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국적 문제-한자도 우리 것인가?

  • 등록 2019.02.07 1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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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것만이 아닌 라틴 알파벳과 한자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문화신문=김영환 교수]  인터넷에 한자도 우리 것이란 주장이 수없이 떠다닌다. 특히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 누리집에서 이 주장을 앞세우고 있다. 이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보기로 하자.

 

1.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갑골문을 썼다는 은나라가 동이족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알려진 갑골문은 분명히 중국어 어순을 보여준다.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다. 따라서 이 주장은 진지한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조선에서 만든 글자가 있기는 하다. ‘沓, 乭’ 같은 글자가 있다. 전체 한자 수만 자 가운데 몇 자 뿐이다.

 

2. 오래 전부터 써 왔기에 우리 것과 다름없이 동화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훈독 현상이 광범위한 일본의 경우에는 이 말이 적절해 보인다. 한문은 일본인에게 일본어가 된다. 조선은 일본과 경우가 매우 다르다. 한자 한문이 우리에게 동화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자한문에 동화되어 주체성을 잃고 있다. 한자 문화의 내용인 유교도 우리가 오랑캐를 면하려면 고유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부채질해 왔다. 한글이 나올 때 우리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보편적이이라 여기던 중국 문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중국과 다른 우리 문화의 독자성이 설 자리가 좁았기 때문이다.

 

한자가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또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며 한글 전용이 배타적이라고 여기기 쉽다. 한문학이 한글문학에 속하느냐는 국문학계의 오랜 시빗거리에 대한 대답도 분명해졌다. 안타깝지만 모두 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 (《근대일본의 국문학 사상》 사사누마 도시아키 지음, 서동주 옮김, 어문학사. 2014. 57쪽)

 

 

3. 한자의 국적을 따지면 편협한 태도인가?

 

-라틴 알파벳은 세계 여러 나라에 두루 쓰인다. 굳이 로마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자도 로마자처럼 국제적일 수 있는가? 그랬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알파벳 낱자는 지중해를 배타고 다니던 상업 민족 페니키아인의 발명품이다. 여러 민족을 넘나들며 말을 적을 수 있기 위하여 표음문자를 처음으로 고안해내야 했다. 이 문자는 언어를 그 가장 작은 단위로 분석하여(음소) 이를 나타내는 기호를 고안하여 가능해졌다.

 

언어를 음소로 나누었기 때문에 이 차원에서 의미는 사라진다. 의미는 이 원소들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함으로써 나타난다. 그러나 한자는 소리와 뜻과 꼴(모양)을 갖춘다. 단순한 기본 글자를 결합하여(형성, 회의) 복잡한 새 글자를 불려나간다. 알파벳과 반대 방향으로 진화했다. 한자가 국경을 넘으려면 꼴은 그대로 둔 채, 의미를 빼고 소리로만 쓰든가, 소리는 빼고 의미로만 쓰든가 해야 한다. 그것은 맥락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고립어인 중국어를 적던 문자인 한자는 교착어인 우리말을 적는 데 불편했다. 한자는 쉽게 국제화될 수 없었다. 중국 주변의 여러 민족들(티벳, 거란 여진, 일본, 몽골)이 중국과 다른 새로운 문자를 고안해 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유럽에서는 라틴 알파벳을 각 민족들의 고유어를 적는 데 그대로 이용하면 되었다. 새 문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한문은 중국어와 우리말 사이의 차이 때문에 훈독하지 않으면 중국어에 머문다. 조선에서는 한문 훈독 전통이 사라졌다. 이것은 문자와 정보를 지배계급이 독점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그 결과는 대다수 인민의 우중화였다. 중세 교회가 라틴어만 쓰기를 고집했던 것과 같은 까닭이다. 한자 한문의 조선식 운용법에는 주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한자는 우리 문화에 너무 오랫동안 큰 해독을 끼쳤다.

 

4. 한자가 중국 것이란 사실은 우리가 한자를 버려야 힐 합리적 이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중적 호소력이 크다. 그보다는 한자가 지배 계급의 특권을 유지해 주며 군림해 온 문자였다는 게 더 큰 이유다. 한자가 남의 것이라도 한글보다 대중적이고 쓸모 있다면 써야 한다.

 

요약해 보자.

1. 한자는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 것이 아니다.

2. 한자도 국경을 넘어갈 수는 있지만 조선의 한자 운용 방식은 이런 경우가 아니다.

3. 라틴 알파벳과 달리 한자의 국적 문제를 따진다고 편협하다고 할 수는 없다.

4. 한자의 국적이 중국이란 사실은 한자를 폐지해야 할 합리적 근거는 아니다.

 

김영환 교수 kyh@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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