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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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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화사하게 수놓는 들꽃 꼬리조팝나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7]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봄에 우리는 잎보다 먼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흰꽃을 피우는 조팝나무를 보았습니다. 이제 여름이 되면 화사한 분홍빛으로 아름다운 꼬리조팝나무를 만납니다. 꼬리조팝나무는 경상북도 이북의 산지, 그 가운데서도 반그늘 또는 양지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랍니다. 키는 1~1.5m이며, 연한 붉은색 꽃이 6~7월에 피지요. 열매는 9월 무렵 갈색으로 익습니다. 꼬리조팝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로 붉은조룩싸리, 분홍조팝나무, 수형수선국, 수선국, 진주화(珍珠花) 분홍조팝나무, 공심유(空心柳), 마뇨수(馬尿溲) 같은 여러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이 꽃은 마치 짐승의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꼬리조팝나무라고 부른다는데 꽃말은 “은밀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사한 꽃을 피어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른 봄에는 어린순을 따고, 여름에서 가을에는 줄기와 잎을 따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고 하지요. 꼬리조팝나무의 줄기와 잎은 월경 불순, 변비, 소화 안 되는 데, 타박상, 관절염, 기침은 물론 혈액순환을 좋게하는 데도 쓴다고 합니다. 참고로 조팝나무 종류에는 조팝나무와 꼬리조팝나무 말고도 참조팝나무, 공조팝나무, 은행잎조팝나

큰 바위 4면에 부처를 새긴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굴불사터에는 높이 약 3.5m의 보물 제121호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이 있습니다. 이 불상은 바위의 서쪽에는 아미타여래불(阿彌陀如來佛,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 동쪽에는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 북쪽에는 미륵불(彌勒佛, 먼 미래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부처), 남쪽에는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四方佛) 형태이지요. 《삼국유사》 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왔고,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긴 다음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합니다. 서쪽의 아미타여래는 몸만 돌기둥에 새겼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머리가 얼굴보다 커 꼭 모자를 쓴 것처럼 보입니다. 좌우에는 다른 돌로 보살입상을 세워 놓아서 3존불의 모습을 띠고 있지요. 동쪽의 약사여래는 양 발을 무릎위로 올리고 앉아 있는데 몸 전체를 앞으로 숙였습니다. 또 북쪽면의 오른쪽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6개의 손이 달려있는 관음보

신사임당 자녀 매창의 매화도와 옥산의 국화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그림, 서예, 시에 대한 재주가 뛰어났고 성리학적 지식과 도학, 문장, 고전, 역사 지식 등에 해박하였던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 ~ 1551)은 생전에 부덕을 갖춘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존경받았으며 사후에도 정치와 학문에 뛰어난 아들 율곡 이이를 키워낸 어머니로 여전히 존경 받고 있습니다. 2007년 우리나라의 최고액권인 5만 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자리하고 있지요. 신사임당은 여성이면서도 성리학적 지식이 해박했다는 점과 아들 이이, 이우, 딸 이매창을 대학자와 화가, 작가로 길러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습니다. 봉건 시대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임당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자녀들에게도 대를 잇게 해 딸 매창(부안 기생 이매창과 이름이 같음)과 아들 옥산도 뛰어난 솜씨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매창이 그린 매화도는 가로 26.5㎝, 세로 30㎝의 종이에 그린 묵화로, 굵은 가지와 잔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은은한 달빛아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매화를 실제로 보는 듯 하며, 깔끔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한편, 옥산의 국화도는 가로 25㎝, 세로

세계지질공원에 제주도와 청송 등재, 무등산 추진 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2]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운데는 “수원 화성” 과 같은 문화유산 12곳, “아리랑” 과 같은 무형유산 15개, “훈민정음” 과 같은 기록유산 6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유네스코가 과학적 중요성 또는 희귀성을 갖거나 생태학ㆍ고고학ㆍ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을 보전하고 교육ㆍ관광으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발전을 꾀하는 세계지질공원도 있지요. 세계지질공원은 현재 세계 33개국에 127여 곳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010년 10월 제주도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이로써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이어 세계지질공원 인증까지 획득해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에 등극했지요. 특히 한라산, 성산일출봉, 만장굴, 수월봉,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삿개 주상절리대, 서귀포층, 천지연폭포 같은 9곳은 지질명소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 4월에는 경북 청송군이 세계지질공원에 올랐습니다. 청송에는 5억여년 이전 선캄브리아기에서 중생대 백악기, 신생대 제3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질시대 흔적을 보여주는 암석이 두루 분포하는 등 지질학보고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청송꽃돌, 법수도석

언론이 혼란스럽게 쓰는 말들, 씽크홀ㆍ지반침하ㆍ땅꺼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1]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 “등산로 삼켜버린 지름 50m 싱크홀, 주민 불안”이란 기사가 나왔습니다. 또 한 신문에는 “집중호우 곳곳 지반침하 '비틀린 아파트”라는 기사도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부산서 깊이 50cm 땅꺼짐 현상 발생”이란 기사도 있었지요. 사전을 찾아보면 씽크홀은 “sink hole”이라 하여 “지반 내 공동이 붕괴되어 나타나는, 대체로 좁은 규모로 땅이 가라앉아 생긴 구멍”이라고 풀이 해놓았습니다. 또 지반침하는 한자로 “地盤沈下”라고 써서 땅이 가라앉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결국 씽크홀ㆍ지반침하ㆍ땅꺼짐 모두 같은 말이지요. 그런데도 이렇게 서로 달리 혼란스럽게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몇 년 전 한 국어학자는 우리나라 말글생활에 대해 말하면서 “음식점을 말하면서 ‘가든’이라 하면 고급스러운 곳을 생각하고, 보통은 ‘식당’이라고 하면서, ‘밥집’이라 하면 싸구려 식당이라고 인식한다. 영어로 말하면 고급이고, 우리말로 말하면 싸구려 라고 생각하는 이런 참으로 한심스러운 행태가 기가 막히다.”라고 한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 치고 “씽크홀과 지반침하”를 정확하게 영어와 한자로 쓰고 그 뜻

오늘은 독립운동가 김영란 선생이 순국하신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00]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독립운동의 목적도 역시 조선 민족의 행복과 안녕을 보존하기 위해서인데, 이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제 동포에게 그런 위해를 끼칠 까닭이 없고, 또 그러한 폭행으로 독립운동을 한다 한들 성공하지 못할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간 줄임) 함으로써 우리 2천 만 민족을 굴복시키려면 2천 만 민족을 모두 죽여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이 독립운동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당국도 잘 알 것이다.” 이는 1922년 오늘(7월 12일) 평양 복심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영란(金永蘭) 선생의 상고이유입니다. 선생은 평안남도 순천군의 만세시위에 참가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임시정부 등 나라밖 독립운동세력과 연계를 맺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전달하였으며, 비밀결사 조직 승의단과 공성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선생은 1920년 1월 조기수ㆍ한국언ㆍ최태준과 함께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평안남도 성천의 정현조 집을 불태우고 정현조와 그 가족을 처단하는 따위의 무장투쟁도 함께 했습니다. 1920년 5월 29일에는 성천군 사주면 신흥리에서 최병갑과 함께 잠복하던 중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