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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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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급제했다면서요?” 마침형 세배 인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5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큰 명절 설입니다. 그런데 세배를 하면서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처럼 명령 투의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예절에 맞지 않습니다. 세배를 한 뒤 일어서서 고개를 잠깐 숙인 다음 제자리에 앉아서, 세배를 받은 이가 먼저 덕담을 들려준 뒤 이에 화답하는 예로 겸손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적인 얘기만 하는 게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이나 부담스러운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미덕이지요.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이 글은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 글 내용입니다.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아직 병환 중임에도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쁘다.”라며 ‘마침형(완료형)’ 어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말은 없었고 대신 ‘마침형’의 덕담이 유행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조 때 한경(漢經)은 하진백(河鎭伯) 집안사람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는데 하진백이 과거공부를 더욱 열심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을에 있을 과거에서 급제했다며 미리 축하의

군관 나신걸의 절절한 아내 사랑 한글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52]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1년 대전 안정나씨 문중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한 여인의 목관에서 한글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분과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오. 집에도 다녀가지 못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울고 갑니다. 어머니 잘 모시고 아기 잘 기르시오. 내년 가을에나 나오고자 하오. 안부가 궁금합니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했는데, 장수가 혼자만 집에 가고 나는 못 가게 해서 다녀가지 못합니다. 가지마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에서 회덕골로 사람을 보내 귀양살이를 시킨다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군관 나신걸(1461∼1524)이 갑자기 북쪽 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고향에 있는 아내 신창 맹씨에게 쓴 한글편지입니다. 나신걸은 아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해서 집안의 논밭을 다 남에게 소작을 주고 농사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지요. 또 노비나 세금, 부역, 공물 등 각종 집안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선물로 사서 보낸 분과 바늘은 모두 중국 수입품으로 초급 무관의 몇 달 치 월급을 털어서 샀을 것입니다. 2012년 5월 국가기록원은 500년 전 나신걸이 쓴 편지를 초음파

3751.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 바르면 죽은깨가 없어진다?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박가분을 항상 발느시면 죽은깨와 여드름이 없어지오. 얼굴에 잡티가 업서저서 매우 고와집니다. 살빗치 고와지고 모든 풍증과 땀띠의 잡티가 사라지고 윤택하여 짐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날개 돋친 듯 팔았던 <박가분(朴家粉)> 광고입니다. <박가분>은 두산그룹 창업자인 박두병의 어머니 정정숙 여사가 만들어 자신의 포목점에 오는 손님들에 주던 사은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던 <박가분>은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이 박가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옷감을 사러오는 여성들이 많았을 정도였지요. 결국 박가분은 1920년에 상표등록 하여 팔기 시작하는데 결국 공산품으로 맨 먼저 만들어 판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 되었습니다. 화장품 박가분은 두산그룹을 재벌로 만든 발판이었다고 하니 참 대단하지요? 박가분이 전성기 때는 온 나라에서 방물장수가 몰려들었고, 하루 1만 갑 이상을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가분 이전에 팔리던 백분은 얇은 골패짝 같은 것으로 작게 만들어 백지로 싸서 팔았습니다. 그러나 박가분은 훨씬 두꺼워 양이 많았고, 상표를 인쇄해 붙여 상자에 담아서 팔아 상품 가치를 높였기에 인기를 누렸다고 합

담황색으로 솔향이 그윽한 전통술 <문경호산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50]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에는 장수황씨(長水黃氏) 소윤공파(小尹公派) 후손들이 빚어온 전통술 경상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18호 <문경호산춘(聞慶湖山春)>이 있습니다. 장수황씨 일가가 집안의 전통주 겸 손님접대용으로 빚었던 술입니다. 약 200년 전 황의민(黃義民)이란 풍류가가 자기 집에서 빚은 술에 자기 시호인 ‘호산(湖山)’과 술에 취했을 때의 춘색을 상징하는 ‘춘(春)’자를 따서 호산춘이라고 이름 지었다 하지요. 호산춘은 멥쌀, 찹쌀, 누룩, 솔잎, 물로 담그고 술이 완성되는 데는 한 달쯤 걸린다고 합니다. 이 술은 매우 향기롭고 약간 짠득한 끈기가 있으며, 특히 똑같은 원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술을 빚어도 산북면 대상리가 아닌 다른 곳에 술을 빚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것도 꼭 산북면 대하마을에서 나는 물을 새벽 0시에서 4시 사이에 길어 와서 끓이고 식혀서 술을 빚어야 제 맛을 낼 수 있는데, 그런 점이 호산춘 특징의 하나입니다. 재미난 것은 이 술이 유명해지자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문경지방 뿐 아니라 상주 등 근방에서 주객이 모여들었고 그 향기에 취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알코올

오늘은 3ㆍ1만세운동의 도화선 도쿄 2ㆍ8독립선언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49]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이는 3ㆍ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ㆍ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조선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을 당당한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2월 8일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했습니다. 이날 독립선언식에는 도쿄 유학생 거의 전부를 망라한 600여 명이 참가했으며 회장 백남규가 개회를 선언한 다음 최팔용의 사회로 역사적인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독립선언문 낭독은 백관수가 맡았으며,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하자 장내는 독립만세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나라밖으로 파견된 사람을 뺀 실행위원 모두를 포함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요. 이날의 함성은 이내 조선에 전해졌고 도쿄의 2ㆍ8독립선언은 이후 3ㆍ1만세운동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홍만종이 으뜸이라고 격찬한 “늙은 소나무” 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48]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階前偃蓋一孤松(계전언개일고송) 계단 앞 누운 듯 서 있는 한 그루 외로운 소나무 枝幹多年老作龍(지간다년로작룡) 가지와 줄기는 여러 해 지나 늙은 용의 모습이네 歲暮風高揩病目(세모풍고개병목) 해 저물고 바람 거셀 제 병든 눈을 비비고 보니 擬看千丈上靑空(의간천장상청공) 마치 천 길의 푸른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네 이 시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안(姜希顔, 1417년 ~ 1464년)의 <사우정영송(四友亭詠松)>이라는 한시입니다. 사우정이란 정자에 올라 누은 듯 서있는 소나무를 보고 노래한 시로 “영물시(詠物詩)”의 하나입니다. 영물시란 자연계 또는 현실 생활 속의 구체적인 사물을 노래한 시가인데 ‘영설(詠雪)’과 ‘영매(詠梅)’, ‘영선(詠扇)’처럼 제목에 사물과 함께 읊을 영(詠) 자가 들어가지요. 오랜 세월 늙어 마치 누운 듯한 노송(老松)의 위용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동감 있게 잘 묘사했습니다. 소나무는 늙은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해는 또 저물어 가고 바람이 드센 날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고서 노송(老松)을 바라보니, 마치 천 길이나 되는 푸른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

소털로 만든 제주사람들의 모자 ‘털벌립’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47]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도 민요 중에 “정의(성읍) 산 앞 큰 애기들은 ‘털벌립’ 만들기가 일쑤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 쪽에서 ‘털벌립’ 곧 털벙것(털벙거지, 제주도 사투리)을 많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지요. 제주도는 예부터 목축이 발달하여 가축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털벌립은 그런 가축 특히 소의 등에 붙은 진드기 같은 벌레를 ‘부그리글갱이’라는 기구로 긁어낼 때 빠져 나온 털을 모았다가 깨끗이 빨아 말린 뒤 콩풀과 섞어 모자 틀에 눌러서 만든 모자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털벙것이 갓의 모양을 하고 있고, 조선시대 진상 품목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인들이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포도청의 나졸이 해산된 뒤에 민간에서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특히 텁벌립은 단단하고 비바람에 잘 견뎠기에 농부들도 즐겨 썼다고 합니다. 또 제주도 사람들은 한라산에 자생하는 댕댕이덩굴로 만든 “정당벌립(정동벌립)”이란 모자도 즐겨 썼습니다. 댕댕이덩굴 줄기는 내구성이 강하고 탄력성이 좋을 뿐 아니라 물에 젖으면 잘 구부러져 풀공예에 적합한 재료지요. 또 줄기의 지름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