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젯밤 경기도 소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엄청난 기러기 떼가 서쪽에서 북쪽으로 낮게 날았다. 밤에 기러기 소리에 종종 잠을 깼다. 오늘은 꽤꽥거리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잦다. 정말 많은 기러기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조선인들은 기러기를 건드리거나 잡아먹지 않는다. 대신에 기러기를 잡아 집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안성장에 갔다. 규모가 매우 컸다. 족히 4천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군중이 나를 보러 밀려든다. 북새통 속에서 한 소년이 넘어지며 감을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등을 밟히고 진흙탕에 머리를 쳐박힌다. 사람들에 에워싸인 나는 앞을 볼 수 없다. 내게 적개심을 보이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랍다. ‘’쉿”, “제미”라고 외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천태만상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보인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무례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내 일꾼들이 몽둥이질을 해댄다. 소년을 후려치기도 하고 갓을 잡아채기도 한다. 나는 악당 같은 그들의 행동을 막느라고 힘들었다. 10시 42분 가까스로 장터를 벗어났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겨울의 묵직한 외투를 벗어 던진 대지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때, 지표면 어디쯤에선가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대지가 겨우내 품어온 뜨거운 생동감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봄의 지문(指紋)이자, 잠든 생명을 깨우는 고요한 합창입니다. 아지랑이는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세상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흔들어 놓습니다. 메마른 논둑길 위로, 혹은 보리밭 사잇길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딱딱했던 세상의 경계는 이내 부드러워집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지만,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그 움직임은 마치 대지가 추는 느릿한 춤사위와 같습니다.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원경(遠景)은 마치 덜 마른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고, 그 일렁임 속에서 세상은 잠시 현실의 무게를 잊은 채 몽환적인 꿈을 꿉니다. 아지랑이는 단순히 공기의 밀도 차이가 만들어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가운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 애쓰는 씨앗들의 거친 호흡이며,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며 숨 쉬는 안도감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땅속 깊은 곳에서 이미 봄의 맥박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햇살이 지면을 애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道)와 길 도가 진리면 길은 삶의 방향 (돌) 도가 추상이면 길은 구체 삶 (심) 로고스와 통하니 길 넓어져 (달) 넓은 길엔 드나들 문 없다네 (빛) ... 25.2.3. 불한시사 합작시 “도(道)”를 단순히 “길”로 번역하는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이해의 문제이다. 길은 분명 인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방향이며, 실천의 방식이고, 선택의 궤적이다. 그러나 도(道)는 그러한 길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질서이자, 모든 길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진리와 법칙에 가깝다. 이 점에서 “길”은 경험적이고 구상적이며, “도(道)”는 초경험적이며 근원적이다. 길은 걸어가야 비로소 생겨나지만, 도는 걷기 이전에도 이미 그러한 길이 가능하게 하는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를 길이라 옮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것을 지상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이해하게 되며, 그 본래의 심연적 의미는 일정 부분 가려지게 된다. 이는 곧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의 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문제와 직결된다. 도를 말할 수 있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고정된 개념이 되어버리고, 그러한 개념화된 도는 더 이상 “상도(常道)”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