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 즈믄해를 이대로 전하여 봄 직하지 않은가 / 삼년 뒤 정월 초하룻날 밤 치지정에서 다시 펼쳐 보고서 시를 짓는다.” 이는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다시 꺼내 보고 감탄하여 지은 시입니다. 그렇게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신선들과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노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깬 뒤 너무나 생생한 장면을 잊을 수 없어 화가 안견에게 부탁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세로 38.7㎝, 가로 106.5㎝ 크기의 몽유도원도입니다. 이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있는데 텐리대학은 이 그림이 훼손될까 봐 염려된다면서 2009년 이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몽유도원도를 보고 그와 가까웠던 스물세 명의 선비들이 감상평을 써두었지요. 그 뒤 10년이 지나지 않아 안평대군은 그의 형 수양대군에 의해 강화도로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감상평을 썼던 사람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 겨레가 전통적으로 먹었던 과자를 흔히 “한과(韓菓)”라 하는데 이는 한복, 한식처럼 서양의 과자나 중국의 한과(漢菓)와 구분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원래 우리 토박이말로는 “과줄”이지요. “과줄”에는 유밀과, 약과, 정과, 다식, 숙실과 따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유과”라고도 하는 “유밀과”를 꼽아야 합니다. 유밀과는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어 반죽하여 삶아낸 것을 얇게 밀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내어 쌀 고물을 묻힌 것이지요. 유밀과는 크기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큰 것은 “산자”, 손가락 굵기는 “강정”, 팥알만 하게 썰어 말려 튀긴 뒤에 엿으로 뭉쳐 모나게 썬 것을 “빙사과(氷砂果, 賓砂果)”라고 합니다. 그 밖에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어 만드는 것으로 제사 지내는 데에 빠지지 않는 “약과”, 생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또는 열매에 꿀을 넣고 조린 “정과”, 쌀ㆍ깨ㆍ밤 등을 가루 낸 것이나 송화가루 등을 꿀로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틀인 다식판에 찍어낸 “다식(茶食)”, 밤ㆍ대추 등에 꿀을 넣고 졸이거나, 이를 삶아 으깨서 꿀ㆍ계피가루에 버무려 밤ㆍ대추모양으로 만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한 블로그에는 “국보 제83호와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것이 일본 고류지(광륭사)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이다. 두 불상은 재료가 다를 뿐 삼산관의 형태, 치마 자락의 처리, 신체 균형 등이 매우 흡사하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일본 광륭사의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쌍둥이’일 절도로 닮았다고 했지만, 이는 잘못입니다. 글쓴이는 지난 2013년 “일본 국보 1호 "미륵상" 일본인 얼굴로 성형수술”이란 제목으로 이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잡지 《역사공론》 1976년 6월호에 실린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의 <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글을 보면 “(광륭사 미륵상)의 얼굴 부분에 손대기 전 모양을 떠 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현재의 얼굴과 다르며 한국국립박물관 불상(한국 국보 제83호) 얼굴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곧, 조선풍이었던 얼굴을 명치 때 수리하면서 일본풍의 얼굴 다시 말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얼굴로 고쳐 놓아 버린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