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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은 윤동주 순국의 날, 일본서 추도행사는?

[맛있는 일본 이야기 47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다. 2년 전 필자는 후쿠오카 형무소 담장에서 마나기 미키코 씨와 이 노래를 불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후쿠오카지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인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의 대표다. 철창 속에서 머나먼 북간도의 고향땅을 그리며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했을 윤동주 시인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다. 오는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27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날이다.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를 들어 제국주의 일본은 젊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꿈 많던 청년의 죽음은 일본 땅 전역에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곳에 사는 사람들은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를 통해 윤동주 시인

이예의 헌신과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5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직의 안정은 생생지락으로 가는 길 직을 갖고 업정신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생생지락(生生之樂)이다. 세종 중기 이래 북방에는 여진족이 때를 가리지 않고 쳐들어와 도둑질을 일삼았다. 이러한 여진은 후에 정묘(인조 5년, 1627), 병자호란(1636)으로 큰 침공을 하게 된다. 그나마 세종이 이 때 변경을 정비해 둔 것이 오늘날의 국경이 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국경지대에는 주민들의 동요가 컸는데 그 원인은 국경 안쪽에 사는 사람들은 국경지대 가까이 가서 살게 하는데 있었다. 세종 25년 10월 24일의 기사를 참고해 보자. 함길도 도관찰사 정갑손에게 도의 인민을 5진에 입거(入居, 들어가서 머물러 삶) 시키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백성들이 동요하게 두는 것을 세종이 책망한 일이 있었다. “지금 들으니, 도내의 인민들이 저희들끼리 서로 떠들어대기를, 입거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집에 남은 장정들이 떨어져 나가 살기 때문에, 사람은 적고 힘이 미약하여 농사짓기가 어렵고, 사는 집의 정원과 울타리도 가꾸고 고치지도 않아서 살기가 날로 어려워진다고 하여 참으로 놀랬다. 어느 사람에게서 이런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는 일본의 ‘입춘’

[맛있는 일본이야기 47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월 4일)는 입춘이었지만 설날 연휴 중인 한국에서는 입춘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지나버린 느낌이다. 설날 연휴가 아니었더라도 특별한 입춘 행사가 없는 게 우리 풍습이긴 하지만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축을 붙이는 모습 정도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입춘에 대한 풍습이 남아있어 곳곳에서 입춘 행사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입춘을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행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 것이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어린 학생들 명심보감 막힘없이 읽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05]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책읽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송서ㆍ율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소리를 내어 음악적으로 읽는 방법이야말로 오래 읽는다 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암기에도 효과적이란 점, 서울시 문화재로 <송서와 율창>을 지정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지만, 지정이 되었다고 해서 해당 종목이 저절로 보존, 계승되는 것이 아니고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대책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열의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 가운데서도 송서ㆍ율창 분야는 전승자의 층이 엷어서 진승구조가 취약하다는 점, 이러한 종래의 인식을 뒤엎고, 송서ㆍ율창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보유자와 보존회원들은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는 점, 그 대표적인 활동들이 전국국악학 학술대회를 통한 학술적 가치의 확보, 정기 비정기 공연활동을 통한 관객확보, 보다 쉽고 재미있는 새로운 음반의 제작, 보존회의 확장을 통한 전승자의 교육, 2회에 걸쳐 개최했던 송서ㆍ율창 경연대회 등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주에 이어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관련 이야기들을 계속하기로 한다. 세 번째 맞이한 경연에는 전국에서 참가한

생업을 강조한 조선의 임금 세종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생각하는 정치를 펴는 세종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묻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위에 관계되지 않은 일이라면 독단을 내릴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이 세종이 임금으로서 직에 임하는 자세이고 그 근간에 백성을 생각하는 정신이 업정신이다. 오늘 날 우리는 각기 직(職)을 가지고 일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영업이고 농사직이다.(현재 우리나라 직업의 종류는 1만 4천여 개다. 2013년 기준) 직은 맡은 바 일이다. 그런데 일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데 이것이 업정신이다. 업정신은 몸과 정신이 합쳐 이루어지는 의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칭 직과 업을 합치어 직업이라고 부른다. 많은 청년과 50대가 직이 없다고 산에 오르거나 SNS를 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결국 하차하게 됐다.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사람이 직을 찾고만 있을 뿐 업정신 이야기는 빠져 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무슨 일을 왜 하고자하며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하는 생활에 대한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세종은 직과 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직과 업을 강조한 세종 실록의 기록에는 먼저 직의 종류 그리고 백성이 매일 먹고

혹부리영감 설화 담긴 ≪우지습유모노가타리≫ 한국어 번역본 나와

일본 중세 고전 ≪우지습유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한국어 번역본 출간 [맛있는 일본이야기 473]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옛날 히에이산에 있던 가난한 승려가 부처님의 계시를 꿈속에서라도 보기 위해 구라마사(鞍馬寺)에 기도하러 갔다. 그러나 7일간 정성껏 기도를 해도 답이 없자 다시 7일을 연장하고 또 다시 100일 동안 기도 정진에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부처님은 나타나지 않고 사자(使者)가 나타나 기요미즈사(淸水寺), 가모신사(賀茂神社) 등으로 자꾸 기도처를 옮기라고 해서 히에이산 승려는 기대를 걸고 사자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계시를 받는데(작품에서는 계시자가 부처라는 이야기는 없다) 승려에게 흰종이와 쌀을 내려주겠다는 소리를 들은 승려는 ‘그렇게 힘들게 기도를 했는데 고작 흰종이와 쌀이 무엇이냐 싶어 원망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흰종이와 쌀은 생각과 달리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이는 일본 중세의 설화집 《우지습유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제6권 제6화 ‘가모신으로부터 신전에 바치는 흰종이와 쌀 등을 받은 이야기’의 요약이다. 이야기 끝에는 ‘신과 부처에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기도 정진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말이 붙어 있다. 이와 같은 설화가 197화 수록되어 있는 일본 중세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송서와 율창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0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퉁소 신아우보존회의 두 번째 정기 연주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퉁소 신아우는 함경남도가 무형문화재(보유자 - 동선본)로 지정한 종목이며 인접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 분단 이후 퉁소 음악이 위기에 처하자, 뜻있는 국악인들이 한국퉁소연구회를 결성, 단절의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퉁소는 과거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연주되었지만, 남쪽보다는 북쪽이 더더욱 활발했으며 연주회는 거문고와 퉁소의 2중주, 김진무의 함경도 민요창, 퉁소 음악과 북청의 사자놀음 등이 청중의 호응을 받았다는 이야기, 평안도 황해도의 서도소리가 인천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처럼, 함경도의 퉁소나 신아우 음악은 그 아랫마을인 강원도에서 보존, 전승해 나가다가 함경도 지방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종로구 있는 조계사 내의 한국불교역사 문화기념관에서는 송서ㆍ율창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공식명칭은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이었다. 국민 모두가 글을 읽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한 행사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