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종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이야기

  • 등록 2020.04.22 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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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3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와는 달리 창문이 없는 동굴 숙소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한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 평소처럼 새벽에 잠이 깨었다. 텔레비전은 없고,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슬기전화(스마트폰)로 이슬람 종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안사리의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참고로 하여 재구성한 무함마드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

 

무함마드는 570년에 아라비아반도의 서쪽에 있는 메카에서 태어났다. 무함마드는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 하심 가문 출신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가난했으며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여섯 살 때 돌아가시고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촌인 아부 탈리브가 맏아들처럼 키웠다. 그는 고아들이 으레 겪는 모멸과 멸시를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과부와 고아가 겪는 아픔에 평생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메카 사람들 대부분은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으며, 무함마드 역시 문맹이었다. 그는 성장하면서 신뢰 깊고 인자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사람들은 그를 ‘아민(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불렀다. 무함마드는 당시 팽배했던 이교적 숭배나 그릇된 신관, 비도덕적인 사회의 타락상을 혐오했다.

 

그의 나이 25살이 되었을 때 무함마드는 부유한 미망인 사업가 카디자의 눈에 들어 그녀의 사업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15살 연상인 카디자의 구혼을 받아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무함마드는 카디자와 사이에 2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낳았는데, 아들 둘은 일찍 죽었다. 카디자가 죽을 때까지 25년 동안 그들은 다정한 동반자로 살았다. 당시 아라비아는 일부다처 사회여서 아내를 한 명만 두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무함마드는 카디자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그의 나이 40살이 되던 610년, 무함마드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중년의 위기가 닥치면서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정기적으로 산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명상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동굴 안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 알라의 계시를 받게 되는 중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알라의 계시는 그 뒤 23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코란은 그 계시를 모아놓은 책인데 모두 114장에 이른다. 초기에 무함마드는 자신이 선지자인가에 대해 고민했지만, 점차 자기가 선지자임을 확신하고 코란이야말로 알라에게서 받은 최후 계시라고 선언했다.

 

무함마드가 코란을 암송하면서 알라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자 메카의 기득권층은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들은 거의 모두가 메카의 기존 질서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해가 가혹하게 계속되자 622년 알라께서는 그들에게 메카에서 북쪽으로 420km 떨어진 메디나라는 도시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슬람에서는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을 ‘히즈라’라고 부르며 이슬람 달력의 원년이 되었다. 8년 뒤, 무함마드와 세력이 커진 그의 추종자들이 메카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오랫동안 무슬림을 박해했던 사람들을 용서해주었다. 그는 우상 숭배를 금하고 메카에 새로운 종교적,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무함마드는 생전에 12명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이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이러한 여성 편력을 비판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고려 태조 왕건이 혼인 정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처럼 무함마드 역시 이슬람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 결혼을 많이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딸 파티마를 후에 제4대 칼리프가 되는 사촌 동생 알리에게 시집보냈다. 무함마드보다 30살이나 어린 알리는 어렸을 적부터 무함마드를 목숨처럼 따라다녔던지라 기꺼이 무함마드의 사위가 된다.

 

무함마드는 생전에 70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그 가운데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것도 27차례나 된다. 계속되는 전투에서 세를 확장한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전하기 위하여 각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무함마드가 63살의 나이로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체 아라비아반도는 이슬람으로 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못 되어서 동쪽으로는 중국의 접경으로부터 서쪽으로는 스페인까지 이슬람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동이 틀 무렵인 5시쯤에 나는 동굴 숙소 문을 열고 나왔는데, 여기저기서 슉슉 이상한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새벽하늘에 수많은 열기구가 공수부대 낙하산처럼 떠 있다. 열기구는 내가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자세히 보니 열기구에 한두 사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열기구는 10인승과 20인승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병산은 열기구 타는 것은 너무 값이 비싸고 순례자에게는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전에 열기구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열기구 사진을 찍고서 나는 아침 산책을 나섰다. 동굴 숙소는 여기저기에 있었다. 숙소에는 모두 호텔 또는 게스트하우스라고 표시된 간판이 있었다. 주민들이 사는 2층 또는 단층의 집도 많았다. 사람들은 골목길과 마당의 공간 곳곳에 나무와 꽃을 예쁘게 키우고 있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식물을 확인해보니 능소화, 인동, 장미, 호두나무, 천사의 나팔 같은 나무 종류와 금잔화, 분꽃, 접시꽃, 겹삼잎국화 등의 풀 종류가 보였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2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였다. 식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2km 떨어진 야외박물관으로 걸어서 구경하러 갔다. 가는 길 중간에 버섯 모양의 작은 바위산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지금까지 빙문했던 관광지와는 달리 매우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이 터키 관광을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한 외국인 젊은 남자가 반갑게 말을 걸어온다. 이 청년은 미국 시카고에 사는데 조지아를 여행하는 친구에게서 우리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복장과 깃발, 몸자보를 보고서 자기 친구가 말한 순례자임을 금방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길가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제안하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찻값도 자기가 내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의 탈핵 운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하였으며 지구를 보호하는 훌륭한 일을 한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병산은 그에게 같이 깃발을 들고 조금이라도 걸어보자고 제안을 했고, 그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청년과 헤어진 뒤에 병산이 내게 말하였다.

“이러한 청년이 많아져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 천성이 선한 사람이 선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선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나는 병산의 말을 듣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말 멋있는 표현이다. 맞는 말이다. 선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며 그렇게 선한 사람이 많아질 때 세상은 좋아질 것이다. 선한 세상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멋진 표현을 생각해 내었나?”

 

나는 병산의 말을 영어 순례일지에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A good man by nature does not necessarily makes a good world. A man who is working for a good world is a good man.”

 

병산은 자기가 생각한 표현은 바둑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명한 기사인 키다니 9단과 오청원 9단이 대국을 하였는데, 번번이 오청원 9단이 이겼다. 그러자 키다니 9단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상훈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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