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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실종신고서를 내려는데

왜 우리에게는 흰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일까?
[솔바람과 송순주 3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상하다.

 

24절기로 보면 양력으로 분명히 지난해 12월에 소설 대설 지났고 올해 들어서는 소한 대한이 다 지났는데 겨울의 두 단골손님이 영 오지를 않는다. 하나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추위이다. 눈은커녕 대한을 지나면서 비가 내린다. 그래서 이 두 손님에 대한 실종신고서를 작성하려 한다. 그런데 이 신고서는 어디다 내야 하는가?​

 

눈이 오지 않으면 청소부들이 편할 것이요, 추위가 오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추위에 대한 비용지출이 줄어들어 편하고 좋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우리 사회라는 것을 어느 부분만 가지고 따지기보다는 보다 큰 전체를 봐야한다면 겨울은 겨울다워야 사회 전체가 그에 맞게 돌아간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고 보면 겨울이 겨울 다우려면 눈이 오고 추위가 봐야 하는데 그 두 손님이 몇 달째 실종인 것이다.​

 

눈이 오지 않으니 눈에 관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도 빛을 잃는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재상 사안(謝安)의 조카딸에 사도온(謝道韞)이 있었다. 사도온(謝道韞)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움을 좋아했는데 특히 문장에 능했다고 한다. 사도온이 14살 되던 해 겨울, 밤사이 한바탕 서설(瑞雪)이 내렸다. 때마침 사안이 일가친척들과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붉은 아침 햇살이 떠오르자 대지는 온통 흰 눈으로 뒤덮였고 햇살에 반사된 눈은 더욱 아름다웠다.

 

사안은 문득 아들, 조카 등 집안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아름다운 눈을 소재로 아이들의 재주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안은 먼저 “대설분분하소사(大雪紛紛何所似)?―큰 눈이 어지럽게 날리는 것이 무엇과 흡사한가?”라는 구절을 던지고 그에 대해 답을 지어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조카인 사랑(謝朗)이 먼저 대답을 했다.

“살염공중차가사(撒鹽空中差可似)―공중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두 그럴듯하게 여겼지만, 사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눈을 소금에 비유하는 것은 그리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구나.”​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떤 대구를 지을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사도온이 나서며 대답했다.

“미약류서인풍기(未若柳絮因風起)--버들개지가 바람에 일어나는 것만 못합니다.”​

 

류서(柳絮), 곧 버드나무에서 날리는 솜털이 바람을 타고 일어나는 것 같아서, 소금보다는 그 말이 더 적합하다는 뜻이다.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고 사안도 크게 기뻐하며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눈이 내리는 광경을 어떻게 묘사,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니 눈이 공중에서 내리지도 않는 요즈음 이런 문학적인 해학도 존재할 수가 없겠다. 예전에 우리는 눈이 오면 "하늘에 흰 눈으로 된 막을 걸어놓은 것 같다."던가 "선녀가 옥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던가 "달에 있는 계수나무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 같다."던가 "나비들이 날아올라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등등의 표현을 썼지만 그런 표현이 다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올겨울 들어 서울 쪽에서 우리는 눈다운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눈 내리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것 같다.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뿐만이 아닐 것이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수필가 김진섭 님은 그의 유명한 수필 「백설부」에서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질일 때, 우리는 어찌 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에 온화하게 된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目禮)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눈 오는 날의 정경을 묘사한다.​

 

왜 사람들은 눈 오는 것을 좋아할까? 내 생각에 그것은 눈이 곧 세상을 깨끗하게 덮어주고 씻어주는 청경제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게 해준다. 말하자면 그것은 세상에 대해 이때쯤 마음을 씻으라는 명령이 아닐까? 하얗고 깨끗한 눈을 보며 마음을 정화하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씻어서 하얗게 만들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설(雪)이라는 한자의 뜻을 보면 눈, 흰색 등의 뜻 말고도 '고결하다', '씻다' 등의 뜻도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설원(雪冤, 원통함을 풀어 없앰), 설욕(雪辱, 지난번 패배의 부끄러움을 씻고 명예를 되찾음), 설치(雪恥, 부끄러움을 씻음), 설한(雪恨, 원한을 씻음) 등의 말들이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눈은 곧 스스로 하얗게 된다는 뜻도 있다고 하겠다.

 

 

이 겨울, 한 해를 시작하는 때에 내가 밟는 발자국, 내가 걷는 길이 올바른 길인가, 내가 한 말이 혹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진정 모든 이들에게도 흰 눈처럼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인지 되돌아보고 거기에서 스스로 정화하라는 명령이 아니겠는가?

 

그런 역할은 추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추위가 오면 몸이 움츠러들면서 머리도 혈관이 수축되어 피돌기가 더 빨라지고 머리의 신경조직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더 노력한다.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눈이나 추위는 우리들의 몸과 정신과 마음을 재시동(리셋, reset)해서 새로 출발하게 하는 '역사적인 책무'를 띄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두 가지가 오지 않으니 우리 사회 구석구석이 정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더럽고 썪은 것들이 그대로 나뒹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의 문제는 모두가 도덕적인 가치판단이나 자기반성, 자기 정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서 비롯된 이러한 현상으로 사회의 가치기준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무엇이든 남에게 빼앗아오려고만 하고, 어떤 형식으로건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보기를 기대하는 그런 심리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지적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에 들어서도 더욱 심화하기만 할 뿐 개선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나 강추위와는 당연히 상관이 없겠지만 하도 답답하니 하늘에 핑계를 대고 하늘에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왜 우리에게는 흰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일까? 왜 겨울은 겨울 같지 않고 봄인지 가을인지 모르는 기온현상으로 해서 뭐든지 적당히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일까? 벌써 입춘이 오니 겨울이 다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텅빈 하늘을 향해 공연히 화풀이를 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에게는 이런 시가 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나한테 퍼부었네

검은 소나무 가지에서

눈 한 바가지를 말이야​

 

문득 내 마음도

기분도 바뀌고

온종일 하던 후회

조금 풀렸다네

 

                       - 로버트 프로스트, <눈 한바가지(Dust of Snow)>

그런 프로스트처럼 마음의 멍에, 후회, 걱정을 풀 눈 한 바가지, 그리고 나무를 흔들어 줄 까마귀 한 마리가 그리운 요즈음이다. ​

 

그러나저러나 이 겨울에 오지 않은 두 손님에 대한 실종신고서는 도대체 어디다 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