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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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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한(小寒), 따뜻한 성질의 호박이 좋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8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겨울철 석 달은 물이 얼고 땅이 갈라지며 양(陽)이 움직이지 못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뜬 뒤에 일어나야 한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많은 동물이 겨울에 겨울잠을 자듯 사람도 활동을 줄이고 잠자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인들이 겨울이라 해서 활동을 줄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신 햇볕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길어지듯이 사람 몸 안의 양의 기운도 점점 움트기 시작하는데 이때 양기가 찬 기운을 이기지 못하면 호흡기에 병이 생기기 쉽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를 보완해 주려면 햇볕을 쐬어주어야 합니다. 또 혈자리에 뜸을 떠 몸속으로 따뜻함이 들어가 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밖에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음식은 호박이 대표적입니다. 늙은 호박은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베타카로틴과 카로티노이드가 많아 항암 효과와 콜레스테롤 배출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요. 또 비타민AㆍB2ㆍC도 풍부해 면역력 강화와 감기 예방에도

김지섭 의사, 도쿄 황거 앞에 폭탄 던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7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2년 전 내일(1월 5일)은 안동 출신 추강 김지섭 의사가 일왕이 사는 도쿄 황거 앞에 폭탄을 던진 날입니다. 김 의사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해 상하이, 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김 의사는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일제의 조선인 학살을 보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요인을 암살하기로 마음먹고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석탄운반선에 몸을 숨긴 김지섭 의사는 열흘 동안의 고된 항해 끝에 1923년 12월 30일 후쿠오카에 도착합니다. 일본에 간 목적이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 총리 따위 요인을 처단하기 위해서였지만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됐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에 따라 거사 계획을 바꿔 일왕의 궁성 곧 황거를 폭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24년 1월 5일 관광객 틈에 몸을 숨긴 채 궁성의 이중교(니주바시, 二重橋)를 향해 폭탄 3개를 던졌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폭탄의 불발로 거사는 실패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김 의사는 현장에서 붙잡혀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정에서 “조선 사람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한

96년 전 잡지 별건곤에 나온 《술나라》 헌법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7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언론에는 “‘음주운전 재범이면 차량 몰수’…검·경, 음주운전 대책 강화” 등의 음주 운전 에 관한 기사가 보도됩니다. 그런가 하면 ‘음주운전 방지 장치’는 법적 근거를 모두 마친 실질적 대책으로 정부는 상습 음주운전자가 면허를 재취득할 경우, 일정 기간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건부 면허 제도’를 내년 10월부터 본격 시행합니다. 요즘은 술을 마시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음주 운전입니다. 그런데 술의 나라 헌법 곧 주국헌법(酒國憲法)을 물론 정부가 아닌 개인이 만들기도 했습니다. 주국헌법은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1929년 2월호에 풍류객 차상찬이 올린 글입니다. 거의 100년 전의 술의 나라 헌법치고는 요즘에도 관심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제4조. “심신이 미약한 사람, 미성년 남녀, 기독교 신자는 입적을 불허한다.” 또 제6조에는 “3잔 이상을 마실 자격이 있는 자와 술의 나라에 세금(술값)을 납입한 자는 누구나 주권자가 된다.”라고 하고 제7조에는 “술 나라에 등록(입적)한 자는 그 정도 여하에 따라서 술의 왕, 술 대통령, 술 대장, 술 첨지, 탁주 병정, 알코올

임금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교룡기(交龍旗)’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7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언론에는 “29일 청와대에 봉황기 게양…대통령실 명칭 '청와대'로 변경”이라는 기사가 올랐습니다. ‘봉황기’란 대한민국 국가수반을 상징하는 깃발로, 대통령의 주 집무실이 있는 곳에 상시 게양해 놓습니다. 따라서 용산에서 대통령의 집무실을 청와대로 옮기면서 용산에 걸려있던 ‘봉황기’도 함께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임금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의장기로 황룡대기(黃龍大旗)라고도 부르는 크기가 4m에 가까운 ‘교룡기(交龍旗)’가 소장돼 있습니다. 임금의 의장 행렬 맨 앞에 배치되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고, 임금이 전체 행렬을 움직이고 통솔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가행렬에서 말 탄 장교가 깃대를 받들고 그 주위에 네 명의 군사가 깃대에 연결된 끈을 잡고 나아가지요. 옥색 직물 바탕에 5개의 발톱을 갖춘 황룡 두 마리가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여백에는 구름무늬를 가득히 채워 그렸고 깃발의 테두리는 붉은색 화염각(火焰脚, 불꽃 모양의 갈기)을 붙였습니다. 정조의 <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 그림에도 보면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부분 가운데 이 교룡기가 보입니다

서양은 구세주, 우리나라는 미륵불 신앙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7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 전날입니다. 그런데 이 구세주 신앙이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신앙이 됩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미래의 사바세계(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미륵불 신앙과 관련된 기록이 있을 정도였는데 오랫동안 백성들의 희망 신앙으로 받아들여 폭넓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가면 친근한 모습의 돌미륵들을 쉽게 볼 수 있지요. 또한 고려말에는 바닷가 개펄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는데 이도 역시 미륵신앙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자주 출몰하던 왜구 때문에 고통받던 백성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바닷가에 묻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미륵불이 오시기를 빌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에서는 성탄절 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 신앙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궁예(弓裔)는 호를 미륵불(彌勒佛)이라 하고 금모자를 쓰고 몸에는 네모난 가사를 입으며 큰아들을 청광보살, 막내아들을 신광보살이라 하고 나아갈 때에는 비단으로 장식한 백마를 타되 어린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장물아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7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5년 오늘(12월 21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초대 통감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만주 하얼빈역에서 독립투사 안중근이 쏜 총에 사살되었지요. 이는 대한제국 침탈의 원흉에 대한 응징이었습니다. 이토는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고려청자 장물아비였다고 합니다. 1906년에 서울에 왔던 미야케라는 일본인이 쓴 회고기 <그때의 기억-고려고분 발굴(도굴)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예술적인 감동으로 고려청자를 모으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개는 일본으로 보내는 선물감으로 개성 인삼과 함께 사들이는 일이 많았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매우 많은 수집을 한 사람이었는데, 한때는 그 수가 수천 점이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런데 고종임금도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청자를 보여주자, 이 나라엔 없는 물건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사람들은 고려청자를 몰랐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조상의 묘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