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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예서에 능했으며, 독립운동 한 오세창 선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굳건한 신념으로 가지고 많은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을 키워낸 이가 오세창 선생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은 아버지 오경석에게 이어받은 골동서화 감식안과 민족정신은 그의 집안뿐만 아니라 전형필 등을 민족문화유산 지킴이로 만들어냈지요. 또 그는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펴냈는데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서화가에 관한 기록을 총정리한 사전입니다. “근래에 조선에는 전래의 진적서화(珍籍書畵)를 헐값으로 방매하며 조금도 아까워할 줄 모르니 딱한 일이로다. 이런 때 오세창씨 같은 고미술 애호가가 있음은 경하할 일이로다. 십수 년 아래로 고래의 유명한 서화가 유출되어 남는 것이 없을 것을 개탄하여 자력을 아끼지 않고 동구서매(東購西買)하여 현재까지 수집한 것이 1,175점에 달하였는데, 그중 150점은 그림이다.” 이는 1915년 1월 13일 치 ‘매일신보’에 ‘별견서화총(瞥見書畵叢)’이라는 제목으로 난 기사 내용인데 선생이 이렇게 동서로 뛰어다니며 골동 서화를 사들인 까닭은 조선왕조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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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릉’이라고도 부르는 덕흥대원군 무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창빈 안씨 무덤을 얘기하자니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무덤도 생각이 납니다. 덕흥대원군의 무덤은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상계동에서 덕릉고개를 넘어 남양주시 별내동으로 내려가다가 왼편에 있습니다. 고개 이름은 고개 근처에 덕릉이 있다고 하여 덕릉고개라고 합니다. 고개 밑에 3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이 있으니까, 이를 당고개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당고개는 당고개역이 있는 마을에서 수락산역쪽으로 넘어가던 고개를 말합니다. 당집이 많아서 당고개라고 한 것이지요. ‘덕릉’이라고 하면 왕릉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근처에 ‘덕릉’이라는 왕릉은 없습니다. 덕릉은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말합니다. 그런데 ‘릉’이라는 이름은 임금과 왕비의 무덤에만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덕릉은 정식 이름은 아닐 것인데, 어떻게 하여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덕릉(德陵)이라고 부르고, 또 고개 이름에 ‘덕릉고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여기에는 재미있는 야담이 스며있습니다. 추존왕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생전에 임금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임금이 되는 바람에 사후에 임금으로 추존되면 추존왕이라고 하지요. 이를테면 성종의 아버지 덕종, 인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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