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6 (목)

  • 구름많음동두천 18.0℃
  • 구름많음강릉 12.0℃
  • 구름많음서울 19.9℃
  • 구름많음대전 20.2℃
  • 맑음대구 12.8℃
  • 구름많음울산 11.1℃
  • 흐림광주 19.4℃
  • 구름많음부산 12.8℃
  • 흐림고창 14.5℃
  • 구름많음제주 15.3℃
  • 구름많음강화 14.6℃
  • 구름많음보은 18.1℃
  • 구름많음금산 18.7℃
  • 흐림강진군 13.9℃
  • 맑음경주시 10.1℃
  • 구름많음거제 13.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우리문화편지

전체기사 보기
배너
배너

’척사대회‘란 어려운 말을 쓰고 문해력 걱정?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연합뉴스 3월 9일 기사에는 “교과서 한자 병기되나…‘朴정부 때 소용돌이’ 반발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학생들의 문해력 신장을 위해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포함한 한자 교육 강화를 검토한다.’라는 것입니다. 김경회 국교위 문해력 특별위원장은 "한자 교육 문제를 충분히 개방적으로 논의하되, 확정되기 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는 일은 없게 하겠다"라고 강조했지만 말입니다. 지난 2024년 578돌 한글날에는 언론에 “시발점'이라고 하니 학생들이 ‘왜 욕해요?’”라고 했다면서 학생들 문해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는 기사들이 올라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578돌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5천848명의 초ㆍ중ㆍ고 교원을 대상으로 벌인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를 두고 보도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현상을 무조건 ‘문해력’ 부족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예를 든 것들을 보면 위 시발점(始發點) 말고도 "두발 자유화 토론을 하는데, 두발이 두 다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했다고 하더라”,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수도라는 말을

백성 가르치려 한글로 펴낸 《여씨향약언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근래 팔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곤경에 허덕이니 걱정스러운 마음 끝이 없다. 이는 나의 자수(自修, 스스로 학문을 닦음)가 미진한 탓이나 감사 또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전에 이미 명하여 농사일과 누에 치는 일에 힘쓰도록 하였는데도 오히려 힘쓰지 않았으며, 학교의 교화에 대하여도 아직 그 도리를 다하는 자를 못 보겠으니,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권하여 읽게 하라.“ 이는 《중종실록》 35권, 중종 14년(1519년) 4월 5일 기록으로 중종이 《여씨향약》을 모든 백성이 읽도록 하게 하라는 하교입니다.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한글로 풀이하여 펴낸 책이지요. 중국 남송의 주희가 주석을 단 《주자증손여씨향약》에 구결(토)을 달고 한글로 뒤쳐 향약을 보급하고 백성을 가르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원전보다도 주석을 풍부하게 달았지요. 《여씨향약언해》는 1518년에 김안국이 펴냈으나, 이듬해인 1519년에 이를 중앙정부에서 교정한 중간본(重刊本)이 간행되었습니다. 중간본 말고도 여러 시기의 이본

제주목사가 성산에서 해돋이를 보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새털구름 말려 없어지는 아득한 바다 한가운데 동편 바다에서 상서로운 해가 막 떠오르려네 새벽 기운이 먼저 붉은빛으로부터 나오는데 멀리 두른 밝은 광채 자미성에 통하네 인간 세상에 드리워 견줄만한 보배 없으니 봉래 제일의 궁이라 불러주게 되었나 보다 무엇보다 남은 생의 영광 오로지 내게 비춘다 해도 솜옷 걸쳤으니, 누가 뛰어난 바느질 솜씨 알아주겠는가? 이는 제주 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제주 성산에서 해돋이를 보며 김상헌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입니다. 이형상은 제주에 목사로 부임하여 곳곳을 돌아보고 남긴 중요한 순간들을 1703년 화공(畫工) 김남길(金南吉)에게 그리게 한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국립제주박물관 소장》를 펴냈습니다. 《탐라순력도》에는 성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았던 순간을 그린 장면이 <성산관일(城山觀日)>에 담겨 있으며, 정방탐승(正方探勝), 귤림풍악(橘林風樂), 우도점마(牛島點馬), 제주조점(濟州操點) 등 곳곳을 돌아보는 그림 28쪽이 들어 있지요. 험준한 절벽에 나무 사닥다리로 어렵게 올라간 정상에서 그는 마치 연꽃이 바다에서 나와 공중에 걸려 있는 모습으로 해돋이의 순간을 기억했

일본에 끌려간 백성 3,500명 데려온 사명대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유정이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나라 남녀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는 《선조수정실록》 39권, 선조 38년(1605년) 4월 1일 기록으로 승려 유정 곧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임금의 명을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명예직이지만 영의정에 해당하는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임금이 타는 말) 등을 하사받았다고 하지요. 당시 일본은 새로 세운 ‘에도 막부’의 안정을 위해 조선과의 평화가 절실했습니다. 사명대사는 이를 간파하고 강력한 외교 담판을 벌여 "일본은 다시 침략하지 않는다"라는 약속과 함께 포로 송환을 확약받은 것입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도 금강산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여해 큰 전공을 세웠고, 그해 3월 서울 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사는 팔공산성과 금오산성, 용기산성, 남한상성, 부산성 등을 쌓기도 했지요.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먼저 고향인 밀양

문체부, ‘광화문 현판 토론회’ 연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1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자 연합뉴스는 “광화문 월대에서 시작된 BTS 컴백, 복원된 역사가 세계를 만나다”란 기사를 올렸습니다. 다시 돌아온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경복궁 근정문에서 흥례문, 광화문을 지나 월대 앞 광화문광장 무대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따라가며 시작됐지요. 복원된 월대 앞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의 귀환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귀환 공연이 열린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 현판이 한자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 달려있는 광화문 한자 현판은 세종 때의 원형도 아니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세종 때 ’원형‘을 모른 채 썼는데 그것도 훈련대장이 직접 썼던 것이 아닌 복제품이어서 그 현판을 붙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문화유산으로의 복원은 아닌 것입니다.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글자 ’한글‘이 있음을 아는 것은 물론 많은 이가 한글을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데 대한민국 상징의 하나인 광화문에 중국 글자인 한자로 쓰인 한자 현판이 달린 것을 보고 세계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걱정입니다. 따라서 한자 현판을 굳이 그대로 두

방탄소년단 음반에 성덕대왕신종 깜짝 등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1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방탄소년단(BTS)이 새로 내놓은 음반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울림소리가 앨범 중반부에 반영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듣고 감명 받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아이디어를 내 성사된 것으로, 그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음반 발매가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는 뒷이야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에밀레종 음원과 무늬가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수록곡과 협업 상품에 활용됐다고 20일 밝혔지요. 한국인이라면 애틋한 전설이 서린 1,300년 된 ‘에밀레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에밀레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했으며, 공식이름으로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인데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지요. 오래 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