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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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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길, 신작로에 숨겨진 겨레의 아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햇빛 쨍쨍 퍼부어 불아지랭이 어른어른거리는 하얀 신작로 길. 작은 미루나무만 뽀얗게 먼지 뒤집어쓰고 외로이 줄지어 서있는, 아무리 걷고 또 걸어가도 제 자리 걸음 하듯 늘 그대로 남아있었던 팍팍했던 머나먼 자갈길. (중간 줄임) 아버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 자 없는 내 아버지, 이 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자꾸 내려가면 내 아버지 만날 수 있을까? 이 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자꾸 가면 서울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먼 먼 신작로 길처럼 온 몸에 치렁치렁 감겨들었던 한없는 적막함, 외로움.“ 이는 양정자 시인의 “신작로 1”이라는 시로 신작로 풍경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시골에 가도 모든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었지만 예전 60년대, 7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시골길을 차 한 대만 지나가도 뽀얀 흙먼지가 날리는 그런 신작로였지요. 그 탓에 길가의 가로수들도 온통 하얀 흙먼지 뒤집어 쓴 채였고, 그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은 돌아서 있다가 차가 지나간 한참 뒤에서야 다시 길을 재촉하던 그런 길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제1호 신작로는 전라북도 전주와 군산 사이를 잇는 “전군도로”였습니다. 1906년 일제는 7개년

고려대장경이 왜 도쿄 증상사에 있을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본 도쿄에 가면 도쿄타워 가까이에 증상사(增上寺, 죠죠지)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증상사 안의 신(新)경장 건물에는 고려대장경이 소장돼있지요. 그러데 이곳에서 만난 한국의 한 대학생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증상사 측에서 꽁꽁 숨겨 놓고 공개를 하지 않으니 알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곳에 고려대장경이 있게 된 것일까요? 《성종실록》 16년(148년) 9월 16일 기록에 보면 노사신의 상소가 나옵니다. “대장경은 이단의 책이므로 비록 태워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욱이 인접한 나라에서 구하니 마땅히 아끼지 말고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장경 1건을 만들려면 그 경비가 매우 많이 들어서 쉽사리 조달할 수가 없습니다. 요전번에는 대장경이 나라에 무익하였기 때문에 왜인들이 와서 구하면 문득 아끼지 않고 주었으나 지금 몇 건 남아있습니까? 다 주고 나면 또 달라는 억지에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말하자면 싹 주어 버려도 아깝지는 않지만 한꺼번에 다 주고 나서 다시 달라고 떼를 쓰면 만드는데 돈이 드니까 대장경을 달라고 할 때마다 조금씩 주자는 말이지요. 이 무렵 일

이승휴가 《제왕운기》 쓴 곳 삼척 두타산 유적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에 가면 사적 제421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이 있습니다.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라 하면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였는데 우리 겨레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쓴 사람입니다. 바로 이 책은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 무렵 이곳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에서 썼지요. 요동에 또 다른 천지가 있어서, 중국과 구별되어 나뉘어 있네 큰 파도 넓은 바다가 삼면을 둘러싸고, 북쪽은 육지와 실처럼 연결되었네. 가운데 사방 천 리가 조선이며, 강산의 아름다움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네. 땅 갈고 우물 깃는 예의바른 나라, 중국인은 소중화라 불렀다네 《제왕운기》 권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제왕운기》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단군으로부터의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교사관을 내세워 원나라에 대한 사대(事大)를 합리화하는 사대적ㆍ비자주적 성격의 저술이라는 비판도 있는 책입니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고 이에 이곳 두타산으로 돌아와 《제

총석정을 보는 김홍도와 이인문의 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총석리에는 총석정(叢石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총석-叢石] 위에 세워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 돌기둥들은 현무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면들이 갈려져 떨어지면서 6각형ㆍ8각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을 이루어 장관입니다. 총석정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까닭으로 이를 그림으로 그린 화원이 많습니다. 특히 정선은 여러 점의 작품이 남아 있고, 김홍도, 이인문, 이재관, 허필, 김하종 등 많은 화원이 즐겨 그렸습니다. 똑같이 총석정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가장 많이 그린 정선의 작품을 보면 전혀 색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수묵만으로 물결치는 파도를 그렸으며 김홍도는 파도소리에 새소리까지 들릴 듯 섬세하고 정감 있게 그렸지요. 그런가 하면 초상화를 잘 그린 이재관은 얌전하고 꼼꼼한 모습으로 총석정을 그립니다. 하지만 이인문은 김홍도만큼은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 화가였지만 주눅 들지 않은 자신만의 색채를 표현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총석정을 그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처럼 이름난 화원이든 알져지지 않은 화원이든 그들 나름대로 특징을 살려 총석정을 그렸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서 따모아 한글로 쓰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또 바뀐다고 하는데 광복 이후로만 네 번째 현판을 바꿔다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30일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金箔) 글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달려있는 현판은 2010년 복원한 것으로 현판에 금이 가 말이 많았던 것으로 이번엔 고증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여서 국민의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란 생각입니다. 사실 2010년 복원할 때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상징하는 경복궁 광화문에 한자로 된 현판이 가당치도 않다고 하면서 한글로 된 현판을 달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문화재청은 문화재 복원은 원형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고종 때 훈련대장의 글씨가 원형이라며, 한자 현판을 고집해 달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글씨는 광화문 창건 때의 글씨도 아니어서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설프다는 지적을 받지요. 더구나 색깔이 잘못 된 것이라면 더더욱 원형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실제 문화재청이 원형을 주장하는 것도 앞뒤가

‘기와 천년, 굴피 만년’, 굴피집 아시나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 삼척시 신기면 환선로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23호 “삼척대이리굴피집”이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국가민속문화재 제221호 “삼척 대이리 너와집”도 있습니다. ‘굴피’란 흔히는 참나무 껍질을 말하는데, 이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집을 ‘굴피집’이라 하지요. 굴피집은 원래 ‘너와집’ 곧 소나무 널쭉을 써서 지붕을 이은 집이었는데 1930년 무렵 너와 채취가 어려워지자 주변에 참나무가 많은 산간 지역이라 재료의 채취가 쉽다는 점에 착안해 너와 대신 굴피로 지붕을 이은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집들은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등의 산골짜기와 울릉도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주로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심한 지방에 있는 집 형태지요. 굴피집은 밭 ‘전(田)’자 형식의 겹집으로 되어 있는데, 한 채의 집안에 마루, 안방과 사랑방 등은 물론 정지(부엌)와 심지어 마구(외양간)까지 함께 있는 모양의 집입니다. 이는 칼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여러 방들을 서로 붙여 건물이 바깥에 드러나는 것을 가능한 줄이고 되도록 안에서 발생한 온기를 최대한 가두어 두기 위한 것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