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지난 2005년 문화재청이 경복궁 복원 계획을 내놓으면서 박정희가 쓴 한글 광화문 현판을 정조의 글씨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2012년 현판 글씨를 한자로 하기로 하였지만, 다시 현판의 바탕색과 글자색이 잘못되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8월 문화재위원회에서 광화문 현판을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에 새기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대로 끝내 묻히고 마는가. 그렇지만 더 따져볼 문제가 남아 있다.
한글은 우선 광화문 광장의 민주주의 정신과 잘 어울린다. 한글은 상하귀천이 모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만든 민주주의의 문자다. 일부 계급만 글자와 정보를 독점하던 봉건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또 한글은 작은 중화를 벗어난 자주 문화를 상징한다. 오늘날은 누구나 한글의 빼어남을 예찬하건만 유학자에겐 새로운 글자는 모화에 어긋나며 오랑캐가 되기를 스스로 바라는 것이었다. 한글을 부려 쓰지 않고 극심한 한문 숭상으로 수백 년을 흘려보냈다.
큰 문명권 주변의 겨레가 중심과 다른 자국 문명을 스스로 낮추고 깔보는 현상도 흔히 발견된다. 신성 로마 황제 카를로스 5세는 자신이 다스리지도 못한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언어는 예찬하면서 자신이 다스리는 독일의 언어를 ‘말이나 군인에게 명령할 때나’ 쓰는 말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렸다.
‘문명어’, ‘학문어’인 라틴어와 매우 닮은 언어들에 비하면 독일어는 라틴어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야만어’로 보였다. 우리 역사에서 거의 모든 지식인이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어디 중국을 으뜸으로 생각했던 실학파의 선구자 박제가뿐이겠는가. 우리에게 문제는 이런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너무 늦게 또 너무 약하게 일어난 데 있었다. 우리에겐 단테나 루터가 없었다.
한글 현판을 거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원형 복원’ 문제를 생각해 보자. 광화문 현판의 ‘원형’이 하나뿐인가? 세종 때 ‘원형’은 사라지고 없다.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도 세종 때 ’원형‘을 모르고 썼고 박정희도 세종이나 고종 때의 ’원형‘을 모르고 현판 글씨를 썼다. 문화재나 문화재의 원형이란 기본적으로 시간이 흐른 후대에 구성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원형 개념에 걸맞은 현판은 박정희의 한글 현판이다.
임태영의 ’원형‘은 문화재로서 갖추어야 가져야 할 현판 재료의 연속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문화재를 닮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재료에 역사적 시간의 자국이 묻지 않은 한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 복제 시대에 문화재를 흉내내는 복제품 만들기는 점점 더 쉬워지는 경향이 있다. 2008년에 숭례문을 태운 범인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했다. 문화재 재료의 역사적 연속성을 잊어버린 통속적 문화재 의식의 표현이었다. 본디 모습을 되찾았다는 숭례문도, 적어도 지금으로선, 문화재가 아닌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재가 아니기에 국보 1호도 당연히 아니다. 진정한 복원은 해체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되돌아와 다시 선 경천사 10층 석탑이나 사라진 첫 두 장을 더해 기운 《훈민정음》과 같은 경우에 한정된다. 박정희 한글 현판은 이미 50년을 넘겼고 40여 년이나 걸려 있었다는 역사성도 있다. 그렇지만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평가가 그가 쓴 광화문 한글 현판을 계속 다는 걸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을 자꾸 좇다 보면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멋대로 마름질할 가능성이 커진다.
박정희가 쓴 한글 현판을 달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아예 원형 복원과 거리가 먼 광화문 한자 현판을 버리고 광화문 광장의 시대정신에 맞게 훈민정음체로 바꾸는 게 더 어울린다고 본다.
“한글 현판은 문화재 복원 정신과 맞지 않는다”라고 말하기 전에 ’문화재 복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앞서야 한다.
한자는 사대모화의 상징이었다. 문화재 위원회는 “이미 광화문 현판은 한자로 제작 완료했다”라면서 “적당한 전통 안료를 정해 칠하는 단계만 남았다”라고 밝혔다. 반론이 있더라도 곧 한자 현판을 내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복원’되었다는 현판이 복제품이라는 주장에 대해 먼저 충분히 해명해야 한다. 반대 여론에 귀를 닫고 남은 절차를 강행한다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