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짐을 챙긴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방랑벽을 조금은 건드리면서, 세월에 찌든 묵은 때를 벗겨 낸다. 가난에 취해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과연 바하의 선율이 스쳐갔던 얼굴이었을까? 동네가 높아 남보다 달빛을 먼저 받을 수 있다며, 아픈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던 아내여! 어제는 온종일 너의 분신을 잡으려 온 집안을 뒤적거렸지. 술래가 짐을 싸려한다. 나의 유년(幼年) 꼼짝 말고 있거라, 나의 유년 유채꽃밭 가로질러 잉잉거리는 벌통을 아쉬워 돌아보며, 죽어도 못 떠난다던 달 보고 빵을 그리던, 유년 아버지 꿈에서도 그리시던 마지막 이사를 하셨다 실성한 어머님이 퍼 올리시던 바닷물 속에 소라랑, 전복이랑, 미역이랑 그것이 아버지 피이며 살인 줄도 모르면서 노트도 사고, 연필도 사고, 우리 반에서는 처음으로 운동화도 샀다. “너마저 바다에 빼앗길 수 없다.” 첫 번째 이사가 시작되었고 “형, 홍수가 져도 걱정 없겠다. 우리는 높은데 사니까.” 노아의 방주처럼 서울 변두리를 떠다녔다. 밤새 설레던 꿈은 미지의 세계로 눈을 돌렸지만 잠들지 못한 우리의 영혼을 잠든 아내여, 아는가? 하나씩 얻음으로써 귀찮아지는 자유가 그립지도 않느냐? 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의 날씨를 보니 온 나라가 대체로 맑지만, 충청과 호남, 제주 하늘빛이 밝지 않다고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눈이 날릴 수도 있다고 하네요. 우리는 흔히 이런 날씨를 보고 "날이 흐리다"거나 "우중충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빗방울을 잔뜩 머금어 무겁게 내려앉은 저 하늘을 그저 '흐리다'는 납작한 말로 나타내기엔, 그 안에 담긴 긴장감과 분위기가 다 담기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럴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시던 말 '끄느름하다'를 꺼내 봅니다. '끄느름하다'는 '날이 흐리어 어둠침침하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말이 품고 있는 '기다림'의 정서입니다. '흐림'이 멈춰 있는 상태라면, '끄느름함'은 하늘이 참다 참다 곧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바로 앞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붙든 말입니다. 또한 이 말에는 '햇볕, 장작불 따위가 약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구름 사이로 힘없이 비치는 옅은 햇살을 볼 때도 쓸 수 있고, 잘 타지 않는 장작불을 볼 때도 쓸 수 있지요. 오늘 창밖이 끄느름하다면, 그것은 하늘이 찌푸린 게 아니라 땅을 적시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소식을 또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제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왔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시대의 시발점(始發點)'이라거나 '혁신의 계기(契機)'가 마련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 커다란 흐름을 그저 '시작되었다'거나 '계기가 되었다'는 딱딱한 한자어로 나타내고 말기에는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막막하던 미래가 뻥 뚫리는 듯한 그 벅찬 느낌을 설명하기엔 많이 모자라게 느껴졌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네 농부들이 논둑에서 쓰던 토박이말 '물꼬'를 떠올려 봅니다. '물꼬'는 '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좁은 통로'를 뜻합니다. '논꼬'라도도 하며 '진전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푸는 실마리나 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쓰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말 속에 들어있는 생명력 넘치는 심상입니다. '시발점'이 기계가 움직이도록 단추를 누르는 듯한 차가운 시작이라면, '물꼬'는 막혀 있던 논둑을 허물어 메마른 땅에 생명의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게 해 목마름을 가시게 해 주는 뜨거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