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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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일왕은 148살을 살았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48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으로 《역사독본(歷史讀本)》이란 책이 있다. 1977년 봄호(春號)로 펴낸 이 책은 일본의 신인물왕래사(新人物往來社)에서 나온 것으로 표지에는 《역사독본》 창간2호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우연찮게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가에서다. 특별히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역대천황124대’라는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표지에는 122대 메이지왕(明治天皇)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인다. 일본고대문화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일본왕(天皇)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이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고 있다. 약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역대 일왕가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책으로 일왕의 뿌리부터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명치왕(1868~1912) 때까지 일본인들도 모르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특별히 권두 특별기고문은 ‘일본역사와 천황(日本歷史と天皇)’라는 제목으로 도쿄대학 사카모토 타로우(坂本太郞권) 명예교수가 썼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집필자들은 와세다대학의 미즈노 유(水野祐), 도쿄대학의 야마나카 유타카(山中裕),

더 쉽고, 재미있는 송서ㆍ율창을 기대한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 음악 이야기 41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궁중음악의 수제천과 같은 불규칙 장단, 그리고 무장단으로 불러 나가는 송서ㆍ 율창에서의 숨자리와 교감(交感)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교감이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세계로 오랜 경험을 축적해 온 연주자들의 감각이 아니고는 이러한 연주나 제창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제까지 수차에 걸쳐 송서나 시창이 어떤 장르의 성악이고,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소리인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우선, 느린 박자로 부르는 무장단의 소리라는 점, 하나의 악구가 숨의 단위가 되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소리라는 점, 창법은 깊은 소리를 내는 육성(肉聲)과 고음의 가성(假聲)창법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 선율 형태는 장인굴곡의 가락과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하고 있는 점 등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조창의 형태와 유사한 노래임으로 단순히 타인의 소리를 듣고 따라 부르기만 되는 노래가 아니라, 정가의 창법이나 호흡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시창은 한문으로 지은 시(詩)를 노래하는 것으로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이나 의미를 이해하고 난 뒤에 불러야 하기에 누구나의 접근이 용이치 않았던 지식인 계층의 가락이었던 것

일본인의 연호 사랑과 한국의 단기 버리기

[맛있는 일본이야기 48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는 지금 새로운 일왕의 연호(年号)인 '레이와(令和)'가 발표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제(1일) 오전 11시,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새로운 연호 발표가 있었던 시각 NHK생중계는 19%의 높은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일본인들의 연호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이로써 일본은 지난 1989년에 시작된 '헤이세이(平成)'시대를 마감하고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번에 새로 쓰게 되는 연호는 서기 645년의 다이카(大化)로부터 시작해서 248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2019년은 레이와(令和) 1년이 된다.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는 일본 고전인 《만엽집(萬葉集)》에서 인용해서 지은 것이다. 그동안은 대개 중국 고전에서 따다가 만들었는데 견주어 이번에는 일본 고대의 문학작품에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의 뜻은, 《만엽집》의 “梅花の歌三十二首の序文”에서 인용한 것으로 ‘영월(令月, 축하하고 싶은 달)의 부드러운 바람과, 매화의 향기를 찬양하는 노래 구절’ 속에서 고른 것이다. 뜻이 무엇이든 간에 대대로 중국 고전에서 연호를 짓다가 올해는 자국의 문학작품 속에서 고른 낱말로 연호를

세종의 마음, 친민(親民)ㆍ련민(憐憫)ㆍ성가련민(誠可憐憫)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희생과 불윤 세종은 신하들에게 백성을 위해 헌신하라고 요구했다. 신하들이 사직하겠다는 데 대해 그 대답은 ‘허락하지 아니하다’의 ‘불윤(不允)’으로 나타난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직이 아닌 업의 정신을 가지도록 요구했다. 직은 역할로 직무나 직책이다. 그러나 관직이 높은 사람들은 사직을 청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프면 이따금 나와도 된다 하고, 또 약을 주었다. 자신은 온 몸이 종합 병동이 되어 있어도 일을 한다. 누가 자신과 견줄 수 있겠는가. 정승은 헌신이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세종 13년에 이조 판서 권진이 글을 올려 사직하기를 청한다. 불윤(不允) : “신은 나이 75살로 늙어 행동이 둔하고 정신도 맑지 못하여, 하는 일마다 실수하고 움직일 때마다 허물만 얻으므로 청의(淸議)에 부끄럽사온데, 더구나 농사철을 당하여 한재가 심하오니 실로 불초한 신이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진 이의 등용을 막습니다. 청컨대 신의 벼슬을 거두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세종실록》 13/5/17) 세종 18년 북방의 군무를 맡고 있던 김종서가 상제를 마치게 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다. “신이 어머니가

문화재법이 없던 때, 오구라는 조선에서 신났다(1)

[맛있는 일본이야기 48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유물유적 조사를 시작하여 1915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1차 조사를 했다. 이 시기는 고적이나 유물에 대한 특별한 현지 보존 또는 관리 규칙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적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요 보물들은 발견자가 사적으로 슬쩍 챙겨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누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문화재급 보물들은 일제침략기에 무법천지로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보물급 유물들을 마구 가져간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오구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에 관련이 큰 인물이다. 그는 골동상, 경매, 도굴 등 닥치는 대로 조선의 문화재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다. 오구라는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이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취직했다. 철도회사 취직을 계기로 그는 현지시찰과 사업구상을 하면서 자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전기사업권을 거머쥐면서 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 성공을 거둬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모이자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에 눈을 돌린다. 1920년 무렵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박자가 아닌 또 다른 시간의 단위, 『숨』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송서나 시창의 음악적 분위기는 정가와 유사하나, 가성(假聲-falsetto)창법을 허용하는 점에서 보면 시조나 가사창과 가깝다는 점, 가성창법이란 속소리를 쓰는 변칙의 창법으로 남창가곡에서는 금기시 된 창법이란 점, 발음법에서도 하노라, 하여라, 하느니, 등은 모두 허노라, 허여라, 허느니, 등의 음성모음으로 바꾸어 장중미를 강조한다는 점, 송서나 시창의 불규칙 장단과 악구(樂句)의 단락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호흡, 즉 <숨자리>라는 점, 등을 이야기를 하였다. 호흡은 비단 정가나 민요, 송서, 율창, 등 일부 성악에서만 강조되는 음악적 조건은 아니다. 성악 전반은 물론이고, 기악합주곡에서도 매우 중요한 음악적 요소이다. 특히 장단의 흐름이 일정치 않은 음악에서의 호흡은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고 하겠다. 한국의 대표적인 악곡으로 널리 알려진 <수제천>이란 궁중음악이 있는데, 이 곡이 바로 불규칙 장단으로 이어가는 대표적인 음악이다. 원래의 이름은 정읍(井邑)으로 백제의 정읍사와 관련이 있으나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가사는 잃고 관악합주곡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악곡의 악기 편성은 피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