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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위한 건강법 숙면(동면)

바다에서 나는 모든 어패류가 겨울의 제철음식 [한방으로 알아보는 건강상식 20]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세상의 모든 동식물은 진화와 적응의 과정을 거쳐 생존과 건강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터득하고 있다. 그 예로 겨울의 동면과 열대지방에서 건기에 취하는 하면이 있기도 하다. 흔히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사람들과 같은 종인 포유류 가운데 곰의 동면이,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한 생존 수단의 예이다. 온대지방은 사계절이 있고 열대지방에는 우기와 건기가 있다. 온대지방에서 겨울에 동물이 살기 어렵듯이, 열대지방에서는 건기가 되면 반사막화되는 지역에서 동물들이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먹이와 물이 부족하고 극심한 온도차로 인해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힘들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대지방에서는 동면을 하고, 열대지방에서는 하면을 하는 것이다. 곧 동ㆍ하면은 험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명체들의 슬기로움이다. 1. 인간의 기본 모습은 동물 인간의 유전자는 원시인의 생활이 바탕이라고 볼 때 우리 역시 동면과 같은 상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겨울에도 음식을 얻어가며 살아온 생활습관을 유지해 왔다. 그 덕에 길고 긴 휴면상태를 견디기 위해 곰처럼 효과적으로 피하지방축적을 할 능력도, 피하지방을 이용해서 오랫동안 먹지 않고 견디는 능력도

꽃씨를 주는 로전사

꽃씨앗! 참된 삶의 가치여!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9]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야, 요것들을 보지, 여보세요, 어서 나와보세요. 네?!” 점심식사 휴식 짬에 소파에 걸터 누웠던 나는 앞뜨락에서 떠들어대는 안해의 목소리에 끌려 뜨락에 나섰다. 안해는 손바닥만큼 하게 뚜져놓은*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길 좀 보시라는 데두요.” 안해는 응석을 부리듯 나의 손을 끌어당겼다.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가뭇가뭇한 토양을 뚫고 파란 바늘 끝 같은 것들이 뾰족뾰족 올려 밀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벌써 햇빛을 받아안으려는 듯 여린 두 팔을 펼치고 미풍에 제법 하느작이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 어떤 새 생명의 탄생을 맞는 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요것들이 모두 꽃으로 활짝 필 때면 우리 집 뜨락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한해는 나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순간 나의 눈앞에는 꽃 씨앗을 가져왔던 낯모를 로인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 새살림을 갓 꾸린 우리는 날듯한 기분으로 ‘마당을 공근다’*, ‘창문 유리를 닦는다’ 하며 뻔질나게 돌아쳤다. “허 허, 새집들이에 기쁘겠군.” 일손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보니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새하얗게 센 낯선 로인 한 분이 돛천멜가방*을

'졸가리'가 서지 않는 일은 없으시죠?

[토박이말 맛보기1]-90 졸가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날이 추워지니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는 게 더 어려워집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집에서 배곳까지 멀지 않아 걸어가는데 어제는 좀 늦어서 뛰듯이 갔습니다. 그런 걸음에 제 스스로 일으킨 바람에 눈물이 더 많이 나와서 슬프게 아침을 맞았습니다.^^ 5배해 아이들 배움을 돕는 날이었습니다. 어제 맛보여 드린 토박이말이 ‘적바림’이었지요. 아이들에게 뜻을 풀이해 주면서 타박을 좀 주었습니다. 지난 꼲기 열매(평가 결과)를 보니 잘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읽기는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해서 틀린 아이들이 많았지요. 그건 우리말 낱말힘(어휘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보는데 우리말 낱말밭을 넓히는 데 힘을 쓰는 사람은 없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데 때새(시간)와 돈을 쓰기에 바쁜 우리 모습을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큼 와 닿는 이야기였나 봅니다. ‘메모(memo)’는 알지만 ‘적바림’을 모르고 살고 있으며 ‘예(例)’와 ‘이그잼플(example)’은 알지만 ‘보기’는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게 참일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옛말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토

'광야', '계승'을 옛날 배움책에서는 어떻게?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113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113 벌판 물려받다 받아들이다 자라나다 더불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 4284해(1951년) 펴낸 ‘우리나라의 발달 6-1’의 53, 54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53쪽 셋째 줄에 ‘벌판’이 있습니다. ‘광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옛날 배움책에서는 이렇게 ‘벌판’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셋째 줄과 넷째 줄에 걸쳐 ‘고려의 전통을 물려받으며’에서 ‘물려받으며’는 요즘 책이라면 ‘계승하였으며’라고 했지 싶습니다. 이런 말이 다들 많이 봐서 더 낯이 익으실 것입니다. 다섯째 줄에 있는 ‘받아들이어서’도 많은 곳에서 ‘수용하여서’라고 쓰기 때문에 더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계승하다’, ‘수용하다’ 보다는 ‘물려받다’, ‘받아들이다’는 말이 훨씬 쉬운 말일 것입니다. 다섯째 줄에 이어서 나오는 ‘여러 모로’는 ‘다방면의’라고 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여섯째 줄에 ‘독특한 문화가 자라나서’에서 ‘자라나서’라는 말을 쓴 것을 놓고 볼 때 옛날 배움책에서 참 쉬운 말을 썼다는 것을

내겐 ‘천석고황이’란 고질병이 있다네

구름 따라 나갔다가 새들을 따라 돌아오는 한가함 [솔바람과 송순주 2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복잡한 도심을 떠나서 북한산자락으로 이사 온 지도 7년이 지나 벌써 8년째다. 우리집에서 언덕을 넘어서면 한옥마을이다. 이사 올 때에 허허벌판이었는데 2015년부터 한두 채 한옥이 시범적으로 들어서더니 지금은 한옥마을이 한옥 양옥으로 꽉 찼다.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에 눈을 의심할 정도다. 이 근처로 이사 온 것은 옛사람들이 즐기던 풍류, 곧 어지러운 속세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산 가까이에서 맑은 공기를 숨 쉬며 자연 속에 평온하고 건강한 삶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북한산이 바로 눈앞에 있고 크고 작은 계곡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아갈 수 있는 곳이어서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묘사한 대로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가고 높다란 언덕을 거닐어 볼만한[尋壑經丘] 운치와 구름 따라 나갔다가 새들을 따라 돌아오는[雲出鳥還] 한가함을 즐길 수 있다.” ​​ 집 거실에서 가까이로는 작은 산등성이나 가파른 언덕, 조금 멀리로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푸른 소나무로 덮이고 군데군데 바위가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산의 힘찬 모습이 바로 보인다. 공자가 말했듯 “어진 이는

'자리끼'를 언제 어디서 보셨을까요?

[토박이말 맛보기1]-88 자리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아침에는 옷을 알맞게 입지 못해서 좀 떨었습니다. 밝날(일요일) 낮에 밖에 나갔을 때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갔더니 더웠던 게 생각이 나서 나름 셈을 해 보고 입었는데 그랬습니다. 배곳(학교) 안에 들어가 따뜻한 바람을 틀어 놓았는데도 한나절 동안 따뜻하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지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춥다고 하셔서 제 몸이 마뜩잖은 것은 아니라 낫다 싶었습니다. 아침에 배곳에 들어서면서 보니 밝날에 그려 놓은 놀이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놀이판이 눈길을 끌기도 했겠지만 없던 새로운 놀이판이 아이들 몸을 끌어당겼을 겁니다. 놀이 수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놀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신 던지기 놀이를 하느라 차가운 바닥에 맨발로 서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다만 아직 물감이 다 마르지 않은 곳이 있어서 하루만 참아 달라고 했습니다. 뒤낮(오후)가 되자 날씨가 좀 풀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도리도 풀고 웃옷을 살짝 벗어도 견딜 수 있었지요. 배해끝(학년말) 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철이 돌아왔습니다. 거기다 경남갈배움한마당(경남교육박람회)에 겪배움자리(체험부스)를 배곳 이름을

고모 이름은 ‘큰엄마’였다

이불을 쓰고 장밤을 울었던 큰엄마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28]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사람마다 이름이 다 있건만 둘째 고모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두 큰엄마라 불러 고모의 이름은 결국 큰엄마였단다. 엄마에겐 이상 시누이 셋이 있었는데 둘째 시누이는 중국에서 살다가 해방 뒤에 조선 함경북도 청진군 온성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하루 엄마는 “이제 며칠 뒤에 우리 고모네 집에 가보자. 그 집엔 고모가 두분 계시는데 큰고모가 너희 아버지의 누님이시란다.”. “예? 그럼 한 분은 누구시죠? 고모라면서……” 하여 엄마는 “넌 아직 어려서 말해도 잘 모를 것이니 더 묻지 말고 그저 례절만 지켜주면 된다.”라고 하셨단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단다. 과연 며칠 뒤(1959년 겨울방학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도문해관을 걸쳐 조선 온성으로 갔단다. 온성고모는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았는데 훤칠한 키에 쌍겹진 두 눈, 말쑥한 얼굴은 이미 60살을 넘으셨다는 고모의 미모를 감추지 못하였더라. 고모는 한겨울 아침에 찾아간 나의 꽁꽁 언 두 손을 자기 가슴속에 넣어 녹여 주시면서 “너 많이 컸구나! 아버지 없이 막내로 서럽게 보냈겠구나!” 하여 난 불시에 눈물을 뚝 떨구면서 고모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단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가 보더라. 작은고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