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주도 한림읍 일성제주비치리조트 앞 바닷가를 산책하다 보면 글씨가 마모되어 ‘환회장성’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팻말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바다를 둘러싸서 쌓은 긴 성’이라는 뜻의 ‘환해장성(環海長城)’입니다. 바닷가의 만리장성이란 뜻으로 '고려장성'이라고도 부르는 환해장성은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삼별초, 왜구, 이양선 등)을 막기 위해 바닷가 요소요소에 돌을 쌓아 만든 방어 시설입니다. 환해장성은 고려 시대(1270년 무렵)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고려 관군이 처음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계속 보수하고 넓혀 쌓았는데 현재 제주도 전역에 약 120km에 걸쳐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요. 세월의 흔적 탓에 글자가 잘 안 보이지만, 그 돌담은 즈믄 해 동안 제주 바다를 지키던 선조들의 땀이 배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환해장성 안에는 ‘배령연대(盃嶺煙臺)’라는 횃불이나 연기로 소식을 전하면서 통신 시설로 쓰이던 문화유산도 있습니다. 배령연대 위에 올라 보면 금릉 바닷가 전체를 바라볼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북면(東北面) 길주(吉州) 명간령(明間嶺)의 잉읍암(仍邑巖)에 돌이 있는데, 그 우는 소리가 종소리와 같았다. 사신을 보내어 해괴제(解怪祭)를 지내게 했다.” 이는 《태종실록》 3권, 2년(1402) 1월 1일 자에 있는 기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만도 무려 1,223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옛사람들은 '해괴제'라는 제사를 지내 신들을 달래려고 했지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지질ㆍ해일 같은 재앙과 부엉이가 울 떼에 해고제를 지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물론 노루나 표범이 한양 도성 안에 들어오거나 벼락이 떨어져 사람이 죽었을 때 또는 바닷물이 붉어지는 적조현상이 생겼을 때도 해괴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이 다섯 달린 소가 태어나거나 나흘 동안 맷돌 가는 소리가 나도 해괴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 현종 14년(1023) 5월 조에 “금주(金州:김해)에 지진이 있었다. 이때부터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해괴제 지내기 시작했다.”라는 기록을 보면 이미 고려 때부터 해괴제는 시작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선 성종 때에 보면 “이달 9일에 경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며,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입니다. 곡우란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지요.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속담이 전합니다. ‘토박이말바라기’에서는 이 아름다운 날을 '낟알비'라고 다듬어 부르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을 가리키는 '낟알'에 '비'를 더해 만든 말이지요. 이름만 들어도 포슬포슬 내리는 비가 논밭의 낟알들을 포근히 감싸안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었습니다.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지요.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또 이날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데 땅의 신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곡우 무렵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