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투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성 소피아성당 (지금은 성당이 아닌 이슬람 사원으로 터키어 Ayasofya, 영어로는 Hagia Sophia, 한국인들은 아야 소피아, 성 소피아성당으로 부름)으로 그리스에서 유래한 '성스러운 지혜(Holy Wisdom)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양한 이름 곧,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자미(모스크), 성 소피아성당(아래, 성 소피아성당)으로 불릴 만큼 이 성당의 역사는 기구(?)하다. 건립된 지 1,5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건축물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 성 소피아성당을 건립한 사람은 서기 537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로 처음에는 정교회 성당으로 완공되었으며 이후 약 900년 동안은 기독교 중심지 역할을 했다. 거대한 돔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이 건축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비잔틴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이후 서구 건축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정복하면서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당 시절에 없었던 외부에 네 개의 미나레트(첨탑)를 세우고 내부 벽면에 있던 성모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그제는 튀르키예 (아래, 터키) 이스탄불 시내의 로마시대에 완성한 지하물저장소(영어로 바실리카 저수조, 터키어로 예레바탄 사라이)엘 다녀왔다. 실은 전날 저녁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 긴 줄을 섰었는데 예약에 문제가 생겨서 다음날 아침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할때만 해도 내심 ‘물저장소 쯤이야 안봐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지하에 들어가보니, ‘안봤으면 후회했을뻔’ 싶었다. 이곳을 일명 지하물궁전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을 알겠다. 터키 곳곳에 지상의 궁전터에서 보았던 어마무시한 돌기둥 336개가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모습 사이로 주홍빛 조명이 비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지하물저장소가 아니라 지상의 대리석 궁전을 연상케한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2년 전쟁 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 약 1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아래, 저수조)를 건립하였다. 이 저수조 건립 이전인 3~4세기 무렵 이 자리에는 '스토아 바실리카(Stoa Basilica)'라고 불리는 거대한 광장과 건물이 있었다. 바실리카는 상업, 법률,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라오디게아(Laodicea)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는 성경의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1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는 말의 의미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바로 이러한 구절에 나오는 터키(튀르키예) 서남부 데니즐리(Denizli)주 에스키히사르 인근에 위치한 라오디게아(Laodicea) 교회(터)를 다녀왔다. 이 교회는 기독교 공인(서기 313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반포한 밀라노 칙령) 이후인 4세기 무렵에 건립되었는데 이곳은 기원전 3세기 무렵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건설된 고대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오랜 시간 역사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먼 곳에서 보면 흰눈의 언덕처럼 보이는 튀르키예 남서부 파묵칼레(Pamukkale)의 일명 ‘석회 언덕’ 위에 자리잡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온천을 통한 치유와 휴양의 성소로 사랑받은 '성스러운 도시'다. 이곳에는 거대한 원형극장과 목욕탕, 대규모 공동묘지 등의 유적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8)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고대 유적지다. 튀르키예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은 많게는 2만 명을 수용하는 압도적 규모와 정교한 대리석 부조를 자랑하는 로마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며, 도시 외곽에 조성된 네크로폴리스는 온천 치유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가 숨을 거둔 환자와 노인들의 석관과 화려한 가족 무덤이 1,200여 기가 들어선 소아시아 가장 큰 규모의 고대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걸어서 둘러보기보다는 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지금은 폐허더미지만 2천 년 전 당시 이곳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모두 갖춘 '복합유산(Mixed Herita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터키(투르키예) 안탈리아가 품은 지중해의 푸른 물빛을 가르며 전세 낸 요트(주로 개인적인 여가나 스포츠, 레저를 목적으로 하는 소형~중형 배로 소수의 인원이 배 전체를 빌려 독립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가 매끄럽게 물 위를 가른다. 지중해, 에게해 같은 낱말은 유럽인들에게는 동네 바다일 수 있으나 머나먼 동아시아인에게는 교과서에서나 들어보았음직한 아득한 바다 이름이다. 어제 그 바다 위에서 막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았다. 터키 남부의 휴양도시 안탈리아는 터키인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사랑받는 도시로 주홍빛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즐비한 지중해 해변을 끼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 경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지중해의 푸른바다를 끼고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올림포스산(터키에서는 타흐탈르산이라 부름)도 볼만한 관광코스다. 터키에 도착하여 며칠 동안 고대 역사 유적지 탐방으로 심신이 지칠 때쯤해서 찾아서인지 안탈리아는 명성처럼 안온하다. 거기에 지중해가 있고 더욱 장관인 것은 지중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올림푸스산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터키에는 '올림포스(Olympos)'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침묵의 동굴, 영원한 구원 - 수도사 계곡(Pasabag, 파샤바)에서 -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 깎아지른 절벽 바위 기둥 속에 제 몸 하나 누울 관 같은 방을 파고 거친 빵 한 조각으로 생의 불씨를 지키며 수도사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른 가죽처럼 시들어버린 육신의 옷을 벗고 썩지 않을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던 그들은 과연 그들이 꿈꾸던 신의 품에 안겼을까 화석처럼 굳어버린 침묵의 현장에서 나는 오늘, 인간의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깊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던져본다. 터키(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Central Anatolia) 고원에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곳이 카파도키아(Cappadocia)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노천 박물관 처럼 수백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쌓인 재와 용암이 비바람에 깎이며 신비로운 바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4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세워진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대상(大商)들의 교역로로 크게 번창했으며 특히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응회암(凝灰巖, Tuff - 화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데린쿠유 — 지하 횃불이 비춘 신앙의 거울 횃불을 치켜들고 굽은 등으로 파 내려간 눅눅한 침묵의 성소 거친 손끝에서 짓이겨진 돌가루는 비명 대신 삼킨 기도의 파편이었으리라 햇살 한 줌 허락되지 않는 천 길 심연 속에서 처절한 생을 이어가던 초기 신앙자들의 검은 피눈물을 더듬다가 문득, 바벨탑처럼 솟아오른 오늘날 교회당의 종소리가 허공 중에 길을 잃고 흩어지는 잔영을 본다 박해를 이겨낸 그 푸른 의지는 박제되고 스스로 판 동굴보다 더 깊은 탐욕의 수렁으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들 나는, 어두운 동굴 속을 말없이 걸으며 이름 모를 고결한 영혼의 거울 앞에 차마 고개 들지 못한 채 침묵했다. 터키(트루키예)에 있는 데린쿠유(Derinkuyu)란 어떤 곳인가! 데린쿠유는 튀르키예 중앙 아나톨리아,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척박한 대지 곧, 인류 처음으로 철기를 사용하며 오리엔트를 호령했던 고대 히타이트(Hittite, 기원전 18~12세기경)의 터전에 초기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위해 일구어낸 거대 지하 동굴(이를 지하도시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도시개념이 아님)이다. 이곳은 처음에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하고자 초기 기독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이스탄불에서 차로 40여 분 달리면 나오는 '발랏(Balat)'은 금각만((金角灣, 튀르키에말 '할리치')의 잔잔한 물결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오래된 구시가지의 낡은 건물들이 자리한 역사적인 지역이다. 이곳은 과거 유대인 집단 거주지였던 독특한 배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는 낡은 건물을 오색빛깔로 단장하여 이스탄불에서 색채감 넘치는 동네로 손꼽힌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파스텔톤 낡은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은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감성적인 카페와 고풍스러운(빈티지) 소품가게, 예술가들의 공방이 대거 들어서 도시의 예술적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이 거리를 걸으며 통영의 벽화마을 동피랑을 떠올렸다. 튀르키예의 발랏과 한국의 동피랑은 낙후된 주거 지역이 색채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예술 마을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발랏이 금각만의 해안 풍경을 배경으로 비록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역사적 건축물을 뽐낸다면, 동피랑은 강구안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기자기한 벽화마을로 서민적인 정취를 전한다. 두 곳 모두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이 특징이다. 하지만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기치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한 달여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딸아이의 삶이 깃든 미국을 거쳐, 칠레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잠시 머물고 남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서 발디비아, 푸콘, 칠로에, 파타고니아 차이텐을 여행하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와 칠레 여행을 끝맺었다. 나이 들어 별 탈 없이 귀가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시차 적응하느라 잠을 설치다 깨니 목이 칼칼하다. 칠레에서 사 온 벌꿀을 개봉해서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며 이번 여행 마무리 글을 쓰고있다. 남부 칠레의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풍미 가득한 수제치즈, 요구르트, 꿀 등이 벌써 그립다. 체리 블루베리 따위 과일과 연어 같은 해산물도 풍요로웠다. 칠레는 정말 멀고도 먼 나라다. 현지인들은 K-POP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와 드라마는 잘 알지만,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드물고 한국을 가 보기는 더욱 힘들다고 했다. 또한 남북으로 길고도 긴 나라였다. 남북으로 무려 7,000km나 길게 뻗어있는 지형의 칠레를 여행하는 동안 사계절을 모두 경험했다. 특히 푸콘에서 맞이한 여름 크리스마스트리가 이채로웠다. 여행 중 들른 어느 식당에서는 재미있는 문구를 보기도 했다. "와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멀리 아련하게 안데스산맥의 여명이 밝아오며 동쪽 하늘이 트이더니, 시끌벅적한 산티아고의 아침이 찾아왔다. 숙소 베란다 아래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모여 국기를 흔들며 외치는 소리와 지나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타국의 불안한 정국이 이 먼 땅까지 일렁이는 것이 못내 마음 쓰이면서도, 새로운 정치를 향한 그들의 집회가 아침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 길을 나서 '산타루시아언덕'으로 향하는 길. 거대한 벽화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남미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미스트랄'을 기리는 벽화다. 그녀는 시인이자 외교관이었고 무엇보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머니 같은 교사였다. 벽화 속 그녀의 눈빛에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애정과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있다. '산타루시아 '언덕은 시내 중심에 보석처럼 박힌 작고 예쁜 공원이었다. 마푸체족 전사의 조형물과 고즈넉한 성벽, 그리고 잘 가꾼 푸른 식물들 사이를 거닐며 시민들은 저마다의 휴식을 누린다. 언덕을 내려와 들른 가브리엘 미스트랄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80년 전 노벨상의 영광보다 더 깊게 뿌리내린,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무게를 실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