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6 (수)

  • -동두천 22.3℃
  • -강릉 22.6℃
  • 맑음서울 24.9℃
  • 맑음대전 24.0℃
  • 구름많음대구 22.8℃
  • 구름많음울산 24.2℃
  • 흐림광주 26.8℃
  • 구름많음부산 24.4℃
  • -고창 25.5℃
  • 제주 26.7℃
  • -강화 23.4℃
  • -보은 21.6℃
  • -금산 21.4℃
  • -강진군 ℃
  • -경주시 23.3℃
  • -거제 25.1℃

항일독립운동

전체기사 보기


한국애국부인회 등 중국에서 대활약한 조용제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누이동생으로 이 가문은 열두분의 독립운동가를 냈다

[신한국문화신문= 이윤옥기자] 여성독립운동가 조용제 (趙鏞濟, 1898. 9.14~1948. 3.10) 애국지사는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를 처음 지은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누이동생이다. 조용제 지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공헌을 한 집안 출신으로 무려 12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조용제 지사는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아버지 조정규, 어머니 박필양의 6남 1녀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났다.아버지 조정규 선생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성룡의 외아들로 학덕을 겸비한 함안 조 씨 가문의 선비였다. 함안 조씨 시조 조정(趙鼎)은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통일에 큰 공을 세운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다. 조용제 지사의 오라버니 조소앙은 일본유학을 마치고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오라버니의 영향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조용제 지사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오라버니 조소앙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민족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정당으로 결성 이후 1935년 9월, 재건과 통합(1940. 5)의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탄탄한

중국인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 '송정헌 지사'

김구 주석 경호실장인 유평파 선생의 부인 송정헌 지사

[신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송정헌 애국지사(1919~2010)는 중국인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1990년 대한민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을 받은 분이다. 송정헌 지사는 중국 항주에서 태어나 1937년 강서성 노산구강 폐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할 때 훗날 남편이 되는 유평파 지사의 형 유진동 선생을 만났다. 중국 절강성 항주(浙江省 杭州)는 아름다운 서호를 끼고 있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소주(苏州)와 더불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중국인들은 ‘소주에서 태어나 한주에서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살기 좋은 곳이며 소동파와 같은 대시인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던 곳이다. 송정헌 지사가 평생의 반려로 삼은 한국인 독립운동가 유평파 지사를 만난 것은 그의 형 유진동 선생을 만난 인연으로 이어진다. 유진동 선생은 임시정부 백범 김구 주석의 주치의로 1928년 중국 상해 동제(同濟)의과대학에 다닐 때부터 한인학우회를 결성, 서무위원으로 활동하며 김구 주석을 도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송정헌 지사와의 인연은 송 지사가 근무하던 병원장으로 유진동 선생이 부임하면서 동생인 유평파 지사를 소개하여 송정헌, 유평파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언론인으로 중국내 항일여론을 쥐고 흔든 신언준 선생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언준 (1904~1938) 선생은 평남 평원(平原) 사람으로 1923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주영문전수학교(杭州英文專修學校)·영송국립정치대학(英淞國立政治大學) 법률과 및 동영대학(東英大學) 법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상해청년동맹회(上海靑年同盟會)를 발기하고, 상해(上海) 한인학우회(韓人學友會)의 집행위원과 동 수보위원(修補委員)으로 활동하면서 민족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27년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요인인 안창호(安昌浩)가 중국의 각지에서 조선 독립을 호소할 때 이를 보좌하여 교섭 및 서무와 중국어·영어의 통역을 담당하였다. 흥사단(興士團)의 간부로서 독립운동에 관계하는 문서작성을 담당하는 한편, 흥사단 제17차 원동대회(遠東大會) (1931. 1. 7)에서는 연사로 강연하였고, 동년 6월 7일 여운형(呂運亨)이 단장이었던 상해교민단의사회(上海僑民團議事會)에서 인성학교(仁成學校)의 학감으로 당선되어 독립운동가들의 자녀교육을 맡았다. 1929년 1월 1일 이래로 동아일보에 재직중 상해와 남경 특파원으로 뽑혀 프랑스 조계내에 거주하면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조국독립을 위한 활동상황과 그 밖에

나의 정신적 스승! 항일혁명 시인 이육사

[100년 편지 265] -하성환-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송상도(宋相燾)의 《기려수필(騎驢隨筆)》에는 망국의 순간! 자결한 우국지사들이 1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벼슬한 선비로서 치욕과 통분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지요. 나라가 망하는 순간! 벼슬 한 번 하지 않고 글공부에만 매달린 전라도 산골의 매천 선생도 치욕과 통분 끝에 자결합니다. 절명시(絶命詩)와 함께 자제들을 모아 놓고 매천 황현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셨지요. 조선 왕조가 선비의 나라인데 선비를 길러낸 지 5백년 나라가 망하는 순간 선비 한 명도 죽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이육사 당신의 친척 이만도, 이중직 등 안동의 선비들도 나라가 망하는 때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분들은 당신의 할아버지 이중직과 함께 개화기 계몽운동을 펼쳤던 안동의 선각자들이셨지요. 당신은 6살 때 할아버지 이중직에게 소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열두 살 즈음엔 새벽 1시가 되도록 중용, 대학을 읽으며 유교의 전통규범을 배웠습니다. 당신은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자 안동 선비 마을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지요. 엄격한 선비정신이 인격 속에 내면화된 모습은 당신이 쓴 수필 《계절의 오행》 속에 이런 구절로 나

김구 주석 편지를 받은 하와이 박신애 애국지사

박신애 지사는 김구 자서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점을 들라하면 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부모님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하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 독립을 실천했다는 사실은 자손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박신애 애국지사의 따님인 에스더 천 씨는 2015년 항일영상역사재단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로 건너가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박신애(1889~1979) 지사는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당시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박신애 지사를 비롯한 여성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준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고마움을 백범 김구는 그의 자서전에 잊지 않고 그 이름 석 자를 남겼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사진신부 심영신, 하와이로 건너가 여성독립운동가 되다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기자] “사방을 둘러보아도 (임시)정부의 사업 발전은 고사하고 이름이라도 보전할 길이 막연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가 해외에 있는 만큼 해외 동포들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318쪽》 백범 김구 선생이 꾸려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세 들어 살던 집세가 밀리기 시작하여 조국 광복의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복을 이루고자 큰뜻을 품고 세운 임시정부의 활동은커녕 이제 그 이름조차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은 미주, 하와이,멕시코, 쿠바 등에 사는 동포들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하와이의 여성독립운동가 심영신 지사와 박신애 지사는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그 이름이 뚜렷이 남아있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쓴 편지)이 진실성이 있는데서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이의 안창호 (여기 안창호((安昌鎬)는 도산 안창호(安昌浩)와는 다른 인물로 하와이 국민회 계통 인물이다.), 가와이, 현순, 김상호, 이홍기, 임성우, 박종수, 문인화, 조병요, 김현구, 안원규, 황인환, 김윤배, 박신애, 심영신 등 제씨가 나와

힘들게 돈 벌어 독립운동자금 댔던 사탕수수밭 마을을 가다

하와이 와이파후플랜테이션 빌리지 내 한국자료관 일본어 안내판

[신한국문화신문=하와이 이윤옥 기자] 와이파후 사탕수수밭에서 - 이 윤 옥 오하우섬 와이파후 사탕수수 공장 굴뚝 우뚝 솟은 곳 아래 옹기종기 모여 둥지 튼 조선인들 그리운 고향 떠나 올 때 고이 간직한 흑백사진 철지난 영화 포스터처럼 걸려있는 좁은 방마다 물씬 묻어나는 고향의 정경 빼앗긴 나라 소식에 울밑에 봉선화 심고 초여름이면 손톱에 붉은 물들이듯 끓는 피 가슴에 넘치던 처녀들 뙤약볕 사탕수수밭 중노동에 시달려 받은 돈 독립자금에 선뜻 내어 나라 살린 그 마음 임들은 비록 갔지만 판잣집 울안 붉은 봉선화 꽃 오늘도 붉게 피어 임들의 뜨거운 피 전하고 있네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Hawaii's Plantaion Village)는 한국, 중국, 하와이, 일본, 필리핀, 오키나와, 포르투갈, 푸에르토리칸 8개 소수민족의 이민 선조들의 삶을 한 곳에 엿볼 수 있는 민속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각국의 노동이민자들의 집 한 채씩을 지어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 민속자료관 같은 곳이다.19일(현지시각) 오후 2시 플랜테이션 빌리지를 찾았을 때는 거의 찾는 이가 없이 몇몇 관리인들이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