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소리’와 ‘이야기’

2024.06.21 10:58:26

[우리말은 서럽다 37]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서로 얽히지 않고 저마다 또렷한 뜻을 지닌 낱말들이다.

 

“번개 치면 우렛소리 들리게 마련 아닌가?”

“밤도 길고 심심한데 옛이야기나 한 자리씩 하면 어때?”

 

이렇게 쓸 때는 ‘소리’와 ‘이야기’가 서로 얽히거나 헷갈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데서는 ‘소리’나 ‘이야기’가 모두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면서 서로 넘나든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디까?”

 

그러나 서로 넘나드는 것이 바르고 마땅할까?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뜻이 서로 다른 만큼, 넘나들 적에도 뜻의 속살은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이 뚜렷하지 않고 아슬아슬하지만, 아슬아슬한 얽힘을 제대로 가려서 쓸 수 있어야 참으로 우리말을 아는 것이다. 국어사전들은 ‘말’과 비슷한 뜻의 ‘소리’와 ‘이야기’를 어떻게 뜻 가린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 소리 : 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 이야기 : ①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내 이야기 들어 보소. ②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한 이런 말 저런 말. ¶이야기가 오고 가다.

 

2) · 소리 : 말이나 이야기. ¶옳은 소리. 실없는 소리.

   · 이야기 : ① 겪은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내 이야기를 듣고 좋은 의견을 주시오. ② 말하는 것. ¶다정하게 이야기하다.

 

3) · 소리 : 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이야기 : ①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 ¶혼사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② 자신이 경험한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이야기를 털어놓다.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시오.

 

보다시피 세 국어사전이 모두 ‘소리’는 ‘말’과 같다 하고, ‘이야기’도 ‘말’이라 했다. 서로 넘나들 수밖에 없다는 풀이고, 다름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소리’와 ‘이야기’가 서로 넘나드는 까닭은 이들이 모두 ‘말’이란 낱말의 뜻 안에 싸잡혀 있을 때다. 그러니까 ‘말’이라 할 것을 어떨 적에는 ‘소리’라 하고, 어떨 적에는 ‘이야기’라 하는데,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어떨 적’이다.

 

㉮ 무슨 소리들로 그렇게 시끄럽냐?

㉯ 무슨 이야기들로 그렇게 시끄럽냐?

 

 

바깥에 나갔던 어른이 집에 들어오다가 여럿이 큰 소리로 다투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라 하자. 여기서 어느 쪽이 잘 어울리는가? 아무래도 ㉮가 아닌가?

 

㉰ 무슨 소리들로 그렇게 웃음꽃이 피었나?

㉱ 무슨 이야기들로 그렇게 웃음꽃이 피었나?

 

이것도 바깥에 나갔던 어른이 집에 들어오다가 여럿이 모여 떠들며 웃고 있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라 하자. 여기서는 어느 쪽이 잘 어울리는가? 아무래도 ㉱가 아닌가?

 

그러니까 ‘소리’와 ‘이야기’가 서로 넘나들지만, 환경에 따라 잘 어울리기도 하고 덜 어울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끄럽냐?”와 “그렇게 웃음꽃이 피었나?” 하는 환경에 따라서 어우러지는 뜨레(기준)가 달라지는 것이다. ‘시끄럽다’와 같이 좋지 않다는 뜻에는 ‘소리’가 잘 어울리고, ‘웃음꽃이 피었다’와 같이 좋다는 뜻에는 ‘이야기’가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소리’와 ‘이야기’가 어울려 쓰이는 ‘어떨 적’이다. ‘말’이라 할 것이지만 좋은 뜻으로는 ‘이야기’라 하고, 나쁜 뜻으로는 ‘소리’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좋은 뜻에 잘 어우러지는 까닭은 그것이 가장 값진 말이기 때문이다. 본디 ‘이야기’란 줄거리가 있는 말이다. “저녁 먹읍시다.” 하면 줄거리가 없어서 여느 말이다. 말 그대로 여느 말은 의사소통이라는 노릇을 다하는 말의 기본이다.

 

그러나 “배고프니까 저녁 먹읍시다.” 하면 이야기로 기울어지는 말이고, “점심을 굶어서 배고프니까 어서 저녁 먹읍시다.” 하면 이야기로 넘어가는 말이고, “이라크 파병을 놓고 김 실장과 다투느라 점심을 굶어서 배고프니까 어서 저녁 먹읍시다.” 하면 짧은 하나의 월(문장)이지만 줄거리를 갖춘 이야기다. 줄거리를 제대로 갖추어 기쁨과 즐거움을 솟아나게 하는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고, 그것은 말꽃이 되는 것이다.

 

말이지만 말로서 대우받지 못하면 ‘소리’로 떨어진다. 아무리 떠들어도 전혀 먹혀들지 않고 팽개쳐지는 ‘헛소리’, 생각도 없이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는 ‘벌소리’, 본디는 옳고 마땅하였으나 때와 곳을 가리지 못하고 지나쳐서 쓸모가 없어진 ‘잔소리’, 말의 뜻에 바람이 들어서 소리만 크게 떵떵거리는 ‘큰소리’, 듣는 사람은 없이 하는 사람이 혼자 내뱉고 마는 ‘군소리’, 듣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덜된 제 짐작으로만 떠드는 ‘별소리’는 모두 하나같이 말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소리들이다.

 

소리로 떨어지기 아까운 ‘쓴소리’도 마침내는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려 열에 아홉은 쓸모없이 버려지는 말이고, 듣는 사람의 귀에는 솔깃하고 입맛에는 달지만, 듣는 이에게나 하는 이에게나 사람됨을 무너뜨리는 ‘단소리’도 말할 나위 없이 쓸모없는 말이다.

 

 

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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