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무대 “휘몰이잡가 발표회”

2023.02.14 11:45:11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1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백인영 명인의 10주기 추모음악회 이야기를 하였다. 그의 제자들과 신영희, 김청만, 이광수, 원장현, 김영길 등이 함께 했는데, 이광수의 비나리로 시작으로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 산조>, <백인영류 아쟁산조 합주>, <가시고기>, <시나위와 씻김굿> 등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 유대봉 산조는 가락의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화려하고 즉흥적인 면과 변조에 따라 다채롭게 진행하는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 시나위와 씻김굿에서는 신영희 명창의 창으로 백인영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고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해 12월 30일에 발표된 휘몰이잡가 발표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한 해를 보내면서 경서도지방의 잡가(雜歌)를 한자리에서 들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에겐 큰 선물이라 할 것이다.

 

그것도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박상옥 명창과 그에게 배움을 청하고, 열심히 단련한 후배와 제자들이 한자리에서 수준 높은 서울, 경기지방의 잡가를 부르는 것이다.

 

특히 박상옥 명창은 <변강쇠타령>과 각 지방의 특징있는 민요들을 연속적으로 불러 주었는데, 율동을 곁들인 그의 멋들어진 가락들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는 터여서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많은 청중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박 명창 외에도 이날 밤 무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서울시 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휘몰이잡가>의 이수자들이어서 충분히 그 기대치를 높여 주었다.

 

 

 

<휘몰이잡가>란 어떤 노래인가?

 

휘몰이는 빠르게 엮어나간다는 뜻이고, 잡가(雜歌)란 정가(正歌)에 비해 표현법이 점잖지 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빠르게 몰아가는 재미있는 노래이고 그래서 널리 확산해 온 노래임은 분명하다.

 

원래 <잡가>의 뜻은‘잡스런 노래’, ‘순수하지 않고 무엇인가 섞여있는 노래’라는 의미인데, 이러한 명칭의 배경에는 과거 전통사회에서 상류층 인사들이 즐겨 부르던 정가(正歌)에 비해, 자신들의 노래를 낮게 생각하던 관습을 버리지 못한 이유가 크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펴낸 《신구잡가(新舊雜歌》를 비롯한 다양한 이름의 잡가집에는 당시에 인기를 끌던 여러 악곡의 이름, 곧 당시의 대중적인 노래를 알게 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경서도 잡가뿐 아니라, 정가에서부터 민속가의 대부분을 망라하고 있어서 당시 대중들이 즐겨 부르며 유행시켰던 노래의 총괄 명칭이 바로 <잡가>였음을 알게 해주고 있다.

 

잡가를 잘 부르던 경기명창 박춘재(1881년생)가 어려서부터 휘몰이잡가를 들으며 자랐다고 말한 점이나, 1907년 최초로 휘몰이잡가의 음반이 출시되었다는 점, 특히 1900년대 초, 잡가집에 <바위타령>, <맹꽁이타령>, <곰보타령> 등이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이 이 당시 휘몰이잡가도 많은 대중이 즐겨 했다는 점을 알게 한다.

 

 

휘몰이잡가 가운데 어떤 것은 옛 장형시조 가운데서, 해학(諧謔)이 담긴 내용도 있으며, 원래의 사설에 군말이 들어가거나 창법을 달리하는 흔적도 보여서 엮음이나 사설시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도 있다. 이현익(李鉉翼)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바위타령>, <비단타령>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비단타령>은 마치 경을 읽는 듯한 독경(讀經)방식으로 노래하며, 사설 내용이 어렵고 장단이 2분박과 3분박으로 부분, 부분 변화하는 등 어려운 노래이다.

 

여하튼 가객들은 하루의 힘든 일을 끝내고 공청(公廳)에 모여서는 먼저 가사와 시조창과 같은 느린 속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그다음엔 긴잡가나 산타령과 같은 점차 흥겹고 경쾌한 소리로 진행해 나가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무렵에는 대개 이 <휘몰이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서울, 경기지방의 잡가(雜歌)는 느리고 길게 부르는 긴잡가와 빠르게 엮어 부르는 휘몰이잡가가 한 짝을 이루고 있다. 원래 우리 음악의 일반적 형식에는 만(慢)-중(中)-삭(數)이 대표적이다. 저 유명한 전통가곡의 ‘만, 중, 삭’이 그러하고, 기악곡의 영산회상도 상령산-중령산-세령산으로 점차 빨라지는 형태가 그러하며, 산조(散調)음악의 <진양>-<중몰이>-<잦은몰이>형식도 그러하다. 어쨌든 경서도 민요는 대부분이 <느리게>에서 <빠르게>로 진행되는 형식이다.

 

 

이번 공연에서 휘몰이잡가에 포함되는 <바위타령>을 포함하여 <만학천봉>, <곰보타령>,<병정타령>, <기생타령>, <육칠월>, <생매잡아>, <맹꽁이타령>, <한잔 부어라>, <비단타령> 등등 10여 곡은 출연진들이 교차 출연하여 특징있는 무대로 객석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밖에도 <경기 산타령>을 율동을 곁들여 신명나게 합창하는가 하면, 배치기, 뱃노래, 자진뱃노래 등, 흥겨운 민요도 합창해 주어 가는 해를 잊게 해주었다. 이처럼 새해를 맞기 직전, 즐겁게 감상한 <휘몰이잡가>와 우리민요가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목을 유지해 오고 있으나, 아직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바라건대, 이날 밤, 박상옥 명창과 그 제자들이 마련한 이 소리판이 기폭제가 되어 휘몰이잡가 제2, 제3의 전성시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2년을 보내며 마련된 이 소리판이 이 해의 마지막 선물이어서 그저 고마울 뿐이며, 내년에도 휘몰이잡가 전승자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이 종목을 더더욱 열심히 지켜주기 바란다.(2022년 12월 30)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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