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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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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판나는 세상’에서 '살판'의 뜻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일 무역 분쟁으로 중국만 살판났다”, “MB정부 기간 동안 가계는 곪고 기업만 살판”, “불난 집에 도적이 살판난다.” 같은 기사 제목이 보입니다. 여기서 ‘살판’이란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살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물이 많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거듭되어 살림이 좋아지는 판국” 또는 “기를 펴고 살아나갈 수 있는 판”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시 이 말의 유래를 백과사전에서 살펴보면 “광대가 몸을 날려 넘는 땅재주”를 말하고 ‘지예(地藝)’또는‘장기(場技)’라고도 하지요. 이것은 유랑 연예집단이던 남사당패와 솟대쟁이패들이 하던 놀이종목의 한 가지입니다. 남사당패 12가지의 땅재주 가운데 제일 마지막 재주로 땅재주의 기본을 이루지요. 이 놀이의 재주는 앞곤두ㆍ뒷곤두ㆍ번개곤두ㆍ외팔곤두ㆍ앉은뱅이팔걸음ㆍ앉은뱅이모말되기ㆍ숭어뜀ㆍ살판 따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놀이는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벌이는 연예인들이‘잘하면 살판이지만 못하면 죽을판’이라고 한 데서 따온 것으로 그들 스스로 한탄하며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살판은 서양의 “아크로바틱(acrobatic)” 또는 비보이들이 추는 브레이크댄스(Break dance, B-

‘너무’라는 말, ‘예쁘다’ 앞에 쓰지 말아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답답한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건 출연자들이 “너무 예뻐요.”처럼 “너무”라는 말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말글살이의 표본이 되어야 할 아나운서도 “너무 앙증맞죠?”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라는 말을 말광(사전)에서 찾아보면 “너무 : 【어찌씨(부사)】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고 되어 있지요. 예문으로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장소가 너무 멀다.”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예쁘다, 앙증맞다’ 따위 긍정적인 말 앞에 어찌씨 “너무”를 쓰면 그 말뜻은 예쁘고 앙증맞아서 좋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너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예뻐졌다.”라고 하면 결국 “예뻐져서 안 좋다.”라는 뜻이 되어 비아냥거리는 말로 들릴 수 있지요. 물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국어를 12년 이상 배운 사람들로서 “너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일은 아닙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이경숙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미국에서 오렌지라고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어륀지

고종의 비밀도장, ‘황제어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08년 11월 한 60대 재미교포가 문화재청에 “내가 고종이 쓰던 국새를 소장하고 있다. 이를 구입하겠느냐?”라는 문의를 해왔습니다. 당시 정계옥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기존 문헌에 제작 기록이 없어 고종이 내밀하게 썼던 국새로 파악된다.”라며 사들였습니다. 이 국새는 고종황제가 친서에 썼던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 시대의 국새며,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에 유리원판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분실된 바로 그 국새였다고 합니다. 황제어새는 1905년부터 1908년까지의 외교문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618-1호 황제어새는 1903년 이후 고종황제가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황제 등에게 보낸 14통의 친서에 실제로 날인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03년 11월 이탈리아 군주에게 전쟁이 일어날 때 대한제국은 중립을 지킬 것이며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주도록 요청하는 친서와 1904~1905년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4통의 친서 그리고 1909년 헐버트 박사에게 비밀 자금 인출을 명령하는 친서에도 ‘황제어새’를 찍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새는 상서원(尙瑞院)에서 보관과 관리하게 되는데

내일은 ‘대설’, 눈이 안 오면 기설제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스물한째 절기 “대설(大雪)” 입니다. 대설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절기의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이때 눈이 그리 많이 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대설이 있는 이 무렵 음력 11월은 농부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하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봄부터 겨울까지 비가 부족하였는데, 지금은 또 대설(大雪)이 이미 지났는데도 눈이 내리지 아니하여 샘의 물줄기가 통하지 못합니다. 신이 일찍이 농사꾼에게 듣건대 ‘눈이 오면 토질의 맥이 윤택하여지고, 또 눈이 보리를 덮은 뒤에라야 보리농사가 풍년들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는 눈이 오기를 빈 일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송(宋)나라 때에도 눈을 빌었고, 또한 ‘납향(臘享,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양날) 안에 세 번 눈이 와야 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지금 눈을 빌도록 함이 어떠하리까?” 위는 《중종실록》 7년(1512) 10월 30일 기록으로 봄부터 비가 부족하고 대설이 지났는데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며 눈이 내리기를 비는

면암 선생, 단식으로 순국하지 않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생각건대, 신이 이곳으로 들어온 뒤에 한 숟가락의 쌀과 한 모금의 물도 모두 적의 손에서 나온 것이면, 설사 적이 신을 죽이지 않더라도 차마 구복(口腹, 먹고살기 위하여 음식을 섭취하는 입과 배)으로써 스스로 누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기에 마침내 음식을 물리쳐 옛사람이 스스로 죽어서 선왕에 보답한 의를 따를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신의 나이 74살이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이는 면암 최익현이 대마도 유배 당시 임병찬에게 쓰게 한 유소(儒疏, 유생들이 연명하여 올리던 상소)에 나오는 말입니다. 의병연구소장 이태룡 박사에 따르면 당시 대마도 경비대장이 실내에서는 갓을 쓸 수 없다며 강제로 갓을 벗기려 하자 김홍집내각이 내렸던 단발령(斷髮令)에도 굴복하지 않았는데 왜놈 대장의 말대로 벗을 수는 없다며 왜놈들의 온갖 곤욕을 이겨내며 면암과 임병찬 등은 단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틀 뒤 경비대장이 실내에서 갓 쓰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이에 이들은 바로 단식을 중단하였습니다. 그 뒤 면암은 1906년 12월 4일, 대마도에서 음식을 먹으면 토하는 질병으로 인해 자리에 눕게 됩니다. 이에 가족들에게 알려 조선에서 한의사들이

‘약리도’, 잉어가 물살을 거슬러 용이 된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황하(黃河) 상류의 하진(河津)을 일명 용문이라 하는데,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고기들이 오를 수가 없다. 강과 바다의 큰 고기들이 용문 아래로 수없이 모여드나 오르지 못한다. 만일 오르면 용이 된다.(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이는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에 나오는 ‘용문(龍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말에서 유래하여 ‘용문’은 과거에 급제함을 가리키게 되었고, 현대에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을 오르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화원들은 ‘용문’과 관련하여 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 곧 ‘약리도(躍鯉圖)’와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 곧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그렸고, 그런 그림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날개 없는 물고기가 그저 무작정 폭포 위로 뛰어오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약리도> 한 점이 있지요. 물론 잉어가 뛰어오르는 것을 ’회귀본능‘이라고 해버리면 단순한 과학상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용문(登龍門)‘ 같은 의미를 붙여주고 이야기를 엮으면 예술이 됩니다. 다만 요즘 한

손으로 두드리고 만지면서 만들던 메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속을 썩히는 / 저 향긋한 향 / 어머니, 아버지 가슴 속에 든 곰팡내 나는 / 퍼런 멍처럼 네모난 / 메주 한 / 덩이” 정순철 시인의 시 <메주>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24절기 가운데 ‘대설(大雪)’로 이즈음 우리 겨레는 메주 쓰기가 한창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쒀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아무리 당연한 사실을 말해도 믿을 수 없지요. 이 속담이 전해지던 우리 겨레에게 ‘콩으로 메주 쑤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 어느 집이건 논두렁에 심어두었던 콩을 갈무리하여 음력 10월부터 11월 무렵 메주를 쑵니다. ‘메주’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12세기에 펴낸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장왈밀저(醬曰蜜沮)’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메주입니다. 또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발해(渤海)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를 들고 있는데 ‘시’는 한자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배염유숙(配鹽幽菽)’, 곧 콩을 소금과 함께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 ‘메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메주 쑬 때 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