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새우’가 ‘술고래’로 변한 사연

2021.12.24 12:28:50

평창강 따라 걷기 8-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는 녹음이 우거졌다. 봄꽃은 다 졌고, 이제는 여름꽃이 많이 보인다. 흰꽃으로는 데이지(정확한 이름은 샤스타 데이지)가 많이 보이고, 노란꽃으로는 금계국이 곳곳에서 보인다. 군데군데 노란 애기똥풀도 보이고. 강에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과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백로와 가마우지도 보인다. 감자밭에서는 하얀 감자꽃이 벌써 피었다. 옥수수밭에서는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세상 만물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82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자 판운교가 나타났다. 판운교를 지나 이제는 강을 왼쪽에 두고 계속 걸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쪽에 영월화석박물관이 나타났다. 답사팀의 일원인 석주는 전공이 지구과학이다. 나는 박물관에 도착하기 전에 석주에게 박물관에 가면 화석에 대한 설명을 좀 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그런데 12시에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휴관 중이다. 좋은 기회인데, 아쉬웠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월군에는 박물관이 많다. 《영월군지》를 읽어보니, 영월군에서는 2005년부터 ‘박물관 고을사업 육성’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2005년에 8개였던 박물관이 현재는 공립박물관 10개, 사립박물관 14개 등 모두 24개로 늘었다. 영월은 이제 ‘지붕 없는 박물관 고을’이 되었다. 참고로 24개 박물관의 이름을 조사해 보았다.

 

10개 공립박물관: 별마로천문대, 난고김삿갓문학관, 술샘박물관, 영월Y파크, 단종역사관, 동강사진박물관, 영월동굴생태관, 강원도탄광문화촌, 영월곤충박물관, 영월라디오스타박물관

 

14개 사립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국제현대미술관, 영월곤충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 영월화석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쾌연재도자미술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종교미술박물관,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영월초등교육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만봉불화박물관

 

이 밖에도 묵산미술박물관, 불로강성수기증 유물전시관, 양씨판화미술관, 엄흥도기념관, 영월미술인촌, 영월음향역사박물관, 월드프렌즈빌리지, 제이큐브미술관 등이 있다. 영월에서 박물관만 다 둘러보려고 해도 1주일은 걸릴 것이다.

 

화석박물관을 구경하려고 했던 시간만큼 여유 시간이 늘어났다. 걷기 시작한 지 겨우 40분 지났지만 우리는 박물관 옆 정원에 잘 만들어진 쉼터에서 쉬기로 했다. 은곡은 배낭에서 막걸리 2병과 마른오징어 안주까지 꺼내어 펴놓았다. 자연스럽게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 앉았다. 은곡과 홍교수, 그리고 내가 주류에 속한다.

 

 

내가 마실 수 있는 최대 주량은 소주 3잔이다. 3잔을 마시면 나는 장소를 불문하고 잠을 자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술자리에서 3잔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친구들도 3잔 이상은 권하지 않는다. 소주 3잔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 처음 술을 배웠을 때의 주량이다. 지난 50년 동안 최대 주량은 조금도 변화가 없다. 요즘도 소주 3잔까지만 마신다.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은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소주 3잔 먹고 얼굴이 빨개져 꾸벅꾸벅 졸면, 친구들이 나를 술새우라고 놀렸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즘에 친구들을 만나면 술 먹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술을 먹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주치의가 술 먹지 말라고 했다.”

“약을 먹는데 금주를 해야 한다.”

“간이 나빠져서 술을 끊었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안 먹는다. 내가 여전히 소주 3잔을 마시면 친구들이 감탄한다.

“와아, 자네 술고래네.”

 

재미있는 현상이다. 내 주량인 ‘소주 3잔’은 50년 전에는 술새우였는데, 이제는 술고래로 변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변했고 따라서 소주 3잔에 대한 평가도 변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한자를 써서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어렵게 표현한다.

 

시원한 나무 그늘 탁자에 앉아서 주류 3명은 막걸리를 마셨다. 내가 해당 오종실에게서 배운 건배사를 써먹었다.

 

“이것이 술이요?”

“아니요!”

“그러면 뭣이요?”

“정이요!”

 

우리는 정을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전망 좋은 쉼터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박물관 앞으로 평창강이 흐른다. 오리 두 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오리를 보더니 은곡이 한마디 한다.

“저 앞에 보이는 평창강에는 수달이 없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수달 있는 물에서는 오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수달이 다 잡아먹습니다.”

 

36년간 평창에서 산 은곡의 말이니 사실일 것이다. 생태학의 용어로 말하면 수달은 오리의 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즘에 평창강에 가마우지가 나타나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마우지는 원래 우리나라 해안지방과 무인도에 분포하였는데,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수생태계(水生態系)를 교란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12시 20분에 박물관을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갔다. 82번 도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걷기에는 편했다. 나는 홍종호 교수와 같이 걷게 되었다. 홍 교수는 교수 시절에는 물리학자로서 강의와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65살에 은퇴한 뒤 그는 뒤늦게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였단다. 대단히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은퇴한 뒤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몇 살인지 아는가? 2020년 기준으로 83살이다. 그러므로 65살에 은퇴하더라도 골프, 당구, 바둑, 탁구, 마작, 섹스폰, 키타, 오카리나, 단소 등등 무엇이든지 1년만 배우면 적어도 10년은 잘 써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1년 투자해서 10년 효과를 본다면 매우 남는 장사가 아닌가?”

 

골프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골프는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다. 푸른 하늘 아래 녹색 초원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운동하는 신선놀음이 골프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비용이 들지만 재미있는 운동이 골프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단 골프에 입문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중국의 부자들이 골프를 치게 되면서 만들어진 신조어가 “골프는 녹색마약”이라는 말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적절한 표현이다.

 

골프가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두 가지 재미있는 표현을 소개한다.

“신이 만든 가장 재미있는 운동은 섹스, 인간이 만든 가장 재미있는 운동은 골프다.”

“누워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건 섹스, 앉아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건 마작, 서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건 골프다.”

 

조금 걷다 보니 왼편에 미다리가 나타나고 곧이어서 섶다리 마을이 나타난다. 오른쪽에 판운휴게소가 있고, 왼편 강변에 섶다리 공원이 있다. 커다란 안내판에 섶다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섶다리(섶+다리)

섶나무를 엮어서 만들어 놓은 다리입니다. 1428년(세종10년)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의 보광산에 위치한 청송 심씨 시조 묘에 사계절 전사일에 용전천 강물이 불으면 유사관원과 자손들이 건너지 못할까 걱정해 섶나무(잎나무와 풋나무 등)를 엮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시초가 되었으며, 강물의 수심이 얕아지는 10월 경에 섶다리를 설치하여 우수기 때 철거됩니다. ‘섶나무’는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땔감이 되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사전답사차 여기에 왔을 때는 섶다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이날 보니 사라지고 없다! 내가 잘못 보았나? 자세히 강가를 살펴보니 섶다리가 놓였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섶다리 지점에서 상류 쪽으로 바라본 평창강 경치가 아름다웠다. 먼 산의 능선들이 뚜렷하고 가까운 산에는 녹음이 우거져있다. 강폭이 넓어져서 평창강이 넉넉하게 보인다. 섶다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1시 점심을 예약해 두어서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 일정은 매우 여유가 있다. 공원에는 마침 흔들그네가 있어서 동심으로 돌아가 한번 타 보았다. 우리는 섶다리 공원에서 한가하게 쉬었다.

 

 

섶다리 마을울 출발하여 판운2교를 지나 판운식당에 1시에 도착하였다. 매운탕 소(小)자를 2개 예약해 두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 식탁에 앉지 못하고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떨어져 앉았다. 빠가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창밖으로 평창강과 건너편 넓은 들, 그리고 먼 산이 보이는 좋은 식당이었다.

 

 

내가 주인장에게 섶다리에 관해 물어보니 3일 전에 철거했단다. 이제 장마철이 시작하고,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떠내려가기 때문에 매년 이맘때에는 철거한단다. 섶다리는 10월에 다시 만든다고 한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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