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활동한 승려 충담사(忠談師)는 향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삼국유사》에 그의 작품 두 편이 전한다. 하나는 임금의 덕을 찬미한 〈안민가(安民歌)〉, 다른 하나는 노모에 대한 기파랑 화랑의 효심을 노래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불교적 세계관 위에서 인간의 도리와 마음의 바른길을 노래하고 있어, 향가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수행과 교화의 문학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충담사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고사는 '차(茶)'와 연결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충담사는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남산 삼화령(三花嶺)에 올라 차를 달여 미륵불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임금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하자, 충담사는 “나는 항상 부처에게 차를 올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며 산에서 내려와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그의 덕행을 기려 국사(國師)로 삼으려 하였으나, 충담사는 이를 사양하고 수행자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 짧은 일화 속에는 신라 시대 차문화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차는 오늘날처럼 일상의 음료라기보다, 불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물이자 수행자의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조선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조선인의 마음속 깊은 곳을 뚫어보고 있는 것만 같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정부가 잘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여기 와 있는 외국인들이 비행을 저질러도 그들을 손님으로 여겨 모른 척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서양인들은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선인들을 겁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엔 조선민족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침략이라도 당한다면 그들은 끝장을 보고 말 겁니다. (1885.5.4 부모님 앞 편지) 일제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우리의 의병과 독립군은, 포크의 말대로 끝장을 보고 말 것이었다. 지난해 2025년(민기-民紀 원년)엔 내란세력에 의하여 또 침략을 당했다. 그리고 끝장을 보고 말았다. 포크는 그것을 ‘미리 보기’ 한 게 아닌가?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봉래각(蓬莱阁, 5km) : 신선이 사는 전설 속 누각, 강북 제일각(江北第一阁)으로 1,061년 북송 때 건립, 단애산(丹崖山) 해안 절벽에 건설한 중국 10대 명루 가운데 하나이다. 여덟 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넜다는 팔선과해(八仙過海) 전설과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봉래'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불로장생약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며, 바다 위로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나,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고 불린다. 백운궁(白雲宮), 삼청전(三清殿), 용왕궁(龍王宮), 천후궁(天后宮), 미타사(彌陀寺) 등과 바다 그리고 해안 절벽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이다. 도교의 신선 사상이 품은 이상의 세계는 봉래, 여주, 방장으로 신선이 사는 섬이다. 봉래각에는 용왕신, 마조상(여자, 해신)을 주신으로 모셨고 또, 팔선전에는 8신선이 바다를 건넜다 하며, 주요 신으로 소동파, 여동빈을 모시는 전각이 있다. 도교는 신선처럼 살자는 뜻에서 화약과 연금술이 나와 불로장생을 기원하였다. 봉래각은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지 못하였는데, 이들의 정신적인 사상은 불교였지만, 불교의 이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