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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현대 도시인의 무더위 이기는 법

풍경소리 들리는 마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마 속에 소나기와 무더위가 번갈아 찾아오는 계절이 되니 다들 더위를 어떻게 이길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거 뭐 걱정인가요. 에어컨 켜고 그 속에 있으면 되지요.”라고 말하면 가장 첨단을 사는 사람일까. 그러나 에어컨 병으로 인생 말년의 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전기 에너지보다는 자연 에너지가 더 이롭다고 할 것이다.​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자연 피서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이야 현대인들보다는 전기적 피서법이 없던 옛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퇴계 이황은 여름 한 철을 꼬박 문을 닫고 의관을 갖춘 채 방 안에 앉아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무더위에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하자 퇴계가 말하기를, “이 책을 읽으면 가슴속에 절로 시원한 기운이 일어난다.”라고 답했다 한다. 그런 경지야 우리로서는 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할 경지일 터다.

 

 

필자는 다행히 북한산 옆에 집을 얻어 살고 있어서 가능한 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맑은 바람을 쐬는 것으로 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런 방법을 쓰려면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지칠 것이다. ​

 

평생 공부만 하고 글만 쓴 것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이 뜻밖에도 더위 피하는 연구를 많이 했으니,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소서팔사 - 消暑八事)’이란 시가 그것이다.

 

첫 번째는 소나무 숲 그늘에 휘장을 치고 거기에 화살 과녁을 걸어놓고 화살 쏘는 내기를 하는 것인데 휘장 안에는 막걸리가 가득 담긴 술동이와 오이 안주 등이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은 그네타기다. 큰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타거나 그 밑 그늘에 배를 깔고 누워 남이 타는 것을 보는 것도 피서가 된단다. 그네를 어떻게 타던가. ​

 

“跼來頗似穹腰蠖 굴러서 올 땐 흡사 허리 굽은 자벌레 같고

奮去眞同鼓翼鷄 세차게 갈 땐 참으로 날개 치는 닭과 같아라 ”

 

라는 절묘한 표현으로 우리를 기죽인다. ​

 

고리타분한 공부만 한 줄 알았더니 전문시인보다 더 표현이나 묘사가 생생하다. 하기야 평생 2,400수에 이르는 한시(漢詩)를 지은 대(大)시인인데 몰라본 우리가 죄송한 것이지. 그렇게 그네를 타다 보면 ​

 

“솔솔 부는 서늘바람이 온 주위에 불어오니

어느덧 뜨거운 해가 벌써 서쪽으로 기울었네”​

 

라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단다.

 

또한, 시원한 나무 그늘에 바둑판을 놓고 바둑으로 생선회 내기를 하며, 그것도 아니면 호수에 배를 띄우고 연꽃을 감상하다가 연잎에 술을 붓고 잎에 구멍을 내어 그 틈으로 술이 흘러내리는 것을 입으로 받아 마시는 방법도 있다.

 

 

뭐 그리 요란을 떨지 않더라도 숲속에서 우는 매미소리를 듣는 것도 힘 안 들이고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피서법이란다. 그리고 옛 선비들이 늘 하듯 운자(韻字)를 하나 내어 시를 짓는 것도 무더위를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단다. 그리고는 저녁에 집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보면 스르르 잠이 오면서 무더운 여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고 다산은 설명해준다.

 

옛사람들이 하던 이런 피서법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장마가 지나면 본격 무더위가 와서 점점 날은 뜨거워지고 집에 있으면 짜증만 날 것이다. 에어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식구들이나 친구를 초청해서 억지로라도 숲이나 물가를 찾는 것이 방법의 하나이지만 여럿이 모이는 것을 피해달라는 당국의 당부 때문에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가기는 어렵다. 그저 가장 가까운 부부나 가족 위주로 숲이나 물가를 찾아 솔 나무 사이에 앉으면 자연스레 불어오는 바람이 에어컨보다도 더 시원할 것이다. 선풍기는 당연히 손에 든 부채로 대신한다. 그 부채에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구절을 써놓는다. ​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더워 죽겠는데 자연의 선물 운운하며 불어오는 바람이나 쐬라고 하는가. 이런 답답한 양반아.”라고 불평이 쏟아질 것이다. ​

 

그런 불평을 예상하고 다산에게 다른 피서법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다시 여덟 가지 방법(우소서팔사 - 又消暑八事)을 가르쳐 준다. ​

 

첫째 바람이 솔솔 불어 풍경소리가 들리는 마루에서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힘차게 연주하는 것.

둘째 삽과 삼태기를 들고 나가서 논의 물길을 틔워 물이 잘 흐르도록 한다.

셋째 집 앞의 소나무에 그늘을 만들어 거기서 쉰다.

넷째 한참 자라는 포도나무 아래에 가 포도를 맛보는 것이다.

다섯째 서책을 펼쳐놓고 옛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여섯째 아이들을 모아놓고 시를 짓게 한다.

일곱째 강물에 배를 띄우고 물 따라 흐르면서 되는 대로 물고기들을 잡으며 저녁까지 놀아본다.

그리고는 고기를 냄비에 담아 끓여 내오는 것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더위를 잊는 것이다.

 

 

12선녀탕/ 사진 김형근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치는 양수리가 고향인 다산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서는 농민들의 힘든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틈틈이 한강을 배로 오가거나 운길산 수종사에 오르는 여가생활을 즐기곤 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농어민들의 삶의 고통을 함께하고 그들을 위해 노심초사하느라 다산이야말로 여름 더위를 몰랐으리라.​

 

우리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연 속에 사는 삶은 이제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니 옛사람들의 피서법은 잊어야 할 것 같다. 다만 우리들은 지금 먹고사는 것이나 일상생활에서의 편리함이 옛사람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무더위는 무더위가 아니다. 에어컨을 켜라는 것은 아니지만 더위에 짜증을 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

 

생각을 바꾸어 보면 무더위는 마음이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짜증이 생기면 그냥 보통 날씨도 무덥다고 느껴질 것이다.

더워서 짜증이 날 만하면 이까짓 무더위쯤 하며 서로 더워할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다.

아파트에 마주 보는 이웃이 있다면 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까?

 

방충망을 잘해 놓고 아예 복도로 통하는 현관문을 열고 살면 어떨까?

역시 방범문제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웃과 탈 없이 잘 어울려 살면 무더위도 덜 무더울 것이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이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정신적인 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