라서 행복한 고도라는 의미이다. 평창군 면적의 60%가 해발 700m를 넘는다.
평창군 인구수 자료를 찾아보면, 1920년에 52,671명으로 조사되었다. 그 뒤 1967년 101,04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하였지만, 이후 점점 줄어 2024년에는 4만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인구수 4만은 서울, 부산, 인천 같은 대도시의 1개 동의 인구수보다 적은 것이다. 도시의 팽창과 시골의 몰락은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평창군의 인구가 감소한 가장 큰 까닭은 1966년에 제정된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경사 20도 이상의 화전을 모두 산림으로 복구시켰다. 화전정리법에 따라 산림을 훼손시키는 화전을 금지하자 산골에서 살던 화전민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산업화라고 볼 수 있다. 농업에 종사하던 인구가 도시와 공장지대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면서 수도권과 동남권 등의 인구는 급증하고 농촌과 산촌의 인구는 줄게 되었다.
평창군의 남북 길이는 60km이며, 동서 길이는 45km이다. 평창군의 면적은 1,461 km2인데, 홍천군(1820 km2), 인제군(1646 km2), 안동시(1521 km2)에 이어 전국 제4위를 기록하고 있다. 평창군은 면적은 넓지만, 임야가 84%를 차지하고 있다. 평창군은 농업에 이용할 수 있는 토지가 적어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는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창군은 1읍 7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읍면의 세력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는 인구수일 것이다. 평창군 누리집(https://www.pc.go.kr/portal)에서는 매월 주민등록 인구 통계를 공시하고 있다. 2024년 12월 현재 평창군 읍면별 주민등록 인구통계는 다음 <표1>와 같다.
도시 생활에 지친 수도권 사람들은 주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평창의 산이나 계곡을 찾아와 휴식을 하고 싶어 한다. 2000년대 초에 불기 시작한 펜션 열풍은 봉평면에 있는 흥정 계곡이 진원지다. 그런데 펜션은 법적인 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통계에서는 ‘농어촌민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영어로 ‘pension’은 연금이라는 뜻이고 끝에 e를 붙여서 pensione이라고 표기해야 우리가 알고 있는 펜션이 된다. 평창군 귀농귀촌협의회 회장님께 전화로 물어보니 전국에서 가장 펜션이 많은 면이 봉평면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펜션 사업이 잘 안 되는데, 흥정계곡에는 아직도 90여 개의 펜션이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2008~2012)의 국정을 대표하는 구호는 저탄소 녹색성장이었다. 2009년 5월 13일 권혁승 평창군수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아시아의 알프스 조성을 위하여’ 평창을 대한민국의 ‘산림 수도’로 선포하였다. 그렇지만 정작 평창 사람들은 자기들이 산림수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산림수도라는 말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평창의 또 다른 별명은 평화 도시다. 평창이 평화 도시가 된 것은 2018년 동계올림픽 때에 북한팀이 평창에 왔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남북 사이 평화가 평창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런 연유로 평창은 평화의 도시가 된 것이다.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1년이 지난 2019년 2월에 평창군에서는 평창평화포럼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바웬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초청하여 국제 평화를 논의하였다. 또한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 유산을 공유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왕기 평창군수(민선 8기)는 2019년 4월 29일 대관령 발왕산 정상에서 평창군을 ‘평화 도시’라고 선포하였다. 한왕기 군수는 군정 구호로서 ‘평화의 시작, 새로운 평창’을 정했다. 쉽게 말해서 평창군은 평화를 새로운 홍보 전략으로 채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평창은 우리나라의 산림 수도면서 세계적으로는 평화 도시다. 나는 이러한 평창에 살면서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