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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첫 영화관 ‘경성고등연예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농상공부길(農商工部通り)에 신축 낙성한 경성고등연예관에서 (2월) 18일 관민 수백 명을 초대하여 활동사진 개장을 피로한다.” 이는 1910년 2월 18일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이 경성고등연예관(高等演藝館)은 일본인 와타나베가 세운 조선에 처음 등장한 영화관입니다. 경성고등연예관은 현재의 을지로2가 KEB하나은행 본점 옆 황금정 63통 7호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극장은 프랑스의 파테영화사에서 수입한 당시로써는 각종 첨단 영사장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내부는 이른바 ‘기석’(奇席)이라는 일본식이었는데, 2층은 다다미, 아래층은 긴 의자로 배치하였지요. 수용인원은 6백명 정도였고, 일본인 영사기사를 영화상영을 위해 고정배치 하였습니다. 특등석 1원, 1등석 50전, 4등석 10전으로 비싼 입장료였지만 경성고등연예관의 영화상영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하지요. 경성고등연예관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본격적인 영화전문극장으로 조선에 처음 선보인 것이었으며, 조선에 영화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만, 극장의 소유주가 일본인이며, 일본 자본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은 일본인이 조선의 영화시장을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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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배달겨레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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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세시풍속, 월견상극ㆍ개보름쇠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 또 하나의 명절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엔 초저녁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는데, 떠오르는 달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한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습니다. 또 대보름날 밤 달집태우기도 하는데,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 위에 쌓아 놓은 다음 소원을 쓴 종이를 매달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맞이를 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하지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가운데 ‘월견상극(月犬相剋)’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달과 개는 상극이란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정월 대보름날에 개에게 온종일 밥을 주지 않거나 혹은 저녁밥 한 끼만 주지 않습니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달의 정기를 먹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여자의 본질인 음력의 에너지원은 달이어서 개에게 밥을 주는 여자는 개에게 자기의 음력을 도둑질시키는 것으로 본 때문입니다. 월식도 옛사람들은 개가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또 다른 대보름 풍속으로 “개보름쇠기”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펴낸 《경도잡지(京都雜志)》에, “

항일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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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나리'라는 말을 아신다면 여러분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아침에는 까닭 없이 자꾸 마음이 바빴습니다. 뭔가 잊은 것 같고 뭔지 할 것을 안 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요. 때알이 소리에 맞춰 일어났기 때문에 늦을 일도 없었는데 집에서 나가는 때는 여느 날보다 늦어 있었지요. 일을 마치고 수레를 쓸 일이 있어서 수레를 타고 갔습니다. 서둘러서 배곳에 들어서는데 낯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늘 수레가 서 있던 자리에 없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새해에 아이를 낳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난 엿날(토요일) 예쁜 아기를 낳았다는 반가운 기별을 들었습니다. 배곳(학교)을 옮겨온 아이들을 맞을 다른 사람을 불러 놓고 있어야 할 종이를 찾다가 늘 있던 분의 빈 자리를 새삼 느꼈습니다. 기쁜 마음을 이어줄 겨를도 없이 안친 일을 하다가 보니 하루가 다 지나 늦은 인사를 글로 갈음했습니다. 뒤낮(오후)에는 일꾼모임에서 나눌 이야깃거리를 만드느라 바빴습니다. 배해끝(학년말)이라 할 일이 많은데 일이 겹치다 보니 더 힘이 드네요. 마치자마자 이를 손보러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잇몸을 가르고 받침을 넣었는데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