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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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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함께 장애를 극복해야 할 ‘장애인의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00]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제38회 장애인의 날입니다. 1981년 처음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열렸고, 온나라 곳곳에서 장애인 체육대회와 기념행사를 열어 장애인이 하나 되어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정부에서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도록 함은 물론, 장애인 스스로가 재활에 대한 의욕을 드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해 편견이 남아 있고, 사회적 차별도 여전하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장애인들에 대한 시각이 지금과는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태종실록》 태종 2년(1402년) 7월 2일 기록에 보면 “죄수들을 석방하고, 저자(시장)를 옮기고, 소경들을 명통사(明通寺)에 모아 비를 빌었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명통사”란 조선 초기에 서울에 있었던 맹인들의 점술 교육기관과 집회소였던 절인데 태종 13년에는 명통사의 맹인들에게 쌀 30석을 주었고, 태종 17년에는 명통사를 개수하도록 하고 노비 10명을 주었으며, 세종 때에도 명통사 지원은 계속했지요.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점술가들 곧 김숙중, 김학루, 박종선, 지화,

우리 전통 화장실, 뒷간으로 부른 까닭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8]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과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오는 4월 19일부터 회암사지박물관에서 ‘대가람의 뒷간(厠)’ 기획전을 엽니다. 이 전시는 회암사터에서 발굴된 ‘백자 장군’을 비롯한 뒷간 관련 유물과 전통 뒷간 유물 등을 전시하지요. 화장실을 뜻하는 말은 전통적으로 '뒷간'이나 '측간(厠間)'이라 했고, 지방에 따라서는 '칙간', '정랑'이라고도 불렀으며, 재를 많이 뿌렸으므로 '잿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한자말로 정방(淨房)이라고도 했는데 절에서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 불렀지요. 또한 조선시대 이후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급한 데', '부정한 데', '작은 집' 등으로 은밀히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흔하게 쓰던 말은 ‘뒷간’입니다. ‘뒷간’이란 '사람 똥'을 점잖게 표현한 말이 '뒤'여서 '뒤를 보는 집'이란 뜻이 들어 있으며, 화장실이 살림채에 붙어 있지 않고 뒷마당에 별채 형태로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뒷간이란 낱말은 1459년 세조가 펴낸 《월인석보(月印釋譜)》에 처음 나타납니다. 또한 뒷간과 관련된 제주도에 전해오는 설화도 흥미롭습니다. “옛날에 '노일제대귀

임금이 쓰던 국새, 왕비가 쓰던 내교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7]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은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자 한 마리가 떡하니 앉아 있는 조선시대 도장을 공개했습니다. 사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용맹성 때문에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불리는 사자 모습의 도장이 왕비의 것이라니 의외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자 모양 손잡이의 놋쇠 도장은 조선시대 왕비가 쓴 ‘내교인(內敎印)’으로 조선시대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한 궁방(宮房)의 각종 지출명세서에 이 인장이 찍혔습 니다. 그런가 하면 어제(4월 16일)에는 (재)수도문물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 70번지 유적’에서 조선시대 왕비의 인장인 내교인(內敎印) 2과가 출토되었다고 밝혔지요.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은 2단으로 구성된 정사각형의 몸체 위에 뒷다리는 구부리고 앞다리는 곧게 펴 정면을 보고 있는 개 모양의 손잡이가 있습니다. ‘내교인’의 인장은 너비 4cm×4cm, 높이 5.5cm이며, ‘소내교인’은 인장너비 2cm×2cm에 높이 2.9cm입니다. 왕실에서 쓰던 도장 가운데는 임금이나 황제가 쓰던 국새(國璽)가 그 격이 가장 높습니다. 지난 2017년 보

“세월호 참사” 4돌, 이 북받치는 슬픔 어쩌라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6]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 하늘이시여, 신이시여 정녕 이 참담한 비극을 어찌하오리까 이 일을 어찌하라고 정녕 이 일을 어찌하라고, 종달새처럼 재잘대며 수학여행 나선 아이들 소라처럼 꿈을 키우며 초록빛으로 망울지던 청소년들 차가운 바다에 시린 넋을 묻고 누웠는데 너울거리는 바다에 퍼런 혼을 묻고 누웠는데 이 찢어지는 아픔 어쩌라고 이 북받치는 슬픔 어쩌라고“ 이는 최병영 시인의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시 일부입니다. 오늘은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언 4돌이 되는 날입니다. 그날 우리는 망연자실하며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았습니다. 넋 놓고 눈물만 뿌렸습니다. 배 속에서 손톱을 긁어대며 죽어갔을 초록빛 눈망울의 아이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을 원망하며 그저 멍하니 멍하니 가슴을 쳐댔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두 돌을 맞은 지지난해 4월 김용옥 시인은 “지금, 남쪽 진해에서 북쪽 여의도 윤중로까지 벚꽃 만개하여 전 국토가 꽃밭이다. 희디흰 조팝꽃, 노랑 개나리꽃, 멀리 산자락에 해사한 진달래꽃에 배꽃, 사과꽃, 살구꽃, 자두꽃, 복사꽃이 만발이다. 그야말로 꽃대궐 강산이다. 그런데 진도 팽목항 맹골

고쳐진 조선왕조실록, 수정실록ㆍ개수실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5]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언론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영포빌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임시기 청와대의 문서 상자 17개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의 무단 유출은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미만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며, 대통령기록물을 볼 수 있는 것도 법률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임금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도 물론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임금도 열람하거나 고칠 수 없도록 하는 등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두었지요. 임금이 죽으면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한 뒤 영의정 이하, 조정의 주요 관리들이 모여 실록을 펴내는데 사관들이 역대 왕들에 대하여 작성한 사초(史草,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와 시정기(時政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내의원일기, 관상감일기) 등이 그 기초자료가 됩니다. 그리고 사초는 처음 쓴 초초(初草)와 이를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중초(中草) 그리고 실록에 마지막으로 수록하는 정초(正草)의 3단계로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이때 초초와 중초는 물에 씻어 그 내용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

1919년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9년 오늘(4월 11일)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나라안팎 애국지사들 사이에선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는 수립 과정과 주체가 명확히 알려진 대표적인 임시정부들이었지요. 그 가운데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하게 우리 겨레의 임시정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날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지요. 현재 한국 정부는 4월 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하고 있으나, 광복회에서는 4월 13일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공문을 뿌린 날이고, 실제 결성일은 4월 11일이라며 임정 수립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