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함께 조선 최고의 과학을 탐구한 '장영실'

2021.10.28 11:32:24

[‘세종의 길’ 함께 걷기 80] 장영실(蔣英實) - ①

[우리문화신문=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치세에 도움을 준 조력자들을 살피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장영실이다. 장영실의 등장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다. 다음은 그 재능을 눈여겨 본 태종과 세종의 인재 알아보기이다. 더불어 그를 통해 당시 신분사회의 벽을 헤쳐 나가는 세종의 개혁정신이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조선 세종 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장영실(1390년경~?)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소행주 사람으로 중국에서 온 장성휘로 귀화인이다. 아버지 집안은 노비 출신이 아니나, 어머니 기생 신분을 따라서 동래현의 관노로 태어났다.  중국인 김새 등 7명이 여진족에 붙잡혀 있다가 조선으로 도망왔는데 김새는 금은 제련기술이 뛰어났다. 이에 관에서는 장영실에게 김새의 제련기술을 전수받게 했다.

 

 

동래현에 있던 장영실의 재주가 차츰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태종이 그를 발탁하였다. 후에 나온 실록 기사를 참고해 보자.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행 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蘇州)·항주(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임인·계묘년 무렵에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를 시키고자 하여 이조 판서 허조와 병조 판서 조말생에게 의논하였더니, 허조는,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 수 없다. ’고 하고, 조말생은 ‘이런 무리는 상의원에 더욱 적합하다. ’고 하여, 두 의논이 일치되지 아니하므로, 내가 굳이 하지 못하였다가 그 뒤에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한즉, 유정현(柳廷顯) 등이 ‘상의원에 임명할 수 있다. ’고 하기에, 내가 그대로 따라서 별좌에 임명하였었다." -《세종실록》 15/9/16-

 

세종의 ‘임현사능’ 즉 “어진 이를 임명하고 유능(有能)한 인재를 부리시어 널리 문·무를 겸하여 걷어 들이시는 길을 열었습니다.”(任賢使能, 廣開兼收之路) -《세종실록》 14/4/28- 를 실천에 옮기시는 것이다. 결국 장영실은 세종 5년 관노에서 벗어나 상의원 별좌 자리를 받게 되었다. 상의원은 임금의 의복과 궁중 일용품이나 금은보화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세종 즉위 후 장영실은 명나라에 유학 가서, 천문관측시설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자격루 등을 만들게 된다.

 

 첫 석등잔 제작

 

 장영실은 많은 기구들을 만들었는데 처음 만든 것은 세종 7년에 실록의 첫 기록을 보면 석등잔의 제작이다. 평안도 감사에게 전지하기를, "석등잔 대·중·소 아울러 30개를 이제 가는 사직(司直) 장영실이 말하는 것을 들어 준비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7/4/18 -

 

  신분의 타파

 

  장영실이 더 활발히 일하게 해주는 방법은 직급을 높여 주는 일이다. 세종 15년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동래현의 관노비에서 궁궐의 궁노비로 이동한 장영실은 이후 상의원 별좌, 정4품의 호군, 종3품의 대호군까지 오르게 된다. 

 

"장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내 곁에 가까이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그러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하니, 황희 등이 아뢰기를,

 

"김인(金忍)은 평양의 관노였사오나 날래고 용맹함이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호군을 특별히 제수하시었고, 그것만이 특례가 아니오라, 이 같은 무리들로 호군 이상의 관직을 받는 자가 매우 많사온데, 유독 장영실에게만 어찌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15/ 9/16-  이런 과정에서 세종의 뜻을 받들어 장영실은 많은 천문기구를 제작하였다.

 

 

 천문기기 제작

 

 세종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이루어낸 천문기구의 성과물은 자격궁루, 혼천의, 혼상,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간의대 등이 있다.

 

1)자격궁루(自擊宮漏) :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 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다.

2)혼천의渾天儀 : 태양, 달,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

3)혼상渾象 : 하늘의 별을 둥근 구형에 표시한 의기(儀器)

4)물시계 : 자격루와 옥루가 있다.

 

5)해시계 : 앙부일구(仰釜日晷 오목한 반구 안에 북극을 지향하는 영침과 영침의 그림자를 받는 시반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주일구(懸珠日晷] 휴대용 해시계로 1437년 세종 19년 4월에 정 초·장영실·김빈·이천·김돈 등이 만들었다), 천평일구(天平日晷는 적도시반(赤道時盤)을 가진 휴대용 해시계이다. 1437년/세종 19년에 처음 제작), 정남일구(定南日晷,지남침/나침반) 사용하지 않고 남쪽을 맞히는 해시계) 등이 있다.

6)측우기 : 세종 23년(1441)에 만든 세계 최초의 우량계.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도 설치하 여 강우량을 측정하였다.

7)간의대簡儀臺: 조선 시대에, 간의를 올려놓기 위하여 설치한 대. 세종 때에 경복궁의 경회루 북쪽에 돌로 쌓아 만들었다. 

8)규표圭表 : 곱자처럼 생겼으며 그림자의 길이로 태양의 시차를 관측하였다

9)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 세종 19년(1437)에 만든 시계. 밤낮으로 시각을 잴 수 있도록 만들 어, 만춘전(滿春殿), 서운관(書雲觀), 함경도 병영, 평안도 병영에 각각 하나씩 두었다.

 

 이 많은 기기들은 장영실 혼자의 힘은 이루어 낸 것은 아니다. 정초와 정인지, 세종 등이 이론과 원리를 설명하면 이순지, 김담 등이 수학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천이 현장을 지휘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기기를 제작하는 것은 장영실이었다. 실록을 보면 세종 16년에 새로 만든 루기(漏器)의 구조와 원리 및 보관 장소를 정했다.

 

"이날부터 비로소 새 누기(漏器, 물시계)를 썼다. 임금이 예전 누기가 정밀하지 못한 까닭으로 누기를 고쳐 만들기를 명하였다. 간의(簡儀)와 참고하면 털끝만치도 틀리지 아니한다. 임금이 또 시간을 알리는 자가 차착(差錯)됨을 면치 못할까 염려하여, 호군(護軍) 장영실에게 명하여 사신 목인(司辰木人)을 만들어 시간에 따라 스스로 알리게 하고,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도록 하였다." -《세종실록》 16/7/1-

 

 그리고 보루각(報漏閣)에 새 루기(漏器)를 놓고 서운관생(書雲觀生)으로 하여금 번갈아 입직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경회루의 남문과 월화문·근정문에 각각 금고(金鼓)를 설치하고, 광화문에 대종고(大鍾鼓)를 세워서, 당일 밤에 각 문의 쇠북을 맡은 자가 목인(木人)의 금고 소리를 듣고는 차례로 전하여 치게 했다.

 

 영추문(경복궁 서문)에도 큰 북을 세우고, 오시(오전 11시 ~1시)에 목인의 북소리를 듣고 또한 북을 치고, 광화문의 북을 맡은 자도 전하여 북을 친다. 경회루 남문과 영추문·광화문은 서운관생이 맡고, 나머지 문은 각각 그 문에 숙직하는 갑사들이 맡았다. 장영실은 성품이 정교하여 항상 궐내의 공장(工匠) 일을 맡았었다. (다음 회 계속)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kokim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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