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8 (일)

  • 맑음동두천 11.1℃
  • 맑음강릉 13.4℃
  • 맑음서울 10.1℃
  • 구름많음대전 10.0℃
  • 구름많음대구 11.6℃
  • 맑음울산 11.7℃
  • 맑음광주 12.0℃
  • 맑음부산 12.3℃
  • 맑음고창 11.5℃
  • 맑음제주 14.6℃
  • 맑음강화 10.0℃
  • 구름많음보은 9.5℃
  • 흐림금산 10.0℃
  • 맑음강진군 13.5℃
  • 구름많음경주시 11.9℃
  • 구름조금거제 13.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어싣기(연재)

전체기사 보기


‘원스푸드 거리’가 무슨 뜻일까?

한국인을 위한 간판에 영어로 잘난 체하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5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방식의 변화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을 때에 반찬을 자기 젓가락으로 집지 않고 분배용 젓가락으로 자기 접시에 옮긴 후에 자기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 젓가락과의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은 먹다 남은 반찬, 곧 잔반을 어떻게 처리할까? 우리가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는 잔반을 재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나 개인이나 어느 정도 잘살게 되면서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고 그냥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잔반 재사용에 대해서 법적으로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나 조사해 보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2009년 7월 4일부터 잔반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때 15일 영업정지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생과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세 가지 유형의 식재료에 대해서는 재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1. 조리하지 않아 씻은

윤여정의 유머가 세계를 넘다

더듬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고도의 수사법을 담은 수상소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윤여정씨가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이 단연 화제다. 도하 신문들이 인용하는 그 소감은 이랬다. 신문 ㄱ “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 상은 고상한 체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매우 행복하네요.” 신문 ㄴ “이번 시상식이 특별히 고마운 이유는 고상한 체하는 영국 사람들이 나를 좋은 배우로 알아봐 줬기 때문입니다” 방송 ㄷ "모든 상이 의미가 있죠. 하지만 이번 상은 영국인들, 그러니까 고상한 척하는 걸로 유명한 당신들로부터 받은 상이어서 의미가 크네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이 상을 '고상한 체(척)'하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는 소감인 것이다. 그런데 맨 처음 수상소감을 전한 어느 언론은 '고상한 영국인들로부터'라고 해서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이 아니라 고상한 영국인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다들 '고상한 체하는‘으로 바뀌어 전하고 있다. 우리 언론만을 보고 도대체 '고상한 체'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윤여정씨의 영어소감을 확인해보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Thank you so much for this award. Every

장염과 괴사성 장염

신생아들에게는 세포가 죽어가는 괴사성 장염도 있다. [한방으로 알아보는 건강상식 82]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자잘한 잔병치레를 많이 하게 된다. 가장 빈번한 질환은 감기와 체기이며 여기에서 더 진행되면 비염과 장염으로 발전되어 아이들을 괴롭힌다. 일반적으로 장염이라고 하면 범위가 넓은데 한방에서는 설사와 이질로 구분하여 치료하였으며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 가장 큰 질환 가운데 하나로 한의사 선배님들이 많은 노고를 겪었다. 장염은 급성 장염과 만성 장염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증상은 급성 장염이 심하게 드러나고 만성 장염은 증상의 정도는 약하나 치료가 수월하게 되지 않는다. 급성 장염은 체기에서 출발한다. 급성장염은 장 점막의 급성염증으로서, 급성위염에서 출발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원인도 급성위염과 비슷하며, 폭음, 폭식, 복부의 냉각, 부적당한 음식물이나 음료수, 대장균과 바이러스의 감염, 약의 과다복용 등에 의해 일어난다. 이 밖에 알레르기성의 원인이나 전신성 질환(요독증 ․ 암 등)의 한 증세로 나타날 때도 있다. 설사와 복통이 주요 증상이고, 복부 불쾌감ㆍ오심ㆍ구토를 일으키며, 심하면 발열이 있다. 설사는 하루에 1~10회에 이르고, 대장으로 파급되었을 때는 설사의 증상이 심하다. 변은 죽 또는 물 모양이고

스티브 잡스와 유한한 세상

자신을 내려놓았을 때 진정한 삶의 의미가 보여 [정운복의 아침시평 81]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나갑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만든 혁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그는 돈이 없어 사과밭 옆 창고를 빌려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명이 애플이고 먹다 만 사과로 로고를 쓰게 된 것이며 매킨토시라는 것도 사과 품종 이름의 하나랍니다. 최고 경영자의 길을 걷던 그는 매킨토시가 성능은 최고지만 비싼 값 때문에 매출이 실망스러웠고 그것을 빌미로 애플사에서 쫓겨납니다. 그 후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애니메이션에 주력합니다. 토이스토리는 그를 백만장자의 대열에 올려놓았지요. 그 후 애플사로 복귀한 그는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가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결국 그는 2011년 그의 꿈이었던 애플 신사옥의 착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뜹니다. 그가 남긴 참 많은 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富)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

동작동 국립묘지의 중종후궁 창빈안씨 무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라는 절도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6.25 전쟁 때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에 국군묘지로 설치되었지요. 그러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격을 높이면서 독립유공자, 순직 경찰관, 대통령 등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공이 큰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이런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무덤이 있습니다. 바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면 언뜻 “왜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모셨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창빈안씨의 무덤이 먼저 이곳에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국립묘지를 설치하던 당국자는 국립묘지와 상관없는 창빈안씨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고픈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오랜 세월 이곳에 먼저 터를 잡고 있던 임금의 후궁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일 뿐만 아니라 선조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곧 1567년 명종이 자식이 없이 죽자 후계 왕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명종비 인순왕후는 창빈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임금으

참인간 ‘아사카와 다쿠미’를 생각하다

세상을 뜬지 꼭 90주년이 되는 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 금요일은 4월 2일, 이날 망우리 한 묘역에 정장차림의 시민 50여 명이 모여있었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라는 한 일본인이 세상을 뜬지 꼭 90주년이 되는 날, 그를 알고 사랑하고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묘역을 찾은 것이다. 겨우 40년을 살다가 이 땅에서 간 이 사람은, 굳이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얽어매어 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삶을 추적해 보고 그 삶의 의미를 되살려보고 있기에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1891년생인 다쿠미는 먼저 와 있던 형 노리다카의 권유로 1914년에 한반도로 건너와 형과 친구인 야나기 무네요시 등과 함께 도자기나 소반 같은 한국의 공예를 연구하고 일본 치하에서 사라질 운명에 있는 이들 예술을 구하고 지키기 위해 조선민족작물관을 만드는 등 무진 애를 썼으며, 임업에도 정통해서 우리나라 전역의 녹화사업에 공헌했으나 과로로 인해 1931년 4월 2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짧은 문장으로 그를 다 알릴 수는 없지만 1920년대 이 땅에 와서 살면서 땅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이 땅의 헐벗은 산야에 심을 나무를 가꾸었고 미처 우리가 알아보

제비는 돌아왔건만 온다던 님은 소식도 없고

윤승희 <제비처럼>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3]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1)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분홍 아지랑이로 버디기재 마루가 가물거리고 강 건너 큰골 장끼소리 빨랫줄 타고 내 귀에 꽂히면.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마른버짐 얼굴에 뭉게뭉게 피어나고 기계충* 꽃 까까머리에 빨갛게 피어나면. “할머이, 제비는 운제 와?” 이제 제비만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나의 이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아 하늘님이 제비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라고 시킬 것 같았다. 그러면 뜬구름으로 떠도는 아부지도, 돈 벌러 서울로 간 어머이도 돌아와 온 식구가 오순도순 한 군데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똥 앉은 꽁보리밥은 더는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 제비가 와야 한다. 홍매화 지는 창가에서 내다보니 아직은 메추라기와 직박구리 같은 겨울새나 텃새들만 보이지만 밭가에 냉이꽃 피고 개구리 소리 들려오니 제비도 곧 오겠지. 그래야 제대로 갖춰진 봄이라 할 수 있겠지. 과연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지을까? 우리가 거들어 줄 방법은 없을까? 쑥국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며 눈이 동그래진 아내에게 숟가락을 손에 들고 아침부터 제비 얘기만 해댔다. (3) 그래, 어쩌면 그때 이미 나는 은하수를 건넜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