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월)

  • 맑음동두천 4.4℃
  • 맑음강릉 8.9℃
  • 맑음서울 4.2℃
  • 맑음대전 6.4℃
  • 맑음대구 7.7℃
  • 맑음울산 8.4℃
  • 구름조금광주 8.8℃
  • 맑음부산 9.8℃
  • 구름많음고창 6.9℃
  • 구름많음제주 9.8℃
  • 맑음강화 3.5℃
  • 맑음보은 5.2℃
  • 맑음금산 6.4℃
  • 구름많음강진군 9.8℃
  • 맑음경주시 7.8℃
  • 맑음거제 ℃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물리적인 힘으로 증거를 얻을 바에야 죄를 주지 마라

“세종정신”을 되살리자 16

[한국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요즘도 피의자 강제 심문을 하는 것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피의자의 인권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사실 인권 후진국이냐 아니냐의 척도는 피의자나 죄인을 다루는 제도나 실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종이 죄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살피게 한 일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매우 고귀한 것이었다. 심문 과정이나 죄를 기록하는 문자가 한자이어서 죄인의 인권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동기 가운데 하나이고 보면 세종의 인권 존중 자세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세종은 세종 14년인 1432년에 물리적인 힘으로 증거를 얻을 바에야 죄를 아예 주지 말라고 했다. 절대 억울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해 112일자 실록 기록에 따라 사건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세종이 좌대언 김종서(金宗瑞)에게 의금부에서 국문(중죄인의 심문)하는 김용길(金龍吉김을부(金乙夫매읍금(每邑金) 등의 죄상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김종서가 대답하기를 용길(龍吉을부(乙夫) 등이 이르기를, ‘일찍이 밭을 갈러 가다가 문득 솥·가마 따위의 물건이 숲 속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가지고 왔다.’고 하였습니다마는, 그 뒤에 이정장(里正長, 마을 통장 정도의 직급)이 알고 관가에 고발하니, 관가에서 그 물건을 가지고 경내에 두루 돌려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중 해옥(海玉)이 말하기를, ‘전일에 초막의 명화적(떼도둑)이 가지고 가던 장물이라.’ 하므로, 관가에서 곧 용길·을부 등을 가두고 추국(推鞫)하였으되 그 실정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의금부 제조와 같이 이 사람들을 국문하였사오나 아직도 그 실정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용길 등은 다만 밭갈 때에 우연히 이 물건을 얻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도둑질한 것은 아니옵고, 그 이정(里正)이 증거한 말도 아직 명백하지 못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김종서의 말만으로도 사건의 정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주은 물건이 설령 떼도둑이 훔쳐간 물건이라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범인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고 더더욱 중죄인이 될 수 없는데도 단지 마을 대표가 신고했다고 해서 그 말을 절대시한 것부터 잘못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용길 등이 얻은 물건이 바로 초막의 도둑들이 가지고 가던 장물이라면 도둑과 비슷하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천하의 이치에는 한이 없는 것이니, 도둑이 만일 이 물건을 가지고 가다가 숲 속에 버린 것을 용길이 우연히 얻었다면, 이를 명화적으로 인정하여 극형에 처하는 것은 불가하지 않겠느냐. 내가 이와 같은 것을 염려하여 이미 '죄가 의심될 뿐이면 오직 가볍게 벌하라.'라는 휼형(恤刑)의 교서(敎書)를 반포한 바가 있다.  

만일 매로 때려 심문하여 증거를 잡으려 하되, 오히려 그 실정을 얻지 못하거든 죄를 주지 않는 것이 도리어 나을 것이다.” 

 

   
▲ 세종, 고문 등으로 얻은 증거는 절대 처벌의 근거로 삼지마라(그림이무성 한국화가)

천하의 이치에는 한이 없다고 한 것은 얼마든지 우연히 장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와 같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을 막기 위해 죄가 명확하지 않으면 절대 중하게 처벌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가볍게 벌하고 또 고문 등으로 얻은 증거는 절대 처벌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 죄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데 하물며 죄가 없는 사람이 가벼운 벌이라도 받는 억울함이 없어야 진정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라 할 것이다.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엄격한, 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여러 판결을 보면서 15세기 세종의 말씀이 더욱 크게 울려온다.  

[참고: 원문 기록]
上謂左代言金宗瑞曰: “義禁府所鞫金龍吉金乙夫每邑金等罪何如?” 宗瑞對曰: “龍吉乙夫等云: ‘嘗往耕田, 忽見鼎釜等物在林下, 喜而齎來其後里正長知而告官, 官以其物, ()示境內, 有僧海玉云: ‘前日草幕明火賊持去贓也官卽囚龍吉乙夫等推之, 未得其實; 臣同義禁府提調鞫之, 亦未得其情龍吉等但云: ‘耕田時, 幸得此物, 初不爲盜其里正證佐之言, 未爲明白上曰: “龍吉等所得之物, 乃草幕之賊持去贓也, 則似爲賊人矣然天下之理無窮, 賊若持此物, 棄之林中, 而龍吉偶得之, 則以爲明火賊而置之極刑, 無乃不可乎? 予創若是, 已頒恤刑之敎書曰: ‘罪疑惟輕若杖訊證佐, 而猶未得其實, 則不若不罪之爲愈也-태백산사고본185811B/영인본3424_온라인 조선왕조실록(검색: 2015.8.2.)