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에서 온 말이 80%인 프랑스는 라틴어를 안 가르치고

  • 등록 2015.01.08 2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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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기본법>과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생각’

[한국문화신문 = 홍사내 기자]  한글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58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자 타령에 세월을 좀먹는 사람이 있다. 교육부는 2015년에 개정될 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법안에다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라는 문구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살짝 끼워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국회에서 작년에 통과시킨 상위법 선행학습 금지법에 위배되는 하위 법안(?)임에 틀림없는데, 한자 학습에 이권이 개입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반역사적이고 비교육적이며,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런 정책을 펼 리가 없다.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천여 년이나 되고, 정규 교육과 모든 기록물이 오로지 한문(한자)으로만 이루어지며 보낸 세월이 1,900여년이고 보면, 한글로 교육을 하고 한글로 공문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년도 안 된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당했으니 우리 말글이 제구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광복 이후 7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부 국한 혼용론자들이, 대한민국의 문자가 한글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제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도 백성을 가르치고 제 생각을 쉽게 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깊은 창제정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자문화만을 중시하던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의식주처럼 기본권인 자유로운 말글 소통 정신이 깃들어 있는 한글은 편지를 쓰거나 문헌을 번역하고 학습하는 데 매우 긴요하게 사용되면서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하지만 지식층이나 권세가, 권력자들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 말글 체재와는 거리가 먼 중국어 문장식으로 중국 글자만을 사용하면서 고단한 말글살이를 이어온 것이다. 


  
▲ 중국에서는 버리려는 한자, 한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교육(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한글이 공문서와 공교육의 문자가 된 것은, 고종 황제가 1894년에 공표한 이른바 국문 칙령이 그 시작이다. 칙령 제1모든 법률과 칙령은 다 국문을 기본으로 삼고 한문을 붙이되, 또는 국한문을 혼용할 수 있게 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혁명적이고 코페르니쿠스적인 지령이었다. 그러다가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과 한글은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하다가, 광복이 되자마자 우리 제헌 국회에서는 다시 법률 제6호를 공표하였으니, 1948109한글전용에관한법률’[제정 1948.10.9 법률 제6],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가 그것이다 


고종 때나 마찬가지로 해방이 된 때도 우리 교육 제도는 제자리걸음 그대로였으니까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법을 만들어야 했다. 이 법률이 2005년 국어기본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120년이 넘도록 다만 조항이 이어져 한자를 버리지 못한 셈이다. 지금은 모든 신문, 방송, 소설이나 잡지에서 한자를 전혀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말과 글을 알기 쉽고 유창하게 적고 전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다만조항을 없애도 될 만큼 방송과 통신, 문학과 예능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교육부가 발목을 잡고 역사를 거슬러 가려고 하는 것이다. 


1907년 주시경 선생이 한자어 추방과 한글 전용을 주장하여,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었으며, 194511월에 정부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공포하였고, 194810월에는 한글전용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1950년 이승만 정부가 느닷없이 국한 혼용을 결정하였다가 엄청난 국민의 반대로 말미암아 1958년에 한글전용 실천 요강을 공포하여 간판, 문서, 관청 도장 등의 한글 전용을 지시하였고, 1962년에는 한글 전용 특별심의회가 설치되었으나 1964년에는 오히려 교과서를 국한문 혼용으로 간행키로 결정되어 1968년까지 이어갔다 


하지만 1965년 정부 공문서 규정 71항에서 문서는 한글로 띄어서 가로 쓰며, 표준어를 사용한다. 다만 법규 문서는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경우에 한하여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서 쓴다.’고 규정하고, 19685월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전용 5개년(1968~1972) 계획을 공포하고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쓰기도 하였다 


1970년에 다시 한자를 제거하고 한글 전용으로 교과서를 간행하였고, 1972년에는 한글 전용을 보완키 위해 한문 교과를 독립시켜 한자 교육을 시행하였으며, 1974년부터는 교과서만 한자 병용키로 방침을 수정하였고, 1975년부터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토록 하였다. 1999년 문화부가 신설되면서 한글날이 폐지되고 한자 병용 정책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국민의 끝없는 운동에 힘입어 2005년에는 한글날이 국경일로, 201212월에는 공휴일인 국경일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교과서 한자 혼용과 병기 정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임을 잘 알 수 있다. 이른바 아날로그식 책 글씨 시대가 가고 디지털식 전자 글씨 시대가 오면서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불합리한 일인지를 잘 알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방송에 나와 말을 하고 한글로 적으면 소통이 다 되는 것을 굳이 한자말이라고 한자를 적어보여야 한다는 것은 말글살이를 어지럽히고 소통을 가로막는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끈질기게 한자 혼용, 세로쓰기를 주장하던 일간 신문들도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편집을 위해 한글 전용과 전면 가로쓰기로 바뀌면서 한자 혼용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한글 전용이 얼마나 가독성을 높이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한글 전용은 우리 역사에서 한자가 얼마나 많은 폐단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고 그 개선 방안의 최선책이라는 속뜻이 새겨져 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 한자어가 우리 말글을 더럽힘으로써 국적 없는 한자말 교육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뜻도 있다. 


일본은 서양 문화를 들여오면서 한자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말에 맞춘 한자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로는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말이 대다수이다. 이것이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까닭인 것이다. 


Airport空港(공항, Air으로, port으로 대응시켰다), Homework宿題(숙제, Home宿, work에 대응시켰다), Cold war冷戰(냉전, Cold, war에 대응시켰다), Hämophilie血友病(혈우병, Hämo, philie에 대응시키고, 그 의미를 한정시키기 위해 을 덧붙였는데, 개별 한자의 뜻으로는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이란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Automobile自動車(자동차, Auto, mobile을 대응시키고 의미 한정 때문에 를 덧붙였다), Railroad鐵道(철도, Rail, road를 대응시켰다. 중국에서는 대신 를 대응시켰다), Zuurstof酸素(산소, Zuur:, stof:), Waterstof水素(수소, Water:, stof:), Philosophy希哲學(희철학)哲學(철학), Education敎育(교육)(*위 내용은 인터넷 위키백과 일본제 한자어에서 인용하였음)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본격화되자 일본어가 한국어 대신 국어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면서 한국어에 이러한 일본 한자어 유입이 한층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번역어뿐 아니라, 본래 개별 언어에서 쓰이지 않는 일본어의 문체 및 일본 고유 어휘도 함께 들어왔다. 이렇듯 한자라는 공유 매체를 통해 한자문화권의 국가들은 생소한 서양의 개념을 일본을 통해 대량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한자어 수용 과정이 대부분 식민지 침탈 과정 등에서 비주체적으로 이루어진 점과 이후에도 줄곧 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해 온 것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이들 일본 한자어는 해방된 뒤에도 국어사전 편찬 과정에서 편찬자들이 일본 사전의 어휘 풀이를 그대로 따라하여 일본 한자어라는 의식 없이 전통 한자어의 일부로 알고 쓰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순수한 의미에서 일본 한자어라고도 할 수 없는, 표기만 한자로 하고 읽기는 일본 고유어로 읽는 훈독 일본어도 일본 한자어로 둔갑하여 사용되고 있다. “매상: , 수속: 手続, 소포: 小包, 수입: 手入따위가 그것이다. 이런 말글 식민화를 개탄하여 개화기 이후 우리 교육자나 선각자들은 끊임없이 일본 한자말을 버리고 안 쓰도록 노력하였으며 계몽하였으니, 그것이 독립정신으로 뿌리내렸다. 


  

▲ 프랑스말 가운데 라틴어가 70~80%인 프랑스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세계 문자 발달사를 볼 때, 로마의 천년 지배로 서양이 로마자를 쓰게 되었고, 그 식민지였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아프리카 대륙, 일부 아시아 나라에서까지 로마자를 쓰고 있지만, 라틴어가 아닌 제나라 말을 표기하는 데 힘쓰지 라틴어에서 온 말이라고 해서 라틴어를 병기하지는 않는다. 프랑스말은 7~80%가 라틴어에서 온 말이고, 영어도 50% 이상 라틴어 어원인 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규 교육 과정에서 라틴어 어원을 가르치는 일은 전혀 없다 


다만 학생 재량의 선택 과목으로 개설하고 있지만 그 과목을 듣는 학생은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서 극소수 학생에 불과하다. 이것은 문자의 역사가 말의 역사, 사회 구성원의 소통의 역사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우리 말글 교육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굳굳하게 자리잡은 우리말과 한글 교육을 누가 감히 흔들 수 있으랴?(홍현보.2015.1.10.)


 

홍사내 기자 azaq19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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