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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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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틀’, 진주대첩 때 진주성의 희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이 침략해 오자 진주 목사 김시민이 3,800여 명의 군사 그리고 백성과 힘을 합쳐 왜군을 물리쳤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 대첩입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을 해왔고 이때 민ㆍ관ㆍ군이 왜군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진주성 싸움에서는 “날틀”이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날틀은 한자말로 ‘비거(飛車)’라고 하여 하늘을 나는 차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에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날틀은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는데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의 왜적 앞에서 진주성 사람들에게 이 ‘날틀’은 희망 그것이었을 것이라고 장편역사소설 《진주성전쟁기》를 쓴 박상하 작가는 말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와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이 ‘비거’ 곧 날틀이 등장하지만 정확한 모양이나 어떤 쓰임새였는지는 확실하

지두화의 최북, 그림에 자신을 담았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의 고흐로 불리는 최북은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최북은 자신의 이름자 북(北)을 둘로 나누어 스스로 칠칠(七七)이라고 했는데 ‘칠칠치 못한 놈’이라고 자기를 비하한 셈입니다. 그러나 양반들은 붓으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풍류를 즐겼지만, 직업적인 화가였던 그는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아야 했는데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자신의 눈을 찌르며까지 거부했고, 도화서 화원에 얽매이기도 거부하는 자존심의 예술가였습니다. 여기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최북의 ‘게’ 그림 ‘지두해도(指頭蟹圖)’가 있습니다. 일찍이 게를 그리는 것은 과거시험에 갑(甲)으로 통과하라는 뜻이 있어서 수묵화의 좋은 소재였으며 그래서 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같은 그림도 있지요. 그런데 최북 그림의 게는 통통하고 살이 찐 김홍도의 게와는 달리 남성적이고, 칼칼한 느낌이 드러나 보입니다. 그것은 붓으로 그린 김홍도의 그림에 견주어 최북의 그림은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두화는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손톱, 손바닥, 손등 등을 써서 그리는 것이기에 부드러

아이가 태어나면 찬물로 씻어주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兒旣生矣當洗(아기생의당세) 아이 태어나면 마땅히 씻어야 할 터 盆中貯來淸水(분중저래청수) 동이에 맑은 물 담아 오거라 水雖冷兮兒莫啼(수수랭혜아막제) 물이 비록 차더라도 아이야 울지 말라 百病消除堅骨理(백병소제견골리) 온갖 병 없애고 뼈와 피부를 튼튼히 하려는 것이란다 北方苦寒又多風(북방고한우다풍) 북쪽 지방 너무 춥고 또 바람이 많아 耐寒耐風從今試(내한내풍종금시) 추위 바람 참는 것 나서부터 경험하게 하네 이는 조선 후기 문신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한시 ‘아기생(兒旣生)’으로 한시집 《북새잡요(北塞雜徭)》 62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는 북관(北關, 함경도 지방 가운데 마천령 이북 지역) 사람들의 독특한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홍양호는 그의 책 《북새기략(北塞記略)》에서, “아이가 배에서 나오자 곧바로 동이물에 넣어서 피를 씻어내는데, 이것을 ‘태열(어린애가 태 안에서 받은 열이 태어나서도 있는 병증)을 없애준다.”’고 기록했는데, 따뜻한 물이 아닌 차가운 물로 아이를 씻어내는 이 방식은 북관 사람들의 고유한 생활방식라고 합니다. 홍양호는 사헌부대사헌ㆍ평안도관찰사ㆍ이조판서를 지냈으며, 홍문관ㆍ예문관 두

김정호가 제작한 서울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에 가면 전에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바둑대국을 했던 포시즌호텔이 있습니다. 그 호텔 앞을 지나가다 보면 길을 바라보고 지도 하나가 있습니다. 이 지도는 수선전도라는 것인데 지금 전해지는 수선전도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96호 <수선전도(首善全圖)>도 있습니다. 목판 인쇄본으로 크기는 세로 25.4㎝, 가로 22.2㎝이며, 부분 채색한 한 장의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25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지도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수선(首善)’일까요? 수선(首善)은 임금이 사는 서울을 가리키는 일반 이름씨(명사) 가운데 하나여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수선전도(首善全圖)’, 또는 ‘수선총도(首善總圖)’는 서울의 지도라는 뜻이 됩니다. 이 지도는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도봉산, 서쪽으로는 마포ㆍ성산동, 동쪽으로는 안암동ㆍ답십리동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 측량으로 만들어서 선이 곱고 산세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으며, 다른 지도들보다 필법이 매우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는 평가입니다

광화문 아리랑큰잔치, 하나 되어 지축 흔들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2년 12월 5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등재 발표 직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이춘희 명창이 맑고 기품 있는 소리로 <본조 아리랑>을 부르던 광경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합니다. 그저 민요로만 알고 있던 아리랑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화적 자긍심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위 내용은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그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의 윤영달 조직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이 잔치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것을 기려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와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 공동주최로 해마다 10월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여는 도심 속 복합문화예술잔치입니다. 해마다 음악ㆍ무용ㆍ시각예술 등으로 아리랑의 예술적 영역을 확장하며 시대정신에 맞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서울의 대표 잔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올해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은 조선시대 궁중문화와 서민

국립중앙박물관서 위용을 뽐내는 10층석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 복도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이 우리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이 ‘개성 경천사터십층석탑’은 높이 13.5m로 고려말에 쌓은 석탑인데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탑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형태에 균형과 안정미를 갖추었고, 세부 조각들도 매우 섬세하여 나무랄 데 없는 명작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사람들은 이 탑앞에서 기념사진을 꼭 찍고 옵니다. 그런데 이 탑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한제국 때인 1907년 3월 당시 일본 궁내대신인 다나카 마스아키가 결사적으로 막는 조선 백성과 군수를 고종황제가 허락했다는 거짓말과 총칼로 제압하고 이 10층석탑을 강탈해간 것입니다. 다나카는 이 석탑을 해체하여 포장하고 10여 대의 달구지에 싣고 개성역에서 기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도쿄 자신의 집 정원으로 옮겨 차마 포장도 풀지 않는 채 놔두었습니다. 이에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어네스트 베셀이 자신의 신문에 연일 이를 꾸짖는 기사를 냈으며, 미국 선교사 호머 헐머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제언론에 이를 고발했습니다.

단도로 일왕 장인을 처단한 조명하 의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이는 대만을 방문한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王)를 처단한 조명하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28년 오늘(10월 10일) 남긴 말입니다. 조명하 의사는 일하던 오사카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가던 중 대만을 거쳐 가게 됩니다. 이때 조 의사는 대만 주둔 일본군을 특별검열하기 위해 검열사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온다는 정보를 듣습니다. 1927년 5월 14일 마침내 구니노미야를 처단하기 위해 단도에 극약을 바른 다음 구니노미야를 태운 지붕 없는 차가 지나가자 의사는 단도를 빼내 들고 날쌔게 자동차 뒤쪽에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단도를 구니노미야 목에 힘껏 던집니다. 구니노미야는 이때 단도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단도에 발라진 독이 온몸에 퍼져 1929년 1월 27일 죽었습니다. 구니노미야 처단은 중국 침략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 대한 단호한 경

백성사랑으로 이룬 세계 으뜸글자 한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계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을 으뜸글자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매콜리 교수는 한글날만 되면 언어학자로서 최고의 글자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친구 친지, 제자들을 불러 잔치를 하곤 했다지요. 그러면 왜 한글이 이렇게 으뜸글자로 대접받는 것일까요? 먼저 한글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과학적이며 철학이 담긴 글자라는 것입니다. 한글 닿소리(자음)는 소리를 낼 때 발음기관의 생긴 모양을 본떴기 때문에 과학적이라 하는 것이며, 홀소리(모음)는 하늘(ㆍ)과 땅(ㅡ)과 사람(ㅣ)이 담겨 있기에 철학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자입니다. 한글은 가장 발달한 낱소리(음소) 글자면서 음절글자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지요.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낱소리(하나의 소리)를 표기하는데, 홀소리와 닿소리 음을 합치면 글자가 되고, 여기에 받침을 더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글자가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인 파생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한글은 필기체, 인쇄체의 구분이 없고, 대ㆍ소문자의 나눔이 없어서 아주 배우기가 쉽지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정인지의 꼬리글에는 "슬기로운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