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동경 주재 영국 엘리트 외교관 사토우(Satow)가 고베 주재 동료 외교관 스톤(Aston)에게 보낸 1881년 8월 23일 자 편지다. “이동인이 나가사키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그는 정말로 미로운 인물이니까요. 만일 목숨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기 나라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겁니다. (I hope the information that Tong-in has arrived at Nagasaki may prove to be correct, for he is really a very interesting man and if he can keep his head on his shoulders, pretty sure to make his mark in the history of his country.)” 사토우는 다음 해인 1882년 6월 12일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김옥균, 서광범 그리고 탁정식과 저녁식사를 하다. 그들은 매우 서글서글하고 입담이 좋다. 내가 아는 어떤 일본인보다도 훨씬 더 개방적이다. 이태리 피에몬트(Piedmont)인과 피렌체 사람이 대조적이듯이 그런 인상을 준다. 식사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1일 차 일자 : 2025년 4월 19일(토요일), 이동 거리 424km 인천 1공항 출발(oz 301) ~ 대련 도착(09:05~09:20) 숙박 : 단동중련대주점(丹东中联大酒店, 0415-233-3333) 잊힌 독립군의 흔적을 찾아서 여순감옥은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의사를 비롯해 수많은 이름 없는 항일 독립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슴 아픈 현장이다. 나는 세 번째 답사임에도 올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우리가 이만큼 잘 사는 것도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다. 비사성, 아쉬운 발길을 돌리다 고구려 비사성(卑沙城)이 있는 대흑산을 찾아가는 길은 산 입구부터 운동하는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버스가 산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끼어 산성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도로에서 꼼짝할 수 없어 답사를 포기하였다. 나는 이곳을 두 번 답사하였지만, 이번에는 오르지 못하여 무척 아쉽다. 산성 입구에 있는 버스 주차장에서 멀리나마 산꼭대기의 비사성과 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암흑 속의 북한 황금평과 신의주 동항시와 단동시를 잇는 압록강 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날이나 요즘이나 오란비철에 여러 날 비가 오면 겪게 되는 어려움이 바로 숨씨 가운데(공기 중에) 물이 많은 것과 이어지기도 하죠.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빨래가 잘 안 마르는 것도 그렇고 벽지가 떨어지기도 하고 사이사이에 곰팡이가 자라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요즘이야 뽀송이(제습기)나 찬바람틀(에어컨)으로 말리면 되지만 옛날에는 그런게 없었으니 아궁이에 불을 넣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아궁이에 때는 불을 ‘군불’이라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신 분들은 어릴 때 "군불 넣어라.", "군불 좀 때야 겠다."는 말을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오란비(장마)철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 방을 데울 때에도 군불을 땐다는 말을 하는데 처음에 ‘군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불을 땐다고 해도 될 텐데 왜 ‘군불’이라고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요 그냥 불을 땐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두 가지 말을 가려서 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불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불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값진 일은 먹거리를 익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밥을 할 때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