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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되고, 여백이 있어야 그림이 된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프리스틀리(J B Priestley 1894-1984)는 젊을 때 게으른 화가 친구와 함께 시골 오두막을 찾은 적이 있다. 거기서 그는 친구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늪지를 따라 해발 600여 미터의 구릉까지 빈들거리며 올라간다. 거기서 풀밭에 큰 대자로 드러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해를 다 보낸다. 그러고는 해가 지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다.

 

 

그들에게 황야는 근사한 휴게실이었다. 고개를 들면 눈 앞에는 끝이 없는 푸른 하늘이 장막처럼 쳐져 있었다. 그것은 실내장식이 되어있지 않은, 천국으로 통하는 대기실이었다고 그들은 표현한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끝없는 단조로움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깜빡이는 흥미를 하루종일 지루하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붉은 노을 속에서 천천히 변해 가는 구름과 그림자의 무늬 같은, 미묘한 다양성, 그리고 그 구름이 지니고 있는 고요함과 영속성, 인간과 인간의 관심사에 대한 고래로부터의 초연함, 그런 것에서 그들은 마음을 쉬고 마음의 정화를 느꼈다고 한다.​

 

그런 휴식을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황야에 드러누운 채 하늘을 보거나, 멀리 꿈꾸듯 지평선을 바라보는 날들을 실컷 즐겼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생산적인 것을 하지 않았고, 계획조차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한 가닥의 생각조차도 머릿속에 넣지 않는 철저한 쉼이었다.​

 

"저 멀리 어디에선가, 우리들의 친구와 친척들은 법석거리고 부산떨고 만들고 궁리하고 계획하고 토론하고 벌고 쓰고 있었을 게다. 그러나 우리는 신들과도 같이 우리의 마음을 순수한 진공상태로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충실히 몰두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빈들거리던 짧은 시간이 다해서, 일몰처럼 얼굴이 발갛게 익어서 그곳을 마지막으로 하직하고 인간과 신문쟁이들이 사는 이 사바세계로 내려왔을 때, 우리는 골든 셀프리지씨(게으름에 대해 비난을 많이 한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의 창설자: 필자 주)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JB 프리스틀리, 수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선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너무 분주한 것이 악이 될 수도 있다. 만약에 1차 대전이 일어난 1914년 7월에 주로 일을 쉬게 하는 그러한 날씨가 이어져서 황제건, 임금이건, 대공이건 정치가건 장군이건 신문인들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강한 욕구에 이끌려 햇볕을 쬐며 어슬렁대면서 담배나 태우기로 작정했다면 세상의 형편은 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얼마나 좋아졌을 것인가?

 

 

우리가 한가롭고 한적하다고 할 때 쓰는 한자 ‘한(閒)’ 자의 뜻에 대해 어떤 이는 달[月]이 대문(大門) 안에 들이비치는 것이 바로 한(閒) 자라고 한다. 달빛이 문 안에 쏟아지는데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한가로움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게으름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게으름을 악으로 규정해 온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세상사람들을 게으르게 지내도록 놔두는 국회의원, 정치가들이 많으면 좋겠다. 하루가 멀다 않고 무슨 법을 바꾸고 대책을 쏟아내며 국민을 들볶는 시대에는 말이다. ​

 

"이 세상에 실재하는 모든 악은, 늘 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들, 그러나 언제 서 있어야 하고 무엇을 진행시키고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자들에 의해 생겨난다. 악마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존재이다. 게으름을 탄핵하며 촌음의 허비에 대해서도 발끈해하는 악마의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가 있다. 장담하건대, 악마의 왕국에서는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는 단 한 번의 오후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거리낌 없이 우리 모두 인정하는 바, 세상은 혼란의 도가니로돼, 세상이 그런 꼴로 되어가도록 인도한 것은 결코 게으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JB 프리스틀리, 수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라파르그는 게으름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ㆍ정치적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자신의 책에서 방직기계 1대가 1분 동안 작업한 양이 숙련 여공의 100시간 작업량이란 것을 근거로 들며 “그럼에도 노동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을 불태울 이유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나아가 하루 노동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지고 개개인에게는 더욱 많은 휴식이 주어져 결국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을 덜 하고 그 일을 나눠 가지면 모두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데 방직기계로 남의 일자리를 빼앗고는 시간외수당으로 더 많이 벌어가려고 안달을 한다. ​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일자리를 빼앗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빵을 빼앗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몸과 마음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 폴 라파르그

 

 

주5일제가 확산된지 이제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휴식의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갑자기 쉬는 날을 많이 맞았다. 일주일에 하루 쉬기도 어려운 때에는 시간이란 늘 바쁜 것이고 사람은 늘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아니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 주 5일제가 되면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쉬게 되자 사람들은 갑자기 쉬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집에서도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류에게는 재앙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와 지구에 휴식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쉬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또 화가나 문필가나 작곡가처럼 쉬어야 작품이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더구나 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철저히 쉬는 것도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김달국 작가도 말한다.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되고, 여백이 있어야 그림이 되듯이 휴식은 삶의 쉼표이며 여백이라고. 침묵의 시간이 있어야 깊은 말이 되듯이 휴식은 정체가 아니라 더 큰 활동을 위한 적극적인,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

 

그러니 정치가들이여 제발 우리를 그냥 좀 놔두어 달라. 세상을 당신들의 법안이나 정책으로 다 평화롭고 멋진 세상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더위가 오다가 비가 너무 와서 물난리인데 정치인들은 여전히 개혁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무슨 대책들을 발표하고 고치고 또 발표한다. 이것이 사람들을 더 짜증 나게 하는 것임을 모르는가?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도 일본도 정치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정력이 남아서 무슨 일과 대책이 그리 많은가? 지금이라도 세계의 정치가들이 게으름이 죄악이라는 관념을 버리고 어떤 조그만 장소에라도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얻는 게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도 이달 8월이나 9월 어느 주일을 정해서 그 기간 모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쉰다면 국민은 그것으로라도 오히려 편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