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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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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와 함께 발견된 어른과 아이의 중치막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9]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의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라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주검을 염할 때 흔히 쓰던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중치막’을 썼다는 것입니다. 중치막은 임진왜란 이후 1800년대까지 남자들이 흔히 입었던 나들이옷으로 양쪽 겨드랑이 밑에 무가 없이 터져 있는 옷인데 소매가 넓은 형태는 중치막 또는 대창의(大氅衣), 소매가 좁은 것은 소창의(小氅衣)나 창의(氅衣)라고 합니다. 여기 해평 윤씨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가 속에 입고 있던 중치막은 작은 크기로 아이의 수의(壽衣)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누운 목관 바닥에는 아이가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배냇저고리’, ‘작은 소모자(小帽子)’와 함께 어머니의 장옷이 깔려 있었고, 아버지의 중치막이 이불처럼 아이를 덮고 있었으며 중치막을 찢어 만든 줄로 시신을 감싸고 있어서 아이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지요.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4전시실에서는 오는 7월 13일까지 어린이 전통옷 특별전 ‘마음을 담아 지은 사랑, 아이옷’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에는 한 할머니가 손녀

우리나라 첫 민주선거는 1948년 ‘5·10선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8]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보면 “가슴 두근거리는 그날, 투표하세요! 유월의 따뜻한 햇볕같이 우리 동네 민주주의는 더욱 아름다워집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된 민주적 선거는 1948년 5월 10일에 있은 제헌국회의원 선거입니다. 그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의미를 되새기고, 투표참여 독려를 위해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70년 전 5ㆍ10 제헌국회의원선거는 동아일보에 “세계의 주시하에 총선거실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5ㆍ10선거는 미군정청(美軍政廳) 관리 하에 치러진 것으로 한국 최초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였지요. 1구 1인의 소선거구제(小選擧區制)에 1인 1표의 단순투표제(單純投票制)를 채택했는데, 선거구는 모두 200개였으며, 모두 948명이 입후보하여 평균경쟁률은 4.7 : 1로 나타났습니다. 5ㆍ10선거는 성별과 신앙을 묻지 않고 21살 이상의 성인에게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진 남한 역사상 최초의 보통선거였다는 데 의미가 있지요. 다만 이 5ㆍ10선거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선거였다는 점에서 김구

고려청자에 새긴 무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7]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려청자에 쓰인 무늬에는 식물, 동물, 상상 속의 동물과 사람 그리고 자연에 얻은 많은 소재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나타나는 무늬는 식물이지요. 국화, 모란, 모란당초, 여지(荔枝, 중국 남부에서 자라는 아열대 늘푸른나무의 열매), 석류, 연꽃, 버드나무, 매화, 갈대, 대나무, 포도, 들꽃 따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무늬는 물고기, 학, 원앙, 오리, 앵무, 나비, 벌, 원숭이, 기린 따위 동물이며, 상상 속의 동물인 봉황과 용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자연에서 따온 구름과 파도, 연못이 있으며 사람도 가끔 나오지요. 이들 무늬는 시대에 따라 표현하는 기법이나 구성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각각의 무늬는 따로 또는 다른 무늬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고려청자에 본격적으로 무늬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1세기 무렵에 이르러서라고 하지요. 무늬의 종류는 국화당초문과 연판문(펼쳐놓은 연꽃잎 모양의 무늬)처럼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나 점차 이를 고려 특유의 모양으로 변화시켜 돋을새김(양각)이나 오목새김(음각)으로 표현했습니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색 청자의 완성과 함께 여러 가지 무늬가 다채

김정희 ‘자화상’,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6]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내가 아니라 해도 나다. 나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하늘 궁전의 여의주가 주렁주렁한 데 누가 큰 여의주 앞에서 모습에 집착하는가. 하하. -과천 노인이 스스로 짓다(謂是我亦可 謂非我亦可 是我亦我 非我亦我 是非之間 無以謂我 帝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呵 - 果老自題)” 이는 추사 김정희 <자화상>의 ‘과로자제(果老自題)’란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추사는 이 자찬을 통해 자신의 얼굴 모습에 담긴 내면의 실제 모습을 봐야지, ‘겉모습이 자신과 닮았느냐, 아니냐?’라는 시시비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화상은 조선시대 정통 초상화와는 달리 추사의 평상시 모습입니다. “과로(果老)”라고 한 것처럼 그는 늘그막을 보냈던 과천시절 이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림 윗부분의 자찬 ‘과로자제(果老自題)’는 다른 종이에 쓴 것을 오려 붙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자화상을 추사가 그렸다는 명확한 증거가 그림 그 자체로서 없다고 하며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전(傳) 추사 자화상>이라고 합니

1920년 오늘, 봉오동전투서 독립군 대승 거둔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0년 6월 7일은 우리 독립군 부대들이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여 크게 무찌른 날입니다. 3.1만세운동 이후 무장 독립전쟁을 벌이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는데 만주 일대에서는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광복군 총영 등 50여 개의 크고 작은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어 국내 진공작전을 벌였습니다. 특히 1920년 6월 4일 독립군 홍범도ㆍ최진동 부대의 1개 소대가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 1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를 습격하여 격파하였지요. 이에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1개 중대를 출동시켜 반격전을 전개하였는데 독립군사령부는 1개 소대를 삼둔자 서남쪽 봉화리에 매복시킨 다음 일본군을 매복한 곳으로 유인하였습니다. 6월 6일 아침 10시 독립군은 100m 고지에서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일본군 60명을 사살하였지요. 이렇게 되자, 일본군은 보병 및 기관총대 1개 대대를 출동시켰습니다. 그러자 연대장 홍범도는 직접 2개 중대를 이끌고 서남산 중턱에 자리 잡아 일본군의 선봉이 봉오동 어구를 통과하도록 유도한 다음 일본군 주력 부대가 독립군이 잠복한

오늘은 발등에 오줌 쌀 만큼 바쁜 망종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아홉째 망종입니다. ‘망종(芒種)’이란 벼ㆍ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인데 이 무렵 농민들은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만큼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은 이즈음의 풍경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라도지방에서는 망종 날 ‘보리 그을음’이라 하여 아직 남아 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을음을 해먹으면 이듬해 보리가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또 이 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망종보기’라 해서 음력 4월 안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망종이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어 망종 안에 보리를 거두어들일 수 없다고 했는데 올해는 망종이 음력 4월 23일인 덕에 보리농사가 잘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망종 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기와지붕을 아름답게, 기와 장인 “제와장(製瓦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2]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나라의 국가무형문화재에는 제91호 “제와장(製瓦匠)”도 있습니다.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을 말합니다. 기와는 건물의 지붕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덮어 씌워 물에 잠기는 것을 막고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밑에 있는 나무가 썩는 것을 막는 동시에 건물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지요. 기와는 옛날엔 꾸미는 효과와 더불어 권위와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기와의 역사는 기원전 2∼1세기 무렵 들어와 차츰 전국 곳곳에 퍼져 지금에 이르렀지요. 기와는 평평하고 넓적한 모양으로 지붕의 기왓골을 만들어주는 암키와와 지붕의 기왓등을 형성하는 반원통형의 수키와가 있습니다. 부속장식 기와로는 암막새(암키와 끝에 붙은 무늬가 새겨진 네모꼴의 기와)와 수막새(수키와가 쭉 이어진 끝에 붙인 운형 또는 타원형의 기와), 귀면기와(도깨비 무늬가 새겨진 방패 모양 기와), 치미(鴟尾, 용마루 양 끝에 높게 붙이던 장식기와), 용두(龍頭, 용머리 모양의 장식기와), 망와(望瓦, 지붕마루 끝에 세우는 우뚝한 암막새) 등이 있지요. 기와를 만드는 공정은 찰진 진흙으로 된 점토를 물과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모골(模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